공무원과 초과근무
공무원이 가장 비판받는 부분이 바로 '초과근무'입니다. 거짓으로 초과근무를 했다고 속이고 초과근무 수당을 받아가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사를 볼 때면 같은 공무원으로서도 화가 나고, 기사 밑에 달려 있는 댓글을 보면 억울했습니다. 퇴근하고 쉬어야 하는 평일 저녁이나 가족들과 보내야 하는 주말에 초과근무 한 시간에 만원, 그깟 만원이 뭐라고, 양심을 속이고 전체를 욕먹게 하는지 말이죠.
소위 '가라 초근(거짓 초과근무)'에 대한 유혹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공무원 2년 차에, 같이 일하는 분들과 회식 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거의 퇴직을 앞두신 분들이었는데 회식을 하다가 9시쯤, 집이 같은 방향이신 분이 사무실에 두고 온 것이 있다며 같이 들어가자고 하시더군요. 술에 조금 취한 채로 사무실에 들어가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일 좀 하다가 초근 찍고 나와~'
괜찮다고 하고 혼자 가기에는 뭔가 혼자 고상한 척하는 것 같고, 괜히 무안하실 것 같아서 대답을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 당시까지도 '가라 초근'을 하시는 분들이 주변에 없었고, '누가 가라 초근을 상습적으로 한다'는 소문이 있으면 동기들끼리 욕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고민이 되었습니다. 지금 찍으면 2만 원이 공짜로 그냥 나오니깐요.
클릭을 할지 말지 마우스 포인터가 버튼 주변을 맴돌다가, 말았습니다. 고작 2만 원에 양심을 팔긴 싫었습니다.
그분은 몇 분 있다가 일어나서, 저에게 초과근무 찍었냐고 하시면서 이제 집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보는 게 처음이어서, 정말 이렇게 하시는 분들이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가라 초근'은 개인의 양심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가라 초근'은 조직 전체적으로 보면 매우 이기적인 선택이 됩니다. '초과근무 총량제' 때문입니다.
개인이 한 달 동안 할 수 있는 초과근무의 총량은 하루에 4시간(23시까지 근무), 한 달에 57시간입니다. 한 달에 초과근무 57시간을 달성하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힘듭니다. 한 달에 근무일이 22일이라고 치면 하루에 약 2시간 반에서 3시간 초과근무를 하는 것이 되고, 이는 오전 9시에 출근하여 매일 10시 즈음 퇴근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57시간을 훌쩍 넘겨서 일을 하시는 분들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제 초과근무 최고기록이 한 달에 약 40시간 정도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에 몸과 정신 모두 온전치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분들은 대체 어떻게 일을 하는 건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초과근무 총량제는 부처 전체에도, 각 부서에도 적용됩니다. 누군가가 초과근무를 거짓으로 많이 찍으면, 누군가는 연말에 수당을 받지도 못하고 초과근무를 하게 되는 구조인 것입니다.
한편, 조직 전체의 초과근무 총량은 전체적으로 매년 줄어듭니다. 그리고 각 부서의 총량은 전년도에 초과근무를 얼마나 했는지 등을 고려하여 정해집니다. 총량제는 유연하지 못해서, 일이 갑자기 많아진 부서는 초과근무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한 달에 57시간을 넘게 초과근무를 해도, 부서 내부에 정해져 있는 초과근무 총량 때문에 각자 매달 9시간밖에 수당을 못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매일 10시에 퇴근하고도 9만원을 더 받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 동기가 그랬습니다. 거의 2년 간 그러더군요.
연말이 되면, 초과근무 총량으로 각 부서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서 간에 총량을 조금씩 조정할 수 있는데, 12월에 서로 바쁘다면서 총량을 주니 마니 과장님들끼리 큰 소리가 오가며 싸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당시, 초과근무 총량 30시간으로 싸우셨는데, 생각해 보면 고작 30만 원을 가지고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그 30만 원은 각 부서의 직원들이 나눠 갖는 것이고 각자 2~3만 원도 안 될 것이었습니다. 그때 현타가 심하게 오더군요. 고작 2~3만 원으로 연말에 서로 얼굴을 붉히게 만들다니 말입니다. 물론, 과장님들 입장에서는 직원들이 수당도 못 받고 일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을 겁니다.
한 번은 지방 공무원에 합격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온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별로 말도 안 해봤고 친하지도 않았는데, 자꾸 만나자고 하기에 한 번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말이었는데 본인 직장 앞에서 만나자고 하더군요. 알고 보니 일도 없는데 주말에 사무실에 출근해서 초근을 찍고 있었다는 겁니다. '너희는 안 그러냐'며 만나자마자 자랑처럼 말을 하더군요. 황금 같은 휴일에 그런 짓을 하고 있는지 한심하면서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이래저래 말을 해보니, 다른 공무원들은 어떻게 사는지 많이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점점 말을 할수록 기분이 너무 안 좋아졌습니다. 자기는 9급인데, 매월 개인에게 정해진 초과근무 수당과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는 출장비 등등 합치면 7급인 너보다 거의 비슷하거나 조금 많다는 식으로 말을 하더군요.
친한 사이도 아닌데, 계산적으로, 비교하면서 자꾸 말을 하기에, 머릿속으로는 수당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몸이 갈려나가는 주변 사람들이 생각나면서도, '아 그럼 괜찮네'하며 뇌를 빼고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식사자리를 피했고, 다시는 만나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조금은 이중적일 수는 있겠지만, 친한 지방직 친구와 정상적으로 이야기했을 때는, 그런 점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는 했습니다. 정말 월급이 너무 적어서 생활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9급 월급이 실수령으로 월 150-160만 원 정도였고, 월세와 관리비만 해도 거의 50만 원이 나가니 말입니다. 또한, 지방직의 경우에는 코로나와 같은 비상한 시국에 무자비하게 동원되는 경우도 많기에 그런 것들을 고려해야 하니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적으로 일하는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라 초근'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부처 내에, 다양한 기관에서 파견근무를 나와서 함께 근무를 하는 조직이 있었습니다. 서로 조직 문화가 조금씩 달라서, 일을 처리하는 부분에서 약간의 마찰이 일어났지만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큰 마찰은 초과근무였습니다.
한 기관에서 오신 분이 물었습니다.
'ㅇㅇ씨는 왜 초과근무를 안 해요? 아깝지 않아요?'
'네? 일이 없는데 왜 해요?'
서로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점점 그 기관에서 온 분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불필요한 초과근무를 하기 시작했고, 과장님은 불필요한 초과근무를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다른 기관에서 온 가장 선임이 과장님에게 작심하고 따졌습니다.
'과장님, 이렇게 하시면 저희 연봉이 줄어드는 거예요. 좀 풀어주세요'
'연봉이 줄다뇨, 파견수당도 받잖아요?'
'그건 그거고, 초근은 원래 있던 기관에서 계속했던 건데, 여기서 못하게 하면 연봉이 줄어드는 거죠'
그 말을 듣고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결국에 막기는 했지만, 같은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기관마다 초과근무에 대한 생각과 문화가 너무나도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공무원의 초과근무 문제는 부당하게 거짓으로 근무하고 수당을 받아가는 행태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일을 해도 못 받고, 누군가는 일을 안 해도 받아갑니다. 그런데 욕은 함께 먹습니다. 공무원의 내부적인 형평성의 측면에서도 초과근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