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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GA PEOPLE Aug 12. 2018

YOGA_ 요가


우리가 사용하는 요가 Yoga는 산스크리트어 'yuj유즈'가 그 어근으로, '얽어 매다''결합하다''붙이다''멍에 씌우듯 이어붙이다'등의 뜻과 '자신의 주의력을 이끌어 주며, 집중시키며, 그것을 사용하고 응용한다'등의 이미를 갖고 있다. 또한 결합이라든가 영적인 교감을 뜻하기도 한다. 이는 우리들 의지와 신의 의지와의 진정한 결합을 의미한다. 마하데브 데자이는 『간디가 해석한 기타Gita』의 서문에서 "요가는 육체와 마음과 영혼의 모든 힘을 신에 결합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곧 요가의 전제가 지성, 마음, 감성, 의지를 단련시키는 것이며, 인생(삶)을 여러 각도에서 평등히 바라볼 줄 아는 정신의 안정된 상태를 의미한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요가는 인도 6대 철학 체계 중의 하나이다. 파탄잘리는 195개의 간결한 경구로 이루어진 그의 고전적 저서 『요가경Yoga Sutras』에서 요가를 통합 정리하고 체계화시켜 놓았다. 인도사상에서는 모든 사물에는 절대의 우주정신(대우주의)인 파라마트마(Paramatma,신)가 존재하며 개개인의 정신인 지바트마(Jivatma)는 그 한 부분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요가의 체계는 개개인의 정신이 절대의 우주정신에 합일되거나, 교감하는 수행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어지며, 또 이 방법을 통해서 해탈Moksa에 이르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요가의 길을 따르는 남자 수행자를 요기yogi, 여자 수행자를 요기니yogain이라 한다. 요가 철학에 관한 가장 중요하고 권위 있는 저서인 『바가바드기타』 제6장에서 크리쉬나Sri Krishna는 아르주나Arjuna에게 요가의 의미를 고통과 비애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의 마음과 지성이 자아ahamkara가 쉼 없이 헐떡거리는 욕망으로부터 절제되고 자유로워질 때 그들은 내재하는 정신에 안주하게 되고 비로소 육타Yukta, 즉 신과 교감하는 존재가 된다.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 등잔불은 깜박이지 않음과 같이, 내재하는 정신세계에 몰입함으로써 마음과 지성과 자아를 제어할 줄 아는 요기도 이와 같은 경우이다. 요가 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불안정한 마음, 지성, 자아가 평정해질 때 그 안에 내재하는 영의 가피에 의해서 법열을 맛보게 된다. 그때 그는 이 기쁨이 그의 이성으로는 체득할 수 없는 감지의 한계를 넘어선 영원하다는 것을 알고 그 실체에 정주하게 된다.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물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보다 더 고귀한 것은 없는 것이다. 이 경지에 이르면 어떠한 비애에도 동요되지 않는다. 이것이 고통과 비애로부터 해방된 진정한 의미의 요가이다."

"잘 깎인 다이아몬드가 많은 면을 갖고 각각의 면에서 상이한 빛과 색을 내듯이, 요가라고 하는 말도 이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면이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어 마음의 평온과 행복을 얻고자 정진하는 모든 영역에 걸쳐 다양한 면을 보여 주고 있다." 『바가바드 기타』 역시 요가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을 하고 있는데, 특히 카르마Karma요가를 강조하고 있다. 즉,"몸을 움직여 일한다는 그 자체가 은전이며 특권이므로, 결과만을 추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결단코 일을 멈추지 말 것이며 이기적 욕망을 버리고 신의 이름으로 일하라. 성공이나 실패에 구애받지 마라. 이러한 마음의 안정 상태를 요가라 한다."

요가는 또한 행동들을 함에 있어서의 지혜 또는 슬기로운 삶, 조화와 중용을 나타낸다. "요가는 너무 먹거나 또는 전혀 안 먹는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또, 너무 많이 잠을 자거나 전혀 자지 않고 밤을 지새우는 사람을 위한 것도 아니다. 먹고 휴식을 취하는 데 있어서의 절제와 일을 함에 있어서의 조절 그리고 잠자고 깨는 데 있어서의 조화로 요가는 모든 고통과 비애를 없애 준다."

『카트우파니샤드Kathopanishad』는 요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모든 감각이 가라앉고, 마음이 안정되고, 지성이 동요됨이 없을 때, 그때를 지인들은 이르기를 최고의 단계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모든 감각 기능들과 마음 상태의 확고한 통제를 요가라 한다. 이것을 이룬 이는 망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요가경』의 제1장 두번째 경구에서 파탄잘리는 요가를 
'치타 브르티 니로다Chttta vrtti nirodhah'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정신적chitta 변화vrtti의 제지nirodhah 또는 
의식chitta 동요vrtti의 억제nirodhah로 해석된다.


치타Chitta_총체적 혹은 집합적 의미로서 넓은 의미의 마음을 지칭하며 다음 세 가지 범주로 구성된다.
협의의 마음manas_선택하고 거부하는 능력과 힘을 지닌 개개의 마음인데, 이것은 흔들리기 쉽고 우유부단한 마음의 작용이다.
성 또는 이성buddhi_이것은 사물을 구분해 판별, 결정짓는 상태를 말한다.
자아ahamkara_나를 창조하는 주체, 즉'내가 안다'라는 것을 확신하는 상태를 말한다.

브르티Vrtti_라는 말은 방향을 틀다, 회전하다, 구르다의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 어근'브르트vrt'에서 온 말로서 행동의 과정, 행위, 존재하는 방식, 정신적 상태를 의미한다. 요가는 들떠 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에너지를 조직적인 채널로 바로 전해 주는 수단이다. 마치 거대한 강이 댐이나 운하로 잘 이용되면 큰 저수지가 되고, 가뭄을 막아 주고, 풍부한 전기를 산업체에 제공하듯이, 마음도 적절히 조절될 때 평온의 저수지가 되어 인간을 향상시키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만든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문제는 『바가바드 기타』 6장에 나오는 아르주나와 크리쉬나의 대화에서 보듯이 결코 쉽게 풀어지는 것이 아니다.
"크리쉬나여, 당신께서 저에게 요가에 관해 말씀하시기를, 언제나 하나이신 브라만(Universal Spirit,우주정신)과의 영적 교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늘 들떠 있고 쉽게 변하는데 어떻게 이것이 영원할 수 있습니까? 마음은 충동적이고, 고집스럽고, 거칠고, 제멋대로여서 바람을 다스리기만큼이나 어렵습니다."
크리쉬나가 대답하였다. "마음은 불안정하여 다스리기가 힘들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그러나 이같은 마음 상태는 '끊임없는 수행(abhyasa)'을 통해서, 또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 벗어남(vairagya)'을 통해서 순화될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은 이 성스런 교감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자기 제어를 하는 사람은 그가 부지런히 정진하고 그의 에너지를 올바른 방법과 방향으로 이끌어 준다면 이것은 충분히 이룰 수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상태에 따라 그 집중의 대상도 달라진다. 집중의 대상이 없는 날은 뭔가 허망한 기분이 든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은 선영님께 요가이론을 전하기 위해 의무감을 가지고 책장을 넘기는데 그런 시간들을 보내다보니 '내가 요가를 시작했던 참된 의미들이 많이도 변질되고 나약해졌구나' 라는 생각으로 나를 다시 한번 되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때가 있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26살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10년을, 요가를 하며 살았다. 그 중 8년의 생활동안 누군가에게 요가를 가르치며 살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계속해서 난 수행자일 뿐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주제넘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자꾸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한 수련을 하니 점점 더 시작했던 동기들도 그렇게 하나 둘 잊혀지는 것만 같다. 생애에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골똘히 생각해보면, 지금 나를 둘러 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 있어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 할 게 없다. 그렇지 못하다면 일단 그것은 요가의 상태가 아닐 테니까, 그 상태로는 무엇으로도 해방되지 못한다. 토요일인 어제는 5시쯤 집으로 돌아와서 뭔가 하려다가 졸기시작해서 내리 17시간을 자버렸다. 이렇게 잠이 부족했나 싶을 정도로 누적된 피곤함을 잠으로 쏟아냈지만 고작 이런게 나를 슬프게 만들수 없다며 정신을 차렸다. 이제 오늘밤이 지나고 월요일과 화요일을 보내고 나면 우리 요가원도 휴가기간이다. 한동안의 몰린 피로는 그렇게 그 기간동안 재충전하여 다시 밝고 활기넘치는 모습으로 1년이 지난, 2년차 요가원의 모습으로 거듭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시간은 어떻게든 간다. 그리고 때가 되면 좋은 날은 오고.. 


요즘은 문득 그때가 생각난다. 요가지도자과정 중이었던 당시.. 어렸을 때부터 앉아서 그림만 그리는게 다였기에 강사생활을 한다는 것이 내겐 무척이나 두려운 일이었다. 이론적인 공부보다 더 괴롭고 힘들었던 것은 저 문을 닫고 한시간 동안 아무말도 안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지시를 하고 지적을 하며 나 혼자 떠들어야 한다는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학교다닐 때 PPT만 해도 울먹거리며 말하기 일쑤였던 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일을 하겠다고 뛰어들었을까.. 2년을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었다. 다니던 디자인 회사를 계속 다닐지, 요가강사를 할 지 말이다. 결국 시도도 못하면 억울해 죽을 것 같아서 시작한 일이긴 하지만.. 수업 시작하고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요가를 수련할 때보다 몸과 마음은 늘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수업하면서 임파선이 부은적도, 목소리가 일주일동안 안나왔던 적도 있었다. 몸의 적신호란 적신호는 요가수업하면서 다 왔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원체 성격이 순발력은 제로이나 지구력은 좋았기에.. 한번 결정한 것은 어떻게든 버티고 마는 성격이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랬던 나에게 이 요가원이 온거다. 어쩌면 버티는걸 잘해서 하늘이 내려준 선물인지도 모른다. 요가강사를 하며.. 요가수업을 하며.. 나는 몇번이나 나를 의심하고, 나의 부족함과 만나지만.. 그 때마다 내게 좋은 선생님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는 이렇게 여기까지 왔나 싶다. 이 시점에서 내가 다시 이 책장을 넘기며, 나는 다시 한번 요가의 의미를 되새긴다. 앞에 있는 것들만을 너무 쫓다보면 과거의 바램을 모두 이룬 지금 현재의 시간을 퇴색되게 만든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이루며 살았고, 너무 많은 기회 속에서 살았다. 감사해야 할 것들 투성인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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