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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GA PEOPLE Aug 21. 2018

웆자이 Ujjayi 프라나야마


동사와 명사에 붙는 접두사 우드ud는 위쪽으로 또는 등급에서의 우수성을, 또한 분출, 팽창을 뜻하기도 한다. 우월성이나 힘을 나타낸다. 자야jaya는 정복, 우승, 승리 또는 성곡을 뜻하는데 다른 측면으로는 제재나 억제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웆자이 프라나야마를 하는 동안 폐는 활짝 열리고 가슴은 당당히 펴진다.



방법

1. 파드마사나, 싣다아사나, 비라아사나 중 편안한 자세로 앉는다.
2. 등을 세우고 굳건히 유지한다. 머리는 몸통 쪽으로 낮춘다. 턱은 흉골 위의 쇄골 사이에 있는 V자 부분에 둔다(잘란다라 반다)
3. 팔을 쭉 펴 손등을 무릎 위에 둔다. 집게손가락 끝과 엄지손가락 끝을 서로 붙이고 다른 손가락은 편다(즈나나 무드라: 지식의 상징 또는 증인으로 알려져 있다. 집게손가락은 개인의 영혼을, 엄지손가락은 대우주의 혼을 상징한다. 이 둘의 합은 지혜를 상징한다)
4. 눈을 감고 스스로에게 집중한다. 완전히 숨을 내쉰다. 이제 웆자이 호흡을 시작한다.
5. 천천히 깊고 안정되게 양쪽 콧구멍으로 호흡한다. 들어오는 공기의 흐름이 입천장에서 느껴지며 치찰음(싸-아-)을 낸다. 이 소리를 느낀다.
6. 폐에 호흡을 가득 채운다. 들이쉬는 동안 복부가 부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이 주의사항은 프라나야마의 모든 유형에서 지켜야 한다) 이렇게 폐에 공기를 가득 채우는 것을 푸라카(puraka,들숨)라 한다.
7. 음부에서 흉골까지 복부 전체는 척추 쪽으로 당겨져야 한다.
8. 1~2초 동안 호흡을 보유한다. 숨을 안으로 보유하는 것을 안타라 쿰바카라 한다. 물라반다를 실행한다.
9. 천천히 깊고 안정되게 폐가 완전히 텅 빌 때까지 숨을 내쉰다. 숨을 내쉬기 시작할 때 복부의 당김을 유지한다. 2~3초 정도 내쉰 후에 횡격막을 천천히 점차적으로 이완시킨다. 숨을 내쉬는 동안 공기가 나가는 것이 입천장에서 느껴져야 한다. 내쉬는 동안 입천장에서 공기의 마찰이 기식음(하-아-)을 내야 한다. 이 날숨을 레차카라 부른다.
10. 다시 호흡을 시작하기 전에 1초 동안 기다린다. 이 기다리는 사이를 바야 쿰바카라 한다.
11. 위에 설명한 5~10번까지가 웆자이 프라나야마의 한 주기의 완성이다.
12. 눈을 감은 채로 5~10분간 이 주기를 반복한다.
13. 사바사나 자세로 눕는다.
14. 잘란다라 반다 없이 행하는 웆자이 프라나야마는 걷거나 누워 있는 동안에도 할 수 있다. 이것은 밤이건 낮이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유일한 프라나야마이다.




효과
이 유형의 프라나야마는 폐에 산소를 공급하고 담을 제거하며, 참을성을 길러주고, 신경을 진정시키고 전체 조직을 좋은 상태가 되게 한다. 쿰바카 없이 누운 자세에서 행해지는 웆자이는 고혈압이나 관상동맥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아주 이상적이다.



8월 20일, 5일간의 휴가가 이렇게 끝이났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뺄 것과 더할 것을 생각해본다. 어쨌든 참 잘 쉬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수업이 있는 날이다. 다른날에 비하면 이른 시간의 시작이다. 막상 또 수업을 하려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디서부터 끼워맞춰야 하고 어떻게 감정을 다스려야할지 혼란스러운 이른 아침.. 적응 할 때도 됐는데 참 적응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익숙한 공간에서 누가 오는지를 알고, 오신는 분들에 맞춰서 신경쓸 부분들도 미리 감지 할 수 있다는 것. 난 생각보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몹시도 조절이 안되는 사람이다. 어릴때부터 그런것들을 늘 힘들어 하곤 했으니까.. 사람마다 다른 것이겠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게 누구에겐 편한 일 일수도 있고, 내가 편한 일이 누군가에겐 불편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아침엔 재연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요즘 많이 외로움을 느낀다는 21살 친구.. 이성친구보다는 사람과의 관계가 더 필요한것 같다고 스스로가 스스로에 대해 진단을 내린 것 같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와도 참 닮은 구석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살면서 느끼는 어떤 갈망과 고갈되는 감정들.. 그것을 채울 길이 없다는 것을 마음 한켠에 인지해두고 살아간다. 그 안에서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더 명확한 만족의 방법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적당히 부족하게 사는 것이 어쩌면 더 좋은 것 같다. 10시 반에는 종배님이 오셨다. 요즘 인터뷰 촬영때문에 오시는 시간도 들쑥날쑥하고.. 오늘도 일어나시자마자 다급하게 오시느라 지갑도 못 챙겨 오셨다고 말씀하시며 약간 지각을 하시기도 했다. 나는 나의 불편한 사정들을 뒤로 하고 그들에게 요가수업을 한다. 



내가 하는 일을 업무라고 생각해보자면 정말이지 어떤날은 미치게 수업하기 싫은 날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것도 안하면서 살고 싶기 때문에 수업 시작전에는 대게 늘 그런마음이다. 하지만 눈앞에 대상이 존재할 때의 마음은 늘 달라진다. 마음이 달라지는 것은 찰라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마음이 바뀌고 그러면 다시 나는 수업 안에서 집중력을 되찾게 된다. 현재 진행 중일 때 나의 바램은 거의 그렇다. 이 곳에 존재하는 저 사람에게 만족스러운 시간이 되길, 내가 그런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종배님은 배에 힘주는 걸 잘 못하신다. 지금까지 다른 것들은 많이 좋아지셨는데 나바사나 같은 자세들을 할 때 다른 사람들보다, 다른 자세들보다 더 더 힘들어 하신다. 난 그런걸 꼬집어 발견하고 알려주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 몰랐던 자신의 부분을 알게 하는 것, 남들과 자신이 어떻게 다르고,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에 목표를 세우며 나아가야 하는지..알게 해주는 것. 나는 단순히 신체의 정렬을 바라보고 즉각적인 해결 요인을 자세로 제시해주지만 그 사람은 그 순간을 인지하게 된다. 


오전수업을 마치고 2시에는 서울숲으로 수련을 가려고 했지만 배도 고프고 감정적 스트레스와 졸음이 몰려와서 집으로 다시 돌아와서 마음을 추스렸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그렇게 아그작 아그작 아몬드를 씹어 먹는다. 예전에 회사를 다닐때도 그랬다. 그러고 나면 뇌에서 무슨 호르몬이 나오는지..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배를 채우자 곧바로 졸음이 몰려왔다. 요즘은 이렇게 글을 퍼부어 쓰고 나면 스트레스가 조금 줄어드는데 이런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것은 굉장히 긍정적인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집에 와서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졸음이 더 많이 몰려와서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잠을 자면서도 뭔가를 해야한다는 압박과 남들은 다 깨어나 활동하는 시간을 이런식으로 보낸다는 것이 왠지모를 소외감을 느끼게 했다. 이럴때는 남들과 다른 시간표로 살아간다는 것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대부분 다들 바쁘게 일하며 보내는 시간 속에서도 누군가는 나를 기억해주고 찾아주길 바라는 나약한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다 잠이 들었다. 나는 이럴 때 내가 참 싫다. 이런 감정적인 가난함은 사실 어떻게 해서도 타인으로 채워질 수 없다라고 믿는다. 관계 속에서 해결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또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다. 이것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둘의 채워짐은 각기 다른 방향의 것이라는 말이다. 둘은 명확하게 다르다. 어쨌든 그런 우울한 생각들을 하며 잠이 들었으니 눈을 뜨게 됐을 때도 감정이 유쾌할 리 없다. 하지만 이젠 오후수업을 하러가야 하니까. 

다시 생각을 가다듬고 집밖을 나선다.


오늘은 누군가가 오기로 되어있었다. 지인의 지인분의 소개로 오셔서 오늘부터 수업을 들으셨는데, 익숙한 사람들과 새로운 사람들이 뒤섞여 오늘 하루중 가장 보편적인 요가수업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마지막 수업엔 올해 안에 꼭! 강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선영님이 오셨다. 아침엔 수영을 하시고 저녁엔 요가를 하시는 선영님.. 다른 동작은 거의 다 잘 하시는데 골반을 여는 동작에서 늘 애를 먹는다. 차례차례 순차적으로 시퀀스를 진행하며 평소에 대충 넘어갔던 부분들을 천천히 다듬어봤다. 평범하고 쉬운 동작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않게 골반 쪽에서 큰 자극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또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눈으로 보는 것 밖에 알지 못하는구나.. 다 잘할 것 같은 사람이라도 조금씩 미묘한 차이가 있기 마련인데 그 부분에서 나의 지레짐작이 아직도 좀 서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밖에서 무슨 일을 하고, 그게 그들의 자세와 어떤 상호작용이 있으며, 아사나를 할때 어떤 자극을 느끼는지.. 결국 내가 경험한 것 토대 위에 내가 바라보는 것들을 두고 상상하고 추측할 뿐이다. 내가 이 모든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 할 수 없고 모두의 입장이 될 수 없는데도 가끔은 늘 욕심을 부리는 것 같다. 타인의 감정에 대한 너무 많은 추측과 판단들은 현재의 상황을 더 흐릿하게,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나의 과잉된 생각이 틀릴 수도 있는 거다. 그와 마찬가지로 때때로 타인들도 나를 이런 사람이다, 판단내리며 나 역시 나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 혼란과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할 때도 많지 않았던가. 그와 반대로 나를 겪는 누군가도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나를 배려하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너무 신중해서 두려워하는 존재라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까, 누군가를 추측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를 두려워하거나 누군가를 조심하며 괴상망측한 추측과 상상으로 내가 모를 타인을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일은 스스로 하고 싶지 않으니까. 내가 나를 알아가고 인지하는 과정을 통해서 다른이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갖는 불편한 생각들을 제거하는 것이 타인을 알아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물론 모든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고, 모두 다 나의 추측같진 않겠지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관계를 맺으며 일부분 걱정스러운 마음과 미움받는 상상, 

내가 아끼는 누군가가 나를 질려 하지 않을까란 두려움의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나말고 다른사람들도 경험하는 일일거란 생각을 해보는데 

관계가 깊어비면 깊어질수록, 그 안에서 편안함을 만들어 가는 것이 마냥 쉬운일은 아니다.

자연스레 올라오는 불편한 마음을 비우고 긍정적인 생각들로 그 틈을 메꿔가는 일이 필요하다. 

결국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 노력이 필요한 일들이다. 

모든게 다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들은 아니다. 


요즘은 수업시간에 물라반다의 사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예전에는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는게 내 무식이 탈로 나는 것만 같아서 그런 어줍잖은 표현들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요즘은 내가 제대로 된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때, 전달방식에 더 모호함을 겪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라는 생각으로 틈나는 대로 조금씩 천천히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움직이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수련할 때 다운독을 할때도 매 순간 늘 물라반다를 사용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내 설명은 늘 배를 당기라는 이야기 뿐이니까. 이런 설명으로 물라반다를 이해하기란 택도 없겠다 싶어서.. 내가 더 깊은 영역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갔으면 좋겠다. 내가 하는 말들을 불편해 하지 않을 정도로 나 스스로가 내 말을 신뢰할 수 있을 정도로 말에 힘을 담아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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