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의 늦은 결혼식
나에게는 같이 늙어가는 나이 많은 조카들이 여럿 있다. 5남 1녀 막내로 태어난 나는 맏이인 큰 형님과 20년의 차이가 난다. 어머니가 마흔을 넘겨 낳은 탓에 난 태어나자마자 아버지 같은 큰형이 운명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국민학교 때 동네 친구 아버지가 큰 형님과 비슷한 나이였다. 나는 친구를 부러워했다 그의 젊은 아버지와 젊은 어머니를…..
아버지는 거의 일을 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육체는 빠르게 늙어갔다, 하지만 자식을 먹여야 한다는 절박함은 마른 몸을 간신히 지켜주었고 모성의 본능은뼈 마디마다 모래알 같은 고통으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어머니는 밤새 끙끙거리며 내성으로 효과가 없어진 진통제와 파스 냄새를 끌어안고 쪽잠을 잤다
어머니의 가난한 품삯과 나무꾼이 된 어린 형들의 좁쌀 같은 돈으로 우리 가족은 좁쌀 같은 삶을 살았다 배고픈 그 시절 먹여 살려야 할 자식이 하나 더 늘어남으로 말라가던 어머니는 더 말랐을 것이고 난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마르고 늘어진 젖을 빨던 나는 늘 배고파 울었을 것이고 젖동냥을 전전하다 그나마 어려워 지자 영양가 없는 푹 고은 맵쌀죽을 새 모이만큼 먹었을 것이다
어린 누나는 광목 한 마로도 메어 업을 수 있는 작은 동생을 여름 내 등에 땀띠 나도록 업고 다녔을 것이다. 등에 업힌 나는 광목천에 벌겋게 짓눌린 엉덩이와 깡마른 누나의 도드라진 등뼈가 아파 종일을 울었을 것이다. 잠시 잠이 들면 뭉클한 어머니의 젖냄새를 꿈꾸며 배고픈 손가락을 빨다 깨어 서럽게또 울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사랑스러운 미소를 띈 체 보드라운 내 빰을 만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저 자식들을 굶기지 말아야 한다는 사명으로만 살았을 것이다 어머니에겐 그게 삶의 이유였고 삶의 전부였 을 것이다. 긴 겨울이 지나고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마른 버짐이 피고 유난히 침을 많이 흘렸던 어린 나를 위해 형들은 개구리며 미꾸라지를 잡으려 뛰어다녔다. 저녁이면 마당 한편에 불을 피워 구운 시커먼 미꾸라지와 개구기 뒷다리를 후후 불어 소금 찍어 나에게 먹였다. 그리고 그해부터 난 더 이상 침을 흘리지 않았다 나와 우리 가족은 그렇게 온몸으로 가난을 살았다.
내가 열 살쯤 형들의 자식들이 태어나기 시작했고, 어린 난 큰형의 자식들과 같은 집에서 함께 자랐다. 내 어머니는 어린 손주들의 분유를 듬뿍 퍼 올린 계량 숟가락을 아무도 보는 눈이 없는데도 재빠르게 내 입에 털어 넣었다. 난 목이 마쳐 우물로 달려가 벌컥거리며 맹물을 마시곤 이내 어머니의 빨개진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손주들이 좀 더 자라 야쿠르트를 먹기 시작했을 때도 내 어머니의 얼굴은 종종 빨갛게 달아올랐다, 난 지금도 기억한다 야쿠르트 병을 등 뒤로 숨기던 어머니의 모습을, 내리쬐던 햇살을 등지고 선 어머니의 어색하고 그늘진 미소를...
그렇게 분유와 야쿠르트를 나와 나눠먹고 자란 내 조카 일 년에 두어 번 어머니를 뵈러 갈 때마다 "삼촌~왔어~"하며 살갑게 맞던 소녀가 "작은 아빠 오셨어요~" 상냥했던 아가씨가 이젠 나 만큼 나이 든 조카가 해 막바지에 날을 받아 아슬하게 결혼을 했다 언니와 남동생을 먼저 보내고 늘 그늘진 웃음으로 쓸쓸해 보였던 조카의 모습이 오늘은 스포트라이트 속에 하객들의 눈 속으로 불꽃처럼 밝게 타오른다.
여든을 바라보는 큰 형님은 할 일을 다한 듯 평온해 보였고 형수님은 아직도 꿈속인 듯 불안한 눈망울이 초조했다 우리의 다 자란 자식들은 자주 접하는 일인 듯 예의로 포장된 날 웃음만을 가늘게 보이고 있다 조카의 친구인 듯 한 여자는 연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면서도 신부를 향해 든 핸드폰을 내리지 않았다 우리가 모르는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녀는 눈물을 터트렸을까? 슬픔일까? 기쁨일까? 삶의 고단함일까? 아니면 내가 느끼는 미안함일까? 의문하며 신부의 밝은 조명 때문에 짙어진 암부속에서있는 그 여자를 내 기억속에 담았다. 가족들의 체념을 보란 듯이 꺾고 감행한 늦은 결혼이니 더 오래 행복하게 살길 난 진심으로 바랐다
그리고 고마웠다고, 미안했다고~ 분유와 야쿠르트를 나눠줘서....!
[에필로그]
글을 쓰는 동안 눈에 뜨거운 물이 고인다. 왜일까? 나이가 들어서일까? 내가 사랑한 어머니를 네가 사랑한 할머니를 우리 모두가 그리워하기 때문이겠지.....! 부디 잘 살기를~, 참되게 살기를~ 하늘에서 우릴 지켜볼, 별처럼 빛난 까만 눈동자들을 의식하며..……! 다만~ 나는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