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22 º6'50'' / E 113 º33'42''
[8. Jan]
다음날 아침, 다시 업무를 시작한 작은 새들의 감미로운 소리는, 악몽으로 검게 그을린 우리의 잠들을 하얗게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난 밤새 검은 뼈들의 환상 속에 시달리며 선잠을 잤고, 내가 예상한 대로 우리 중 단 한 사람도 깊은 잠에 빠져든 사람은 없었다. 물론 냄새를 피해 발코니에 나가 잠을 잔 사람도 없었다. 난 밤새 여행의 피로감에 지친 영혼을 짓눌렀던 검은 수도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여명의 그림자가 드리운 잿빛 해변을 향해 도망치 듯 빠른 걸음으로 호텔을 빠져나왔다. 마중 나온 잔잔한 파도 소리에 이끌려 해변 산책로에 접어들자, 푸르스름하게 아열대의 하루가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상아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니 이곳의 노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해수욕을 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아침 조깅을 하듯 오랜 세월 몸에 밴 자기만의 영법으로 파도를 거스르며 제법 먼바다까지 나가 있었다. 해변을 순찰 중인 두 명의 안전관리원 중 한 명이 암호처럼 낯선 언어로 아침 인사를 건네왔고, 순간 당황한 나는 눈웃음을 지으며 동굴처럼 깊은 그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나는 선한 이방인의 표정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며, 스스로도 낯선 억지웃음을 지으며 빠르게 그를 지나쳐 숲으로 난 길로 들어섰다. 숲은 마치 거대한 유리온실과 같았다, 대부분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낯선 아열대의 나무와 화초들을 바라보며, 이제야 내가 서있는 이곳이 내가 떠나온 곳으로부터 남쪽으로 위도상15 º 아래 있는 곳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숲은 고요했고, 살랑이는 바람에 이따금 낯선 꽃 향기가 실려와 악몽과도 같은 지난밤을 보상해 주었다. 작은 해안 마을은 짧은 산책 만으로도 마을의 구조와 통행로정도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밤새 퀭해진 눈들을 일으켜 세워, 금욕주의적 수도원의 아침밥 같은 조식을 먹고 본격적인 마을 탐사를 시작했다.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면소재지 크기의 마을은 따분하리 만큼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키가 유난히 작은 사람들, 그 작은 사람들이 내는 삶의 소음 또한 작았다. 그들이 사는 작은 집과 성당, 작은 카페와 상점을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와 서둘러 짐을 싸기 시작했다. 어느덧 우리는 몬세라트 수도원의 검은 성모상과 같은 호텔을, 택시를 잡아 타고 빠르게 탈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중 그 누구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택시는 40분을 달려 우리를 도심 중심에 데려다 놓았다. 늦은 오후, 도심 전체를 뒤덮은 스모그로 인해 그곳은 마치, 타락한 수도사들과 마법사들이 은신해 살고 있는 타락한 도시와 같아 보였다. 도시를 뒤덮은 장마철 지하실 같은 공기는, 그들의 콧구멍에서 품어 저 나오는 날숨 같았다. 이색적이지만 유쾌하지 않은 거리의 냄새들은, 그들의 입 냄새와 같았다. 두 번째 우리가 묵은 호텔은 18층 높이로, 주변 건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특별하달 것 없는 평범한 건물이었다. 도어맨은 합리적인 문명과 세련된 서비스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활짝 열고 우리를 환영했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익숙한 풍경과 냄새로 이내 평안을 되찾아갔다. 배정받은 객실문이 열리자, 아내와 딸은 막달레나 수녀원을 탈출한 수녀들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본능적으로 자기들의 침대를 찾아 자유의 몸을 날렸다. 나는 바스락 거리는 린넨천으로 덮인, 잘 정돈된 침대 모퉁이에 앉아 검은 뼈들의 악몽을 떠올리며 오늘밤의 숙면을 꿈꾸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도시는 지옥불 같은 붉은 조명으로 뒤뎝혀 들떠있을 여행자들을 더 흥분시키고 있었다. 현란한 도시의 조명은, 마치 나방들이 꼬여 들기를 기다리 듯 매우 자극적으로 발광하고 있었다. 그런 종류의 조명은 매일 밤마다 일어나는 돈의 멸망과, 탐욕과 욕망의 공허한 서곡임을 나는 경험으로 알아첼 수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여행의 피로와 부족한 수면으로 무거워진 눈꺼풀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