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폭설이다!

2024겨울

by sinwol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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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엔 맛뵈기 첫눈이 아닌 이틀에 걸쳐 엄청난 폭설로 내렸다. 갑작스러운 폭설이 우리에겐 기껏 불편함이지만 겨울철 근근이 먹고사는 산과 들의 짐승들에겐 삶과 죽음을 가른다, 폭설의 전조인지 밤새 산허리를 휘돌아 불어오는 강풍에 옹색한 집 밖 세간살이들이 온통 나뒹굴었다, 세숫대야며 쓰레기통들이 날아가고, 원두막에 줄 매어 널어놓은 배추 시래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람이 잦아들자 하늘에서 무섭게 눈 덩어리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눈이 그친 후~

올봄 울타리 밖 볕 좋은 자리에 심어 열 치 남짓 자란 어린 사과나무 두 구루의 연한 모가지가 사라졌다, 어느 놈인지 심증은 가지만 직접 보질 못했으니 혹여 억울할까 특정하진 않기로 했다, 거실 창 너머 아침 햇살에 유독 검게 반질거리는 까마귀 한 마리가 제 머리보다 큰 홍시 한 알을 물고 동쪽 숲으로 사라졌다, 놈이 날아오른 곳은 아랫마을 감나무였다, 다행히 순한 집주인이 남겨놓은 까치밥 홍시가 아직은 넉넉해 보였다, 온통 하얀 들판에 고라니가 겅중거리며 뛰어가길래 유심히 보니 건너 집에서 놓아 키우는 점박 무늬 발바리 두 마리가 되지도 않는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며 뒷쫗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엔 쫓고 쫓김의 팽팽한 긴장감보단 느슨함의 평화가 느껴졌다, 뒷산 오랜 소나무 가지들이 눈의 무게를 버텨내지 못하고 밤새 쩍쩍 거리며 눈밭으로 부러져 내려앉았다, 산책 나선 솔바람 숲길엔 진한 소나무 향이 그득했다, 부러지고 찢어진 가지마다 고통과 상실의 냄새를 울음처럼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퇴근해 집에 오니 마당에 마른 길이 나있고 마당 한구석에 무거워 쓸지 못해 한삽한삽 퍼다 나른 눈 무덤이 한가득이다, 온종일 아내 몸에선 화한 파스 냄새가 났고, 피곤해 무거워진 여자의 몸은 숙명인 듯 저녁밥을 짓고, 난 무렴하게 밥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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