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을 시작하며 나는 시험과 과제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어느덧 적응된 쿠엥카 생활에서 시험마저 끝이 나자 조금의 여유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할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째는 나태하지 않도록 채찍질하는 삶에서 안정감이 찾아왔기 때문이고, 둘 째는 내 유학 생활에 돈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 집 사정에 가만히 있으려니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재택근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내 시간을 불필요하게 잡아먹었다. 학교 생활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학교 공부와 과제는 뒷전이었다. 결국 내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하지만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면서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나는 축구에 대한 꿈을 안고 스페인에 왔는데 어느덧 축구를 잊고 있었다. 나에게 더 이상 축구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남아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스페인 현지 기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봤다. 그 공고를 읽는 순간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내가 스페인에 온 이유는 이거였다. 한국과 스페인 사이에 축구를 통한 다리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어느덧 이유를 잊은 채 눈 앞에 닥친 현실을 버텨 내기 급급했다.
당장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이후 몇 가지 테스트를 거친 나는 스페인 현지 에디터가 됐다. 이 시스템에 적응하는 과정 속에서 학교 생활을 소홀히 하게 됐다. 내가 또 욕심을 부린 것이 아닌가 걱정됐다. 내가 소화할 수 없는 일을 벌인 것 같았다. 하지만 학교 생활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통해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니 그런 생각들은 점점 사라졌다.
덕분에 나는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많이 했다.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경기장 출입과 기자회견은 물론 챔피언스리그 취재와 별도의 인터뷰, 전 세계 기자들을 초대한 미디어 트립과 설명회 등에 참여했다. 기자로서 현지 구단의 인터뷰이도 될 수 있었다. 직접 현장에 가지 않으면 보고 들을 수 없는 취재를 했다. 매번 현장감 있는 기사, 유명인과의 인터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만의 기사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21살의 나는 축구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대학교를 휴학한 채 협회, 구단에서 명예기자 활동을 하며 끊임없이 연습했다. 대한민국 곳곳에 경기장을 찾아갔다. 축구를 해 본적도, 글을 써본 적도 없는 내가 실력을 키우려면 많이 보고 쓰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엔 스페인에 가기 위한 꿈을 키웠다. 스페인어를 배우면 내 무기가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평일엔 아르바이트를, 주말엔 경기장에서 취재를 하며 내 길을 걸었다. 1년 동안 모은 돈을 들고 스페인행 비행기에 올랐지만, 2년이 지나자 그때의 열정은 많이 식어버렸다. 그렇게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내 길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나의 마음을 확실히 알 필요가 있었다.
이 일에 다시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면 스페인에 온 첫 이유를 거두려 했다. 더 이상 내 인생에 축구와 관련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새로운 꿈을 찾을 것이라 다짐하며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우연히 시작한 이 일은 잊고 있던 내 열정을 깨웠고 하루하루 활기를 불어넣었다. 워낙 기복이 심하고 뭐든 쉽게 질리는 성격 탓에 이번이 끝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애정은 생각보다 컸다. 덕분에 나에겐 21살의 나보다 더 큰 꿈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