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슬머리에 뿔테 안경, 담배 냄새와 손에 든 커피. 수업시간에 던지는 철학적인 질문까지. 안토니오는 조금 독특한 교수다. 그의 수업은 새롭기도, 지루하기도 하다. 그는 이론적인 수업보다 영화, 책 등을 통해 깊은 고찰을 할 수 있는 수업을 지향한다. 덕분에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의 수업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 2학년 1학기, 다시 만난 안토니오가 맡은 수업은 ‘커뮤니케이션의 이론’이다.
안토니오는 어느 날 우리에게 한 가지 과제를 줬다. 교실 안 누군가를 색깔로 묘사하는 것. 묘사 대상자를 표시하되 누가 썼는지는 익명이다. 안토니오가 글을 읽으면 우리가 누구인지 맞춰보는 시간이었다.
그전에 안토니오는 색깔이 갖는 선입견에 관한 책을 읽어줬다. 빨간색은 열정적인, 파란색은 우울한, 노란색은 활기차다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그 색에 대한 선입견인지, 이미지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도구인지 질문을 던지는 내용이었다.
약 30명의 학생 중 두 명이 나에 대해 묘사했다. 그 두 명은 모두 흰색, 검은색으로 나를 표현했다. 내용은 “소심하지만 강한 친구. 생각이 많아 보인다. 마냥 순해 보여 ‘흰색’ 같지만, 그 친구의 눈을 잘 보면 강인함과 같은 ‘검은색’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등이었다. 모두가 단번에 누구인지 맞췄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그리운 것이 많아 보이는, 수천 킬로 떨어진 곳에 와 있는”등의 내용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수천 킬로 떨어진 곳에 와 있는’이라는 문장이 들리기 전까지 내 이야기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내가 소심하고, 내 눈에 강인함이 보인다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생각하는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기에 그들이 나에 대해 모른다고 여겼다. ‘흰색’은 나와 대화해본 이가 적어서, ‘검은색’은 내가 홀로 타지에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됐든 그들이 나를 보는 색은 흰색과 검은색이었다. 그들이 나에게 씌운 선입견이라 여겼지만 내가 그들에게 제공한 선입견이기도 했다. 나는 불필요한 날을 세웠고 그런 색깔이 나에게 다가오는데 하나의 벽을 세웠다.
처음엔 기회가 없었고 다음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나니 모든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내 울타리 안 친구들을 제외하면 벽 반대편의 내 모습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벽이 없는 내 모습만 아는 이들은 내 색깔이 무엇이라 생각할까. 무채색보다 다채로운 색깔이 나올지도 모른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색이라면, 내 진짜 색깔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