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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ia Oct 29. 2020

우울의 터널

나는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다

평탄한 인생을 살았다. 평범하고 모난 것 없이, 열심히 하면 그대로 결과가 나타나고 꾀를 부리면 그에 맞는 대가를 치르는. 긴장감 넘치는 롤러코스터가 아닌 단조로운 관람차 같은 20여 년을 보냈다. 가끔 ‘우울하다’는 말을 했지만 그저 조금 복잡한 상황에 놓인 심경을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해서였다.


나는 ‘우울’이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그래서 처음 맞이했을 때 이 감정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데 힘이 들었다. 우울을 즐기는 법을 몰라 나를 가두고 스스로 더 깊은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분명 빛이 있었는데 그것을 보지 않고 터널 속을 맴돈 것일지도 모른다.


2018년 9월, 스페인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설렘과 긴장이 공존했다. 스페인에 처음 도착했을 때와 비슷했지만 조금 달랐다. 공부를 어떻게 할지 다짐하고, 어떤 친구들을 사귈지 생각한 후 강의실에 발을 디뎠다. 


다들 들뜬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눴다. 자기소개를 하고 자연스레 주제를 바꿔가며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금세 친해져 보였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외국인은 나 하나뿐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왜 인지 기가 죽어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이도 없었다. 첫 일주일 동안 나는 겨우 용기를 내 몇몇에게 말을 걸었다. 몇 차례 대화가 오갔지만, 다음날 강의실에 들어가면 그들은 나를 피해 다른 자리에 앉았다. 10명 가까이 앉을 수 있는 긴 책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앉아 수업을 듣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들은 나와 대화를 나누는 대신 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쓸모없는 편견에서 온 추측을 속닥거렸다. 나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는데 한 번을 그러지 않았다. 외국인을 대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한국에서 외국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으니까.


그들을 이해했지만 원망했다. 나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눠보지도 않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겉모습만 보고 피하는 그들이 미웠다. 수업 중 짝을 지어 같이 문제를 풀어야 할 때, 나와 함께하게 된 이는 싫은 티를 내며 혼자 답을 적어갔다. 임의로 조별과제 조가 정해지자 나와 같은 조가 된 이는 그 사실을 무시하며 다른 친구 조에 들어가려 했다. 모든 일은 내가 보고 듣는 앞에서 이뤄졌다. 내가 스페인어를 아예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상처 받을 것이란 인지를 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스페인에 처음 왔을 때 그리운 이들이 옆에 없는 물리적 외로움을 느낀 적 있다. 이는 내가 속한 곳에서 나만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자 정신적 외로움으로 변했다. 나만 생김새가 다르고, 다른 언어로 생각하고, 나 혼자 웃지 못했을 때 이곳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 나 혼자 다른 누구라는 것을 느껴본 적 없었다. 하지만 나는 군중 속에 몇 명이 있든 눈에 띄는 이곳의 이방인이었다. 


수업은 재밌었다. 교수들은 전문적인 단어를 빠른 속도로 나열했다. 온전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내가 공부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도서관에서 복습하며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때의 쾌감이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 것도 위안이 됐다.


그럼에도 갑자기 닥친 새로운 감정을 걷어낼 수 없었다. 새로운 환경과 나를 낯설어하는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안 좋은 일들은 왜 항상 같이 일어나는지, 이 시절 유독 길거리에서 혐오의 표현을 많이 받았다. 이 표현은 내가 혼자라는 것을 되새기는 것 같았다. 이어폰을 끼고 정면만 바라본 채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 됐다. 노래와 노래 사이 잠깐의 틈이 무서웠다. 내가 듣고 싶지 않은 혐오의 표현이 들릴 까 봐.


눈물이 많은 탓에 매일 밤 울었던 것 같다. 이 힘듦이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게 언제일지 모르기에 답답했다. 우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점점 깊은 곳으로 끌고 갔다. 나의 선택과 꿈, 더 현명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미련함을 자책했다. 결국 낭떠러지에서 한 발짝만 내딛으면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에게 50개가 넘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우울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는 것이라고, 우울해도 괜찮으니 스스로를 위로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외면하지 말고 나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면서 단단해지라고. 친구는 “하늘은 우리가 딱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는 말이 좋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 정도 시련을 감당할 수 있는 강한 사람이라고.


친구의 따뜻한 말을 듣지 않았다면 “우울함을 즐긴다”는 것을 훨씬 늦게 알았을 것 같다. 그 덕분에 나는 행복에 대한 강박을 벗으려, 내 모든 감정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밖이 아닌 안을 보며 우울해도 괜찮다고 끊임없이 위로했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임을 곱씹으며 터널 밖을 향해 걸어갔다.


빛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었다. 내가 스스로를 옥죄느라 발견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이후 우울함은 투명한 상태로 내 옆에 있었다. 가끔 이 사실을 알아챘을 때 극복하는 나만의 방법도 찾았다. 일기를 쓰며 내 안을 들여다보고, 나보다 더 우울한 노래를 들으며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땐 너무 고통스러웠음에도 돌이켜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 상황에 놓였던 것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이로 인해 나는 더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상처 받았다고 결코 약한 것이 아니다. 그저 대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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