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 하나 없는 가족.
아버지는 아버지가 배운 대로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키고자 했으나 가족들을 지켜내진 못하셨다. 가게에서 아버지가 돌아오면 우리는 나와 아버지에게 '다녀오셨어요.' 인사를 올리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엄마도 아버지의 늦은 식사를 챙기시고 나면 안방으로 들어가신다. 이제 거실은 오롯이 아버지의 것이었다. 아버지가 원하는 방송, 뉴스를 보실 수 있다. 보기 싫으면 리모컨을 움직여 채널을 바꾸기만 하면 된다. 그 누구도 아버지를 방해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퇴근 후 거실에서 당신께서 보시는 프로그램을 가족과 함께 보고 싶어 하셨다. 그러면서 가족들과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셨다. 그러나 머리가 큰 두 아들들은 굳이 그 자리에 앉아 보기 싶지도 않은 프로그램을 보며 끊어질 듯한 대화를 이어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소파에 앉는다 해도 핸드폰으로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들여다볼 뿐 아버지가 원하는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살가운 아버지가 되고 싶으셨으나 엄마도 아들들도 아버지의 살가움이 살가움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이 집에서 나는 무어냐."
아버지는 어느 저녁, 우리를 향해 물으셨다. 그리고 집에 와도 외롭다고 하셨다. 우리가 건네는 인사가 공허하다고, 자기가 오면 각자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비록 부요하게는 아니어도 최선을 다해 가족을 위해 살았노라고. 그런 아버지에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단지 아버지가 보시는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아버지가 오셔서 방에 들어간 게 아니라 계속 방 안에서 개인적인 일을 하고 있었노라고 아버지가 오해하신 거라고 말씀드리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후 아버지가 두 차례에 걸쳐 입원하시게 되면서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비로소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셨다 한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곧잘 '어리광'을 부리셨다. 어리광과 아버지의 존엄 사이에서 아버지조차도 헤매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리광을 부리시는 아버지는, 아파야 자신을 바라보는 가족들을 보며 안심하셨던 것이다.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 앞에서 나는 아버지 말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지를 찾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아버지됨을 가르쳐주지 못했던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문제의 원인을 찾아 올라가 봤지만 상처만 존재할 뿐 상처를 낸 확실한 범인을 색출해낼 수가 없었다. 이 비극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아버지의 날은 저물었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날이 밝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승자 없이 상처입은 사람들만 있었다. 아픈 나날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