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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Feb 03. 2023

엄마는 병원을 싫어하신다.

죽더라도 집에서 죽을란다.

 세상 답답한 사람이 아픈데 병원에 안 가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병원을 자주 애용하셨던 것과 달리 엄마는 병원을 극도로 싫어하신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과거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보여준 위압감이 엄마를 주눅 들게 했다고, 나는 전해 들었다. 그 외에도 병원의 포르말린 냄새에 엄마는 극도로 민감하셨다. 엄마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은 그것이 소리든 냄새든 엄마를 아프게 했고 기어이 병들게 했다. 무엇보다 병원비가 주는 부담감에 죽더라도 집에서 조용히 죽고 싶다고, 만약 몹쓸 병에 걸리면 그냥 수면제를 먹고 죽어버릴 거라는, 등어리 서늘한 말을 너무나 담담하게 하시곤 하셨다. 대신 약만 지을 수 있는 병원이라든지 약국의 약들을 애용하셨다. 그 약들이 자신을 지켜줄 거라고 확신하시면서 말이다.


 엄마는 코로나가 창궐하는 중에도 백신을 맞지 않으셨다. 지금까지 먹어오는 약들이 자신을 지켜줄 거라는, 그래서 코로나에 걸리지 않으실 거라는 미신 같은 확신 때문이었다. 일흔이 넘은 노모에게 줄 게 없어 코로나를 드리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미신을 깨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기에 나 역시 몸이 안 좋거나 감기 기운이 있을 때 기타 다양한 문제 상황이 예측되면 본가에 올라가지 않았다. 그렇게 코로나 끝물까지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이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백신도 4차까지 맞은데다가 코로나 끝물이니 몸이 아픈 것도 코로나가 아니라 단순 감기라 생각했겠지. 동생은 아픈 몸을 기어이 끌고 엄마가 있는 본가로 가서 주말 내 몸져누워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엄마, 바로 병원에 가보자.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어, 알았어. 가볼게.’


 그리고 다음 날 전화하면 깜박 잊으셨다는 둥, 몸이 괜찮아서 지금 가는 건 민폐라는 둥 핑계를 대신다. 그리고 3일째 되던 날, 엄마는 아무래도 당신께서도 코로나인 듯하다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으셨다.


 ‘엄마, 당연히 바로 병원에 가야지. 지금 가자.’

 ‘그런데 도저히 갈 수 있는 몸이 아니야. 온몸이 힘이 하나두 없어.’

 ‘내가 갈게. 나랑 병원에 가자. 여기 회사 일 다 정리하고 바로 올라갈게.’

 

 엄마는 급하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안 돼. 너도 옮아! 내가 알아서 해. 그러니 오지 마. 절대 오지 마!!’

 그러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몇 번의 언쟁이 오간 결과, 본가에서 약 두 시간 거리에 있던 동생이 자기 이름으로 약을 지어 본가로 갔다. 동생 역시 코로나였으니 엄마와의 접촉이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더러 굳이 병원 가기 싫다는 엄마를 데리고 병원에 갈 필요도 없어졌다. 동생이 코로나 검사를 한 결과 코로나가 확실했고 엄마와 동생은 함께 병을 앓았다. 몇 번의 고비를 넘어 잘 버텨냈으나 여전히 엄마는 잔기침이 심하고 운신하기 힘들어하셨다. 그 와중에 엄마는 의기양양하게 나에게 말했다.


 ‘거봐, 병원 안 가도 괜찮다니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그래도 건강을 되찾은 듯 들리는 목소리에 마음 한편이 편안해진다.




 꽤 오래 전. 아버지의 엄지발가락이 썩어 들어가는 그 시점 엄마는 다급하게 나에게 전화를 걸어 말씀하셨다.


 ‘니 아빠 답답하게 발가락이 썩어 들어가는데도 병원 갈 생각을 안 한다. 왜 저렇게 답답하게 사는지 정말 모르겠다. 니가 아빠한테 이야기 좀 해서 병원 좀 가보라고 말씀 좀 드려라.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지. 저렇게 또 너네 고생시키고 가족 고생 시킬라.’


 바로 몇 개월 전 내가 감기에 걸렸을 때에도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미련하게 굴지 말고 빨리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와. 괜히 더 아프지 말고. 어?’


 엄마의 이런 전혀 다른 반응이 나는 여전히 어렵다. 나나 아버지가 병원에 안 가셨을 때의 답답함을 충분히 아실 텐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여전히 당신 아프실 때에는 병원 갈 생각을 하지 않으신다.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결국 돌아가신 아버지를 경험하셔서일까, 어머니가 병원에 가서는 안 되는 이유는 더욱 견고해져만 간다. 그리고 그 견고함 앞에 아들 가슴 한복판에 딱딱한 돌멩이가 얹힌다. 이걸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그리고 내가 나이를 더 먹어 엄마 나이가 되면 그때는 엄마가 왜 이러시는지 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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