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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Mar 08. 2022

1. 아버지의 양화점

부끄럽게도 나는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아버지는 양화점을 하셨다. 서양 신발인 구두를 만드셨던 아버지의 손은 늘 상처가 많았고 거칠었고 또 검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뚝딱뚝딱거리면 구두 한 켤레가 나오는 게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구두를 손수 만드셨고 솜씨도 꽤 있으셔서 아버지의 구두를 찾는 손님도 많았고 특히 설이나 추석 즈음에는 그래도 지폐가 두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수제화보다는 잘 빠진 구두를 바로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아버지의 양화점은 구두를 만드는 것보다는 기성화를 파는 곳으로 바뀌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두를 수선하는 이른바 '구두 병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부끄럽지 않았던 아버지의 양화점은 사춘기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점차 부끄러운 곳이 되어버렸다. 구두 한 켤레를 만들어내던 아버지의 투박하게 거칠었던 그 검은 손도 이제는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손톱 소제를 하시지만 늘 손톱 밑은 더 까맣게 물이 들었던 그 손이 나는 부끄러웠다.


 아버지의 가게는 가능한 사람들이 없는 시간대에만 찾아가게 되었다. 당시 아버지는 학교가 끝나면 반드시 가게에 들러 '학교 다녀왔습니다아!'라는 인사를 하게 하셨는데 그 인사를 하기 위해 나는 부러 느즈막하게 학교를 나와야 했고 때로는 친구들과 잘 가다가 문방구에 들르는 걸 깜박했다며 다시 골목을 돌고돌아 구두 병원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양화점을 들렀다. 저기 아버지의 양화점이 보인다. '성심 양화점.'


 "학교 다녀왔습니다."

 "그래, 공부 열심히 했고? 집에 가서 밥 먹어라."

 "네, 아빠. 먼저 들어가 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이 세 문장이 이루어지는 데 얼마나 걸릴까?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이 인사를 하기 위해 나는 세심하게 작전을 짜야만 했었다. 물론, 이 작전이 매번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아빠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자마자 바로 반 친구들과 눈이 딱 마주친 적이 많았다. 적잖이 당황한 나는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는 저 가게에 계신 분이 아버지냐는 질문을 받지 않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기어이 눈치 없는 새끼는 저 가게에 계신 분이 누구냐고 묻는다.


 "아, 우리 아빠... 친...구..."



 훅, 정신이 들고 잠에서 깬다. 철없던 중학생 시절, 아버지의 양화점이 창피해서 지껄였던 거짓말은 얼마 안 가 탄로가 났다. 그 때 거짓말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서인지 아니면 그 거짓말이 탄로가 났던 게 큰 트라우마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흔을 넘긴 지금도 일 년에 한두 번씩은 그 때 순간을 꿈으로 꾸곤 한다. 그럴 때면 꼭 아버지한테 전화를 건다. 별일은 없으신지 혹 아프신 데는 없으신지. 그러면 늘 아버지는 그러신다. '암시랑도 안 해. 아픈 데 없어. 괜찮어.' 아버지는 내가 당신의 직업이 부끄러워 아버지 자체를 부정했었던 일을 알고 계실까. 그리고 그 경험은 당시 아버지의 나이만큼 나이를 먹었어도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아픈 기억이 되었다는 걸 아버지가 아신다면 뭐라고 이야기하실까. 상처 때문인지 아니면 죄책감 때문인지 모를 이 꿈은 불과 며칠 전에도 2년 전에도 그리고 5년 전에도 겨울 감기처럼 찾아왔다가 가슴 한 켠 욱신거리게 만들고는 사라져 버린다.


5년 전에도 그랬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우, 니 아부지 발에서 썩은내가 난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해도 그렇게 안 받더라고. 아빠가 너네 말은 잘 들으니까 내일 오면 제발 병원 좀 가라고 이야기 좀 해라. 큰일 아닌가 모르겠다."

 

 그리고 그날 밤, 그 꿈을 또 한 번 꿨다. 그런데 이번 꿈은 결말이 좀 달랐다. 기어이 눈치 없는 그 새끼가 저 가게에 계신 분이 누구냐고 물었다.


 "어. 우리 아빠야. 우리 아빠, 구두 만드셔."


 훅, 정신이 들고 잠에서 깼다. 철없던 중학교 시절, 구두 병원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양화점이 창피했고 또 친구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감정, 누구냐고 묻던 친구의 물음, 그 물음에 느껴졌던 화끈거림까지 생생하게 살아남아 잠에서 깨고서도 한참을 몽롱했다. 과거에는 하지 못했던 그 말을 꿈에서 내뱉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 안도감이 든다든지 혹은 해방감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질적인 대답을 했던 꿈 속의 나에게 왠지 모를 배신감도 느껴졌고 불안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계신 본가로 갔다.

 엄마의 말처럼 아빠의 발에선 심한 악취가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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