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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Mar 08. 2022

2. 꿩대가리의 폭탄 돌리기

사실 나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신파극을 보면 꼭 주인공은 몹쓸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다. 그런데 극 중 주인공의 병원 생활은 어딘가 모르게 우아해 보였다. 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보이는 순간마저도 고결해 보였다. 그러다가 꼭 환자는 다른 더 예쁜 환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병원 의시나 간호사와 소위 '썸'을 타기도 한다. 그래서 나도 병원에 입원해서 생활하면 저런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닐까 기대도 해보았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회가 왔다. 대학교 때 교통 사고를 당해 3주 가량 입원을 하면서 극 중 병원 생활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이었는지를 아주 뼈저리게 체험하고 왔었다. 병원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었으며 극단적인 고통과 괴로움 그보다 조금 덜한 아픔들. 그로 인해 흘리는 신음들과 눈물, 애통함 등이 존재하는 그냥 '아픔 천지'였다. 거기 오래 있으면 로맨스는커녕 우울증이 별책부록처럼 따라올 것만 같았다. 실제로 병원에 있으면서 삶과 죽음이 살갗에 닿을 듯 가깝다는 걸 느꼈다. 양 손가락으로 실을 팽팽하게 잡아 끈다. 그 팽팽한 실이 삶이고 나머지는 모두 죽음처럼 느껴졌다. 지나치게 가깝게 죽음은, 고통은 나와 같이 살고 있었다.


 그러고 딱 두 계절이 지난 겨울이었을 거다. 오셔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이 불안했었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불안감에 마음 한 구석은 기분 나쁘게 간질거렸다. 그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쿵!, 퍽'하는 소리. 저 소리의 주인공이 아버지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마음 속에서 누군가가 계속 속삭이는 듯했다. 저 소리의 주인공, 네 아버지라고. 그 순간 엄마도 나에게,


 "아무래도 니 아빠 무슨 일이 생긴 거 같다. 니가 한 번 나가봐라."


 나중에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그날 밤 엄마 역시도 이상하게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고 계셨다고 한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그 예감이 엄마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옷을 갈아입고 있는 중에 바로 전화가 울렸다. 그리고 나는 경찰서로 엄마는 병원으로 뛰어나갔다. 한 손으론 덜덜 떨고 있는 엄마의 손을 붙잡고, 또 한 손으론 따그닥따그닥, 떨고 있던 내 턱을 부여잡고 말이다.


 그해 겨울은 엄마와 나에게 유독 추웠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그해는 그래도 많이 안 추웠던 겨울이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겨울은 계절과는 꽤 상관이 없을 수도 있나 보다. 그렇게 약 6개월동안 나는 대학 생활에 알바, 아버지의 병수발까지 긴 시간을 '춥게' 보냈다. 다른 사람들은 따스한 겨울, 무더웠던 여름으로 기억하는 그해를 엄마와 나는 춥고 서늘하게 보냈다.



 

 이런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던 건 아마도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에게서 나는 냄새 때문이었을 거다. 사람의 감이 소름끼치게 정확할 때가 있다. 논리 과정은 싹 빠지고 냄새 하나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버지의 발을 보기도 전에, 냄새로 진원지를 알 수 있었고 단박에 '뭔가 이상하다, 저건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상당히 심각하다'는 이상 신호를 감지하고 있었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지만 그건 무언가가 썩어가는 냄새였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향한 잔소리로 내 안에 감지되는 이상 신호와 불길한 예감을 떨쳐내려고 애썼다.   


 "아빠, 병원 가보셨어요? 이거 엄청 심각한 거 같은데요? 아빠, 이거 그냥 두면 안 될 거 같아요."

 "괜찮어. 암시랑 안 혀. 약 바르면 금방 나아."

 "에이, 아빠. 좀 제 말 좀 들어요. 월요일에 당장 병원에 좀 가요. 알았죠?"

 "알았어. 병원 한 번 가볼게."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아버지도 무서우셨던 거다. 분명 약을 발라도 낫지 않는 자신의 발을 보면서 안 좋은 이야기를 들을 것을 뻔히 알았기에 그 최후통첩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고 계셨다. 두려움 속에서 아버지는 병을 키우고 계셨다. 누가 봐도 멍청하고 어리석은 선택이었지만 아버지의 두려움은 그 어리석은 선택을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믿고 계셨던 셈이다.

 그러나 또 한 명. 그 머저리 같은 선택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 나는 이미 아버지의 발에서 나는 그 지독한 냄새를 맡으며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챘었고 엄마에게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버지가 앓고 있던 당뇨에 대해 찾아보았으며 상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흔히 찾아올 수 있다는 당뇨족에 대한 정보까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당뇨족이 심할 경우 상처 부위를 절제해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무책임한 희망으로 덮어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순간 듣게 될 '불길한 최후통첩'을 피하기 위해 꿩마냥 대가리를 수풀에 박아놓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어쩌면 나는 이 폭탄이 내 앞에서만큼은 터지지 않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인천에서 지방에 있는 직장으로 돌아왔고 월요일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병원 잘 갔다왔어. 별일 아니랴. 걱정하지 말어."

 "아우, 다행이에요. 아빠, 치료 잘 받으시구요. 주말에 뵐게요!"


 분명 내 이성은 아버지와의 통화에 대해 의심하라고 경고를 보내고 있었지만 괜찮을 거라는 아버지의 말을 방패 삼아 그리고 내 앞에서는 폭탄이 터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덮어두었다. 진짜로 아무일 아닐 거라고. 그러나 그 폭탄은 내 동생 앞에서 터졌다. 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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