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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부부 May 18. 2022

여정의 시작_EP1

세 가지 만남

집을 나온 지 137일째. 우리는 인도 북부의 다즐링에서 8시간 동안 4륜 택시를 타고 삼텐 수도원에 와 있다. 여행정보라고 한 줄 나오지 않는 이곳에 머물기로 한 것은 몽골에서 만난 세 사람 때문이었다.


우리는 몽골에서 중국으로 육로를 넘기 위해 매일 새벽 6시부터 대사관의 담벼락 앞에 줄을 섰다. 비 합리적인 비자 신청 방식이었다. 뼈가 시린 몽골의 겨울바람을 참으로 줄을 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루 선착순 30명에게만 비자를 신청할 수 있는 표를 발행해 줬기 때문이다. 노란색 그 표 한 장을 얻겠다고 말이다. 미리 알았더라면 이런 개고생을 사서 하지 않고 한국에서 미리 신청했겠지만 대사관에 직접 가서 비자를 받아보는 것도 나의 여행 로망 중 하나였다. 3일째 아침, 드디어 서류를 작성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허접한 표를 한 장 받았다. 3일 내내 함께 줄을 선 몽골인이 부정한 방법으로 우리 것을 한 장 더 챙겨준 덕분이었다. 미련하게 함께 추위에 떤 보람이 있었다. 대사관의 입구가 열리고 기쁨도 잠시 그 내부는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뭔 놈의 정책이 변했다며 거주증이 없는 외국인은 자격 미달이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뿐만 아니라 그날 줄을 섰던 외국인의 2/3는 탈락이었다. 내가 배운 중국어를 무기로 대사관 직원과 언쟁을 해봤지만, 나라의 정책이 외국인의 항의로 바뀌는 일은 없었다. 중국어를 한참 듣던 내 뒤의 프랑스 커플이 물었다.

“무슨 일이래?”

“정책이 바뀌어서 육로로 중국에 갈 수 없대”

“넌 중국인인데 못 가는 거야? “

“난 한국인인데,,, 거주증이 없어서 안된대 “

“그럼 우리도 안되네? …………..(잠시의 정적) 다른 나라 가면 되지 뭐, 기다리느라 고생만 했네, 나가서 따듯한 거나 마시자. “

분을 못 이겨하는 우리를 데리고 근처 카페로 간다.


이 모험심 가득한 커플은 몽골에 오자마자 오토바이를 샀다. 고비사막을 찾아가겠다는 목표 하나로 지도만 보고 달렸다고 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은 달리다가 게르가 보이면 하루 이틀을 묵은 다음 또 달리기 시작한다. 한 달을 달렸지만 결국 고비사막은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둘은 초원을 달리며 만난 유목민들, 게르에서 보낸 따뜻한 밤들을 설명했다. 이들은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몽골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흥분하며 얘기했다. 그리고 내게 우리가 본 고비사막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물었다.

그들의 목적지였던 고비사막을 나는 30분 남짓 본 것 같다. 고비사막의 황홀함을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머문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일까?아니면 너무 완벽한 여행이라 할말이 별로 없어서일까?

“노을이 황홀하고 멋졌어, 사막 정상까지 올라가는 게 아주 힘들었고.”

미숙한 영어 때문이 아니라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투어사를 통해 5인이 함 팀을 꾸렸다. 인원이 적어지면 더 많은 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사의 가이드 덕에 지도에도 없는 길을 달려 목적지에 누구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포인트마다 설명을 듣고 자유시간을 잠깐 가지고 인생 사진을 찍었다. 게르에 모여 밥을 먹고 밤이면 별을 봤다. 처음 보는 밤하늘이었다. 겨울로 접어들기 바로 전이라 입김이 나올 정도로 쌀쌀했지만 그 별을 보겠다고 목을 주무르며 고개를 들고 있었다. 매일 밤 황홀한 별빛으로 가득한 하늘을 봤고, 다음날 차를 타면 또 다른 멋진 곳에 도착해 있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몰랐다. 알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일정표에 짜인 좋은 곳들을 완벽히 소화해 냈다. 고비사막에서 낙타도 타고 사막 정상에서 노을을 봤다. 너무나 성공적인 여행이었는데, 내가 어디를 갔다 왔는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니….

고비사막을 보러 몽골에 온 프랑스 커플은 과연 제대로 된 여행을 했는가? 그렇지 않았다. 목표했던 고비사막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성공적인 여행을 했는가? 그렇다. 뒷 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게 내가 원하던 여행이었나? 출발할 때의 그 모험심은 다 어디로 간 거지? ‘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은 단지 한국을 떠나 현실에서만 멀어지면 아무 상관없는 것이었나? 내가 목표한 지점을 다 이으면 세계여행이 완성되는 것일까? 여행을 하겠다는 큰 결심에 비해 여행에 대한 내 고민은 크지 않았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는데 어떤 무엇이 빠져있었다. 우리는 늘 인터넷에 올라온 추천 여행지 혹은 ‘꼭 봐야 하는 곳’이라는 확실한 답을 손에 쥐고는 그 길을 따라갔다. 트립 어드바이저가 추천하는 곳들은 대개 실패가 없었고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원한 것은 별점과 함께 달린 리뷰 속 내용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이었다.

여자는 우리에게 말했다.

“너흰 2년이라는 긴 시간이 있잖아. 겁내지 말고 더 모험해 보기에 충분해, 세상에는 정말 멋진 곳으로 가득하거든.”

“중국에 못 가게 되었네,, 너희는 어디로 갈 거야?”

“우리를 받아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한국도 좋겠다! 강남스타일이 뭔지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한국 좋지, 그래, 어쩌면 중국 비자를 못 받은 건 더 잘된 일일지도 몰라.”

우리는 몽골 이후 단체 투어를 한 적이 거의 없다.

짧지만 강렬했던 고비사막


울란바토르에서 머물렀던 가라지 게스트 하우스 주인은 오양가와 바기는 젊은 커플이었다. 둘은 회사를 다니면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느라 늘 자신들의 영업장을 비웠다. 중국 비자를 받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던 탓에 어쩌다 이곳의 장기체류자가 된 우리들은 주인을 대신해 리셉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주인들이 굳이 부탁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전 내내 우리가 빈둥거릴 시간에 체크인을 할 손님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게스트에게 방을 안내하고 울란바토르에서 이동하는 법들을 대충 알려 준 다음 숙소의 시설들만 설명해 주는 간단한 일이었다. 그 수고에 대한 답례로 사랑스러운 몽골 주인 커플은 우리를 자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바기는 우리의 세계여행 계획을 듣더니 한 가지 제안을 했다.

“2년 내내 여행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일을 하면서 다녀봐요. 지금처럼요.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할 수 도 있고, 농장이나 뭐든요. 몇 개 사이트를 알려줄게요. 마음에 들 거예요!”

호스트가 무료로 집을 제공하는 카우치 서핑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일을 할 수 있다니! 솔깃하다 못해 눈이 번쩍 뜨이는 제안이었다. Workaway , wooping, help-ex 세 개의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각 사이트마다 장점이 있었다. 그 주요 콘셉트는 같다. 호스트가 원하는 일을 하루 4-5시간 해 주는 대신 숙식을 제공받는 것이다. 단순 육체노동부터 마케팅, 그림, 사진, 요리, 레슨 등등 전 세계의 호스트들이 필요한 노동력을 설명해 놓았다.  그중 workway는 연회비를 내야 한다는 조금의 단점이 있지만 세계 각국의 호스트가 원하는 스킬과 일자리를 큰 카테고리별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어 영어 설명에 익숙지 않은 우리도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헬프 엑스는 무료 사이트였지만 내가 원하는 호스트를 찾는 것이 어려줘 워크 어웨이 유료사이트가 낫겠다 생각했다.

오양 가는 포즈(만두) 빚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마지막 한 사람은 가라지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KARL BUSHBY 아저씨였다. 우리가 만났을 당시 그는 18년째 여행 중인 괴짜 아저씨였다. 비행기도 자동차도 타지 않고 마트에서 끄는 카트를 개조해 밀고 다녔다. 칠레부터 북아메리카까지 걸어서 올라와 베링해협을 헤엄쳐 건너 이곳 몽골까지 온 것이다. 말이 되는 일인가? 베링해협을 헤엄친다고?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겉으로는 아무 사연도 없어 보이는 평범한 아젔였는데 상상도 못 할 미친 사람이었다. 아저씨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10명 남짓한 본인의 팀과 머무르며 몽골에서 낙타를 훈련 중이라 했다. 그리고는 그 낙타를 데리고 혹은 타고 실크로드를 따라 영국까지 가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아저씨 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각자의 인생이 다르듯 여행도 다른 것일 뿐이었다. 아저씨는 방송사와 촬영을 하고 그 수입으로 생계와 여행을 이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돈을 벌 수도 있겠구나. 어디서 이런 열정이 나오는 것일까. 18년 동안이나 말이다. 역마살도 보통 역마살이 아니었다. 아저씨의 여행을 듣고 나니 나도 모를 이상한 용기가 샘솟는다.

'이런 미친 인간도 있는데,, 나는 조금 더 모험을 해도 되겠군..'


몽골에서 만난 이 세 사람이 우리를 이곳 수도원으로 데려다 놓았다. 워크 어웨이로 돈을 벌 수는 없었지만 (종종 급여를 제공하는 곳도 있고, 사정이 좋지 않은 곳의 경우는 식비를 내야 하는 곳도 있다.) 숙식이 제공되니 여행자에게는 돈을 버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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