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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부부 May 18. 2022

수도승이 되는 길_EP3

명상도 연습이 필요하다

밤새 머리끝까지 이불을 당겨 올리며 찬 공기와 싸웠다. 불편한 잠자리 덕분에 7시쯤 눈이 떠졌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이불을 뒤척이다가 어제 봤던 새끼 강아지들이 낑낑대는 소리에 밖으로 나왔다. 누군가가 수도원에 임신한 어미 강아지를 버리고 가는 바람에 라마가 돌봐야 하는 식구다. 사람들은 라마가 불쌍한 생명을 거두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종종 동물들을 버리고 간다 했다. 희뿌연 아침 안개가 하늘 끝까지 올라와있다. 히말라야 산맥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리뷰와 달리 앞이 보이지 않았다.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살에 닿자 소름이 돋았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수도원의 건물과 마당, 펄럭이는 오색 깃발이 전부였다. 정신을 차려보려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내려온다는 물로 세수를 시작하는데 얼얼한 온도에 잠은 달아나고 없었다. 수도원에서 맞는 첫 아침이었다.


삼텐 수도원은 탄트릭 불교의 절이다. 흔히 밀교로 알려져 있는데 동아시아 북방불교(대승불교:대중을 깨달음을 우선시), 동남아시아의 남방불교(소승불교: 개인의 깨달음을 우선시)와는 또 다른 종파다. 탄트릭은 힌두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불교로 우리에겐 티베트 불교로 익숙하다. 지리적으로 이곳은 네팔, 부탄, 중국과 가깝기 때문에 힌두교, 시크교, 이슬람교는 찾아보기 힘들어도 탄트릭 절과 오색의 깃발이 날리는 가르쵸는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생각했지만 수도원의 모든 식구들은 부지런히 하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베여 있었다. 도지는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라마는 푸자(제사)를 하기 위해 마을에 내려갔, 켈리는 위파사나 (일상생활에서의 행동을 관찰하는 수행) 명상을 했다. 모두에게 분주한 아침이다. 우리는 날이 개면서 비치는 햇볕을 받기 위해 마당에 앉아 우유를 섞은 홍차를 마셨다.


도지가 준비한 아침은 짬빠다. KBS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에서 티베트 사람들이 먼길을 떠날 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곡식 가루를 챙겨 다니며 끼니때마다 물에 개어 주물러 먹는 것을 본 적 있다. 미숫가루와 거의 비슷한 맛이었다. 우유와 설탕을 넣어 먹으면 맛있겠다고 얘기를 했더니 그렇게 먹기도 한다고 했다. 우리는 뜨거운 물에 짬빠를 몇 수저 풀어 넣고 후루룩 마셨다. 도지와 다와는 뻑뻑한 덩어리를 손으로 주물러 먹었다.


육식을 하지 않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단백질은 우유와 계란이었다. 매일 아침 아랫마을 청년이 플라스틱 사이다병에 갓 짠 우유를 한 병씩 배달해 줬고 이것으로 챠이 (홍차를 끓여 우유를 부어 마시는 밀크티)를 만들어 먹었다. 계란은 마을의 닭이 알을 낳으면 한 번씩 살 수 있는 재료라고 했다. 이곳의 삶의 방식을 듣는 재미에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뭐든지 귀한 이곳은 지난날 내가 살던 방식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한국에서의 삶은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았다. 집안일은 버튼만 누르면 간단히 해결되었다. 장을 보는 것도, 물건을 사는 것도 간단했는데,, 이곳에선 필요한 물건을 사려면 일주일에 한 번 서는 장날을 기다리고 참아야 했다. 이곳에는 누를 버튼이 없었다. 유일한 전자제품은 물을 끓이는 포트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도 가스레인지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삶의 모습이 너무 달랐지만 불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사라지기 전에 일을 마치고 수도원으로 돌아온 라마는 우리에게 청소와 페인트칠을 부탁했다.  

“깨끗하게 쓸어요.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빗자루 질에만 집중하며 명상하세요.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명상입니다.”

“네”

라고 명쾌하게 대답했지만 어려운 과제였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다 떠오른다. 오늘 점심은 뭘까, 길상이는 잘 쓸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뭘 할까, 마당에 뛰어노는 강아지가 부럽다. 거칠한 싸리빗자루로 수도원 한 바퀴를 다 쓸고 나니 이번엔 화초에 물을 주라고 했다.

“화초에 물 주는 생각만 하세요.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네”

라고 했지만 역시 될 리 없다. 빗자루질이나 물 주는 것에는 소질이 있는 것 같은데 명상에는 그렇지 못했다. 켈리가 한다는 위파사나 명상도 이런 종류의 것이다. 일상에서 깨어있는 연습을 계속하는 것이다. 연습이 필요할 만큼 어려운 일이다. 공동체 생활에 관심이 많은 켈리는 인도 남부 폰디체리의 오로빌(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는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흥미롭고 이상주의적인 실험을 하는 공동체: 나무 위키)에서도 꽤 오랜 시간을 지냈다. 여행하지 않았다면 평생 들어보지 못할 낯선 이름들이었다. 켈리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프랑스에서 공립학교 미술 선생님을 하다가 문신과 명상에 빠졌고, 지금은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명상을 하며 벽화를 그리는 중이었다. 우리보다 2주 먼저 이곳에 왔기 때문에 그녀는 수도원 생활의 선배였다. 벽화를 작업 중인 곳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하루 중 그녀를 만날 기회는 삼시세끼 끼니때 뿐이었다.


“이번에는 페인트 칠입니다. 페인트칠에만 집중하세요.”

수도원의 나무 기둥은 세월에 갈라지고 일어나 낡았지만 지붕은 거의 새것이다. 2016년 네팔 지진 발생 당시 이곳도 피해를 입었다. 박타푸르나 카트만두만큼은 아니겠지만 히말라야 산맥으로 이어진 곳에 자리한 100년 된 수도원의 지붕이 무너져 내렸으니 라마의 세상도 같이 무너졌을 것이다. 이곳을 복원하기 위해 라마는 많은 대출을 받았지만 자재를 사는 것만으로도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푸자만 해서는 메울 수 없는 돈이라 도지와 다와에게 수도원의 공방 한편을 내어주고 가구를 팔았다.  그리고 행운처럼 이 지역을 트레킹 하던 외국인을 만나 워크 어웨이를 듣게 된다. 전 세계 여행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대신 본인이 원하는 종류의 노동력을 바꾸는 시스템을 알게 된 후 본격적으로 노동력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라마가 처음 호스팅 한 자원봉사자는 집을 지을 줄 아는 스위스인이라 했다. 그를 통해 여행자들에게 잠재된 가능성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모인 유럽 봉사자들이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수도원을 복원하고, 라마가 지낼 수 있는 작은 집도 지어주었다. 라마는 계속해서 봉사하길 원하는 여행자들을 받아들여 수도원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

낡은 기둥 위에 새 지붕이 얹힌 수도원의 사연은 깊었다. 갈라진 나무 기둥 위에 라마가 입는 가사의 색과 비슷한 자주색을 칠했다. 길상이와 첫 신혼집을 마련하고 이곳저곳을 수리하면서 페인트칠을 해 봤다. 일은 수월했다. 쉬지 않고 묵묵히 일만 했다. 어서 빨리 이곳을 제대로 바꾸어 놓고 싶었다. 수도원을 복원하는 일에 나의 노고도 함께 하는 것 같아 열정이 타올랐다. 붓이 지나간 자리는 낡은 세월을 다 덮고 새것의 냄새를 풍겼다. 적성에 맞는 일이었다.

챠이를 들고 우리를 다시 찾은 라마는 깜짝 놀란다.

“엘리, 숀. 쉬면서 하세요. 한국인들 원래 열심히 하나요? 오늘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차도 마시고 쉬면서 천천히 해요. 자 여기”

갓 제대한 군인들 마냥 의욕이 넘쳤다. 라마는 3일은 칠할 페인트 업무를 반나절 만에 끝이 났다며 신기해한다. 이게 뭐라고 3일이나 작업할 생각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흰색 페인트 작업이 제일 많은데, 숀과 엘리가 책임지고 하면 좋겠어요”

정규직으로 채용된 기분이다. 한국 직원들의 솜씨가 아주 마음에 든 것이 틀림없다.


오전을 바쁘게 지내긴 했지만 다른 이들은 우리보다 더 바빠 보였다. 켈리는 벽화작업으로 허리가 아프다 했고, 도지와 다와는 공방에서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다. 사실 라마가 말한 하루 5시간이라는 계약은 그저 말뿐이지만 고요한 수도원에서 바쁘게 지내지 않으면 우리도 심심하긴 마찬가지였다. 라마에게 더 도울 일이 있냐고 묻자 저녁 식사 준비를 해 달라 했다.

“한국음식 아무거나요. 한국음식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요”

한국음식이라.. 부엌 수색부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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