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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부부 May 18. 2022

서로를 알아가는 중_EP5

친구가 되었지

장날이 돌아왔다.  사람이 많아졌으니 더 많은 재료들이 필요했다. 우린 일주일 치 먹을 재료의 식비를 일인당 1000루피(17000원)씩 내면 다. 여기에 켈리 빼고 모두들 동의를 했다.

‘또 시작이군’

“난 음식을 적게 먹는데 똑같이 1000루피를 내는 것은 정의에 어긋난다 생각해. 난 700루피를 내겠어”

아마 켈리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정의’ 일 것이다. 맞는 말 같기도 틀린 말 같기도 하다. 또 긴 아침 논쟁이 이어질 것 같았다.

 “그럼 내가 300루피 더 낼게”

라고 말하며 나는 빨리 장이나 보러 가고 싶었다.

“안돼 그건 정의에 어긋나. 나는 내가 먹는 양만큼 돈을 내겠다는 것뿐이야.”

모두들 이견이 없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결국 켈리를 제외한 모두는 1000루피를 냈다.

이제 누가 장을 보러 갈 것인지 정해야 했다.

켈리는 벽화작업을 해야 하니 갈 수 없다 했고 시와는 가고 싶지 않다 했다. 죠쉬는 시장을 가고 싶어 했지만 우리가 가고 싶지 않았다. 마을까지는 한 시간 동안 산길을 내려가야 한다. 돌아오는 길은 더 힘들다. 직전 장날에 마을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내내 숨을 헐떡거렸다. 라마와 도지는 오르막도 15분이면 충분했는데 나와 길상이는 한 시간 하고도 삼십 분은 더 올라야 했다. 계단과 숲길로 이어진 그 길을 또 나서야 하다니... 하지만 사야 하는 식재료 양이 많아 최소 2명은 함께 가야 했다. 장날이 좋은 점도 있다. 한산하던 마을 골목은 축제라도 열린 것처럼 길이 미어터진다. 빵집, 채소, 옷과 가방, 향신료 등등 없는 것이 없는 오지의 백화점이 된다. 가는 길이 힘들긴 해도 구멍가게에서 탄산음료와 과자도 사 먹을 수 있으니 그 기쁨 하나로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빠르게 내려간다. 수도원에 오래 있다 보니 이런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낀다. 라마는 내려가는 김에 전기세도 내 달라 부탁하며 돈을 쥐어준다.

이번 장날도 좁은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이었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온 것인지 깜짝 놀랄 만큼 인파가 모였다. 조시는 오래된 여행자답게 노점에서 채소들을 한 포대를 담고는 거침없이 가격을 깎는다. 안 그래도 저렴한 채소 물가를 또 깎다니.. 주인의 인상으로는 절대 안 깎아 줄 것 같았는데 고개를 양쪽으로 까딱까딱 흔들더니 결국 죠쉬가 원하는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졌다. 음식을 두 포대쯤 샀다. 무거운 밀가루와 감자는 구멍가게 아저씨에게 삼텐 수도원의 라마 이름을 대며 포대를 내려놓으니 해결되었다. 장이 끝나는 저녁에 트럭으로 싣어다 주기로 했다.

당장 먹을 부식과 과일들만 가방에 챙겼다. 조시는 돈을 굉장히 아끼는 편이었지만 감자칩이 먹고 싶은지 가게 앞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과자에 눈을 떼지 못한다. 눈치 빠른 길상이는 사이다 한 병과 감자칩 두 봉지를 사 셋이서 나누어 먹는다. 짭짤하고도 달큼한 맛에 해방감을 느낀다. 절에서 수행을 하던 것도 아닌데.. 오랜만에 느끼는 자극적인 맛에 혀가 얼얼했다.


조그만 시골마을이지만 장날 만큼은 화려함의 극치
사이다의 행복

이제 전기세만 내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끝난다. 그런데 전기세를 내는 줄이 얼마나 긴지 모두 이날만을 기다려온 사람들처럼 보였다. 우리는 기다리는 김에 서로의 이야기나 풀어놓는다.

조쉬는 늘 배를 곯아야 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일찍부터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배우며 일을 했지만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우연히 알게 된 불교센터에서 명상을 하며 위안을 얻기 시작했고 지금의 여행까지 하게 되었다.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제일 괴로웠던 것이 부자들은 이 세상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의 많은 양의 음식을 손도 대지 않은 채 버리는 문화였다. 우리도 음식 귀한 줄 모르는 나라에 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남미로 가 워크 어웨이를 했는데 거의 2년을 정글에서 보냈다. 나는 열흘을 수도원에서 보내는 것도 큰 결심이 필요했는데 2년이라니… 새삼 그가 대단해 보였다. 여행자들의 사연들은 정말 다 제각각이다.

전기세를 내는 데는 인내가 필요하다

전기세 미션까지 마치고 수도원으로 돌아가는 길, 우린 내려올 때 보다 훨씬 친해져 있었다. 남편은 버터 사건으로 조시가 그렇게 밉다 하더니 이젠 그가 좋다고 한다. 이 남자의 변덕은 예측하기가 힘들다. 지금까지 조시는 그냥 지나치는 여행자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생각을 나눈 친구가 된 것 같았다. 이들이 매일 토론을 하는 이유도 이런 것이었을까?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는데 우린 마음을 열지 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시간 만에 가파른 길을 다 올라왔다. 공기 좋은 곳에서 지냈다고 폐활량이 좋아진 것 같다.


하루 일과가 꽉 찬다. 매일 수도원 외벽에 칠하는 일을 하면서 식사 준비도 한다. 라마는 늘 일을 너무 빨리 하지 말라 당부했다. 하마터면 또 빨리 할 뻔했다. 남편과 나는 쉬엄쉬엄 차도 마셔가며 마당에서 강아지들과 놀기도 하며 최대한 여유를 즐기려 한다. 이 생활에 익숙해졌는지 처음의 조급함은 사라졌다. 수도원에 지낸 지 일주일이 될 무렵 우리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샤워를 한 번도 못했기 때문이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은 세수와 이를 닦는 것 까지가 한계였다. 샤워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라마와 다른 식구들은 가마솥 물로 화장실에서 어떻게 샤워를 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추운 화장실에서 씻는다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한 상태였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견뎌보자 생각하던 때 켈리의 몰골도 우리와 비슷해져 있었다. 서로 냄새를 킁킁대다 이젠 정말 때가 온 것 같다고 마음을 맞췄다. 각자 맡은 일을 끝내 놓고 오후 무렵 켈리와 함께 라마를 찾아갔다.

“라마, 우리 셋 다 너무 씻고 싶은데요?”

“방법 있지요, 절 뒤로 돌아가면 오두막 집 하나가 있어요. 거기 샤워실이 있으니 쓰도록 해요, 켈리가 알고 있어요.”

비밀의 공간이었다. 이전 봉사자가 스님을 위해지어 준 집이다. 그런데 수도원에서 조금 떨어진 집이라 쓸 사람이 없어 일단 비워 두고 있었다. 켈리와 셋이서 순서를 정하고 물을 데우기 시작했다. 아마추어가 만들었다는 오두막 집은 아주 깔끔하고 아담했다. 욕실에는 깔끔한 타일이 깔려 있었는데 이곳까지 이런 자재를 옮기는데 고생 꽤나 했을 것이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베풀어 놓은 친절 덕분에 따듯한 물로 오랜만에 샤워를 했다. 꼬박 뜨거운 물을 온몸을 타고 흐른다. 가려운 곳 구석구석을 씻으니 날아갈 것 같이 시원했다. 시원하다는 말이 연거푸 절로 나왔다. 씻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구나.


아홉째 날, 우린 이제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인도 비자 60일이 얼마 남지 않아 네팔로 가기 전 시킴까지 둘러보려면 서둘러 길을 나서야 한다. 부엌 정리를 끝내고 장작불 앞에 앉아 라마에게 떠날 계획을 얘기했다.


“한국사람들이 와서 참 좋았는데,,, 난 정말 한국사람인지 여기 지역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였다니까요? 생김새도 행동도요.”

“저희도 그래요. 오래전부터 여기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나저나 지금 여행을 하는 중인가요?”

라마는 그제야 우리가 여행 중인지 궁금해했다. 늘 동네의 제사와 처리할 일들로 바빠 제대로 얼굴 보기가 힘들었던 탓에 그와 얘기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꺼져가는 장작불 앞에 둘러앉아 얘기를 했다.

“내가 본 세상이라곤 이곳이 다인데,, 숀과 엘리는 정말 운이 좋은 거예요, 한국에서 태어나 교육도 받고, 이렇게 여행을 다닐 만큼 풍족한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거 아나요? 숀과 엘리가 여행하면서 온 세상에 쓰레기를 만들고 다닌다는 거”

“ 쓰레기… 요? 그렇죠. 맞아요. 우리가 지나간 길에는 다 쓰레기를 버리게 되네요. 그것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쓰레기만 만들고 다니는 여행 말고, 의미 있는 여행을 해봐요. 엘리와 숀 인생에 , 혹은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를 줄 수 있는 여행. 그 의미는 둘만이 결정할 수 있어요.”

동네 아저씨 같던 라마는 이렇게 한 건을 했다.

라마 눈에는 우린 그저 운이 좋아 쓰레기를 만들고 다니는 사람이었다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의미 있는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거창한 의미가 아니라도 그 시간을 좋은 방향으로 쓸 수 있으면 더 좋은 여행이 될 것이라 조언했다.

 우린 얼마나 운이 좋은지. 인도는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나라다. 우린 한국의 지금 시절에 평범하게 태어났을 뿐인데, 교육도 받고 배고프게 살지 않았다. 쓰레기를 뒤질 일도 없었고, 신발도 신고 따듯한 옷도 챙겨 입었다. 인도는 로또만큼이나 내 삶이 운 좋다고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불행한 사람들을 통해 내 행복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이 행운을 나누는 것으로 뭐든 한다면 어떨까? 이번 여행을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를 바꾸거나 깨달음을 얻자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그것도 이 시간에 대한 의미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처음으로 이 여행이 진지하게 느껴졌다.


“내일 아침 떠나기 전에 수도원 기둥에 ‘세계평화’라고 적어줄 수 있어요? 엘리는 중국어를 할 줄 아니 한자로 적어줘요”

라마의 아이 같은 순수한 생각에 길상이와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 약속을 했다.

짬빠로 아침을 배부르게 먹고 짐을 다 쌌다. 라마는 금색 페인트를 준비해 놓고 기둥 두 개를 가리켰다. 여행자들이 올 때마다 세계평화라는 글자를 그 나라말로 적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 출발은 우리였다. 첫 주자이니만큼 예쁘게 적고 싶었다. 남편은 페인트로 처음 적어보는 글자임에도 참 반듯하게 적었다. 내 글자는 좀 못생겨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글자는 그 사람의 마음이라던데,, 내 마음은 수행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해 보였다. 중화권 여행자는 이곳에 오지 않길 바다. 라마는 이 사실을 알 턱이 없으니 매우 만족해한다. 마지막 임무까지 수행하고 우린 길을 나설 채비를 한다.


캘리는 우리가 가기 전에 봐야 할 것이 있다고 했다. 우린 그동안 켈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랐다. 완성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완성되면 보여주고 싶었는데.. 너희들이 지금 떠나니까.. 이걸 보여주고 싶어”

수도원 2층, 우리가 한 번도 와보지 못했던 작은 방안은 파란 물감 하나로 칠해진 벽화가 있었다.  환상적이었다. 탱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연꽃과 부처님의 모습,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이 벽을 휘감고 있었다. 눈에 익은 동양적인 그림이 아니라 프랑스 여자의 눈으로 본 불교 모양이었다. 매일 피곤한 기색으로 저녁을 먹으러 오던 캘리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졌다. 앉은 자세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림 그렸을 분홍머리 그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아름다운 벽화였다.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쉬울 지경이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야. 그동안 함께 해 줘서 고마워. 난 한 달은 더 있으면서 벽화를 완성할 거야.”

사람들과 아쉬움의 작별의 인사를 한다. ‘기회가 있으면 또 보자’라는 기약 없는 쿨한 인사다. 오랜만에 무거운 가방을 다시 메고 가파른 산길을 걸어 내려왔다. 왠지 모르게 홀가분 한 마음이 들었다. 모든 장기가 온전한 채 첫 워크 어웨이가 무사히 마무리되어서, 그리고 다시 자유인으로 여행을 시작하기 되어서 일 것 같았다. 만약 다시 인도를 여행한다면 이곳을 다시 올 것 같다. 사랑스럽던 인도의 시골들 보다도 림빅의 삼텐 수도원을 다시 찾을 것 같다. 다음에는 코팅이 잘된 프라이팬과, 간식을 잔뜩 짊어지고 말이지.

갑자기 우리의 여행이 갑자기 새로워진 기분이 들었다. 겁이 조금 없어졌고 모험이 조금 더 하고 싶어졌다.

진짜 여행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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