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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부부 May 30. 2022

레스토랑 전쟁_EP3

휴가는 덤

잠이 들기 전 다음날 폭우가 쏟아지길 바란 밤도 있다. 비가 오면 올리브를 따지 않아도 되겠지? 만만하게 봤던 올리브 농장의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올리브를 따는 일 말고도 우리는 무화과를 깎아 잼을 만들거나 과일따기, 치즈만들기 등등  안네들이 도움을 청하는 모든 일을 했다. 깐깐한 안네들은 잔소리가 많았지만 어찌 되었건 우리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고 싶어 했다. 에디가끔 툴툴거리긴 해도 열심히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런 성실함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무뚝뚝하기만 했던 안네도 우리를 가족처럼 받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뿐인 이 집에서 젊고 든든한 사람이 네 명이나 있으니 농장 전체에 생기가 더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곧 다가올 주말에는 가든 레스토랑을 오픈한다. 데니즈는 100명 정도 예약 손님이 있다며 한껏 흥분해 있다. 안네들은 양고기를 양념하고 뷔렉이라는 전통 만두를 미리 만들어 주말 준비를 한다. 우리는 농장일 대신 가든을 치우고 식탁보를 깔았다. 테이블 꽃과 접시로 세팅을 하고 나니 제법 레스토랑 분위기가 났다. 나무가 우거진 정원에서의 식사라면 어떤 메뉴가 나와도 맛있을 것이었다.

내일 영업을 위해 각자 업무도 배분했다. 나는 빵을 굽고 카발트(아침식사)에 들어가는 올리브 피클, 치즈, 토마토와 오이를 자르는 일을 맡았다. 션 언니는 계란 프라이와 소시지를 굽는 일,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는 길상이는 바에서 커피와 레모네이드 만드는 일을 맡았다. 제일 폼 나는 일이었다. 식당의 제일 앞에서 손님들을 응대하는 일이 조금 부러운 자리였다. 에디는 아무도 없는 식당 뒤편의 창고에서 설거지를 담당했다. 역시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하는구나... 이때까지만 해도 에디에게 얼마나 힘든 일이 닥칠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기다리던 아침. 차이 한잔으로 레스토랑 오픈 전 마음의 준비를 한다.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는 이곳의 구워 먹는 전통 치즈 헬림치즈에 안네가 만든 무화과 잼, 그리고 계란과 오이를 올려 만든 샌드위치다. 한국에 가서도 매일 아침을 이렇게 차려 먹고 싶다 생강했다. 향긋한 홍차가 빠진 아침은 상상할 수 없다. 든든한 아침을 먹고 레스토랑 주방으로 출동했다. 앞치마에 머릿수건까지 두르고 나니 션 언니와 나는 영락없는 식당 이모들이었다. 그럴싸해 보이기까지 한다. 안네 세명은 뷔렉을 튀기고, 샐러드와 호 무스 등등 만들어야 하는 음식이 산더미같이 많았지만 우린 그때그때 손님이 먹을 빵과 계란을 굽고 사이드 음식을 준비하면 되니 여유가 있었다.

이 정도면 할만하다 생각하고 웃으며 일하던 때가 있었다. 10시가 넘자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여길 알고 찾아왔는지 모를 정도로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데니즈가 말한 100명 예약은 허풍이 아니었다. 가족단위부터 단체손님까지. 여기가 유명한 맛집이라도 되는 것인지 가든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서빙하는 사람이라고는 데니즈 밖에 없다. 나는 밀려드는 주문에 음식을 세팅하느라 빵을 태우기 일쑤였고 홀로 서빙하기도 벅찬 데니즈는 끊임없이 주문을 밀어 넣었다.  이 큰 가든 레스토랑에 서빙하는 사람이 데니즈뿐이라니.. 결국 나는 서빙으로 불려 나간다.

"엘리! 왼쪽에 테이블에 다섯 명"


카발트 한 상을 준비한 다음 마당을 뛰어다녔다. 몸집만 한 쟁반을 이고 뛰어다니는 아시아인이 이상하겠지. 손님들은 의아한 듯 궁금증을 못 이기고 질문을 한다.

"어디서 왔어요? 필리핀?"

"한국에서 왔어요. 봉사 활동 중이에요"

아시아인은 이곳에서도 노동자라는 편견이 있었다. 레바논에서도 우리를 필리핀이나 방글라데시인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개발도상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 무조건 노동자로 인식하는 것도 인종차별의 한 종류다. '국적'이나 '외모'로 사람들은 많은 것은 순식간에 판단해 버리고 만다. 질문한 손님에게 길게 설명하는 척이라도 하며 좀 쉬고 싶지만 대충 여행 중이다 쯤으로 마무리한다.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이것저것 하다 보면 또 빵을 태웠고 데니즈는 정신없는 와중에 언성을 높였다. 우아한 레스토랑을 생각했는데 푸르른 자연에 둘러 쌓인 가든 레스토랑의 주방은 그야말로 불 난 호떡집이었다. 전쟁이었다. 단체손님이 들어왔다 빠져나갈 때면 어마어마한 양의 그릇이 나왔는데 그걸 들고 창고에 있는 에디에게 가져다 주었다. 개수대가 넘치도록 죽어라 설거지만 하는 에디는 나를 원망의 눈으로 쳐다봤다.

"여기 일하는 사람 우리밖에 없지? 하루 4시간이라며... 이건 노동착취야. 정식으로 사람을 고용할 일에 우리를 부려먹고 있다고!"

에디는 팅팅 불은 손으로 고무장을 찾았지만 결국 맨손이었다. 식기세척기가 있긴 했어도 초벌 설거지를 해야만 했다. 개수대를 가득 채운 싱크대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에디의 원망을 뒤로하고 얼른 내 자리로 돌아왔다. 우리의 문제책임감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점심도 거른 채 주방의 음식을 주워 먹는 걸로 끼니를 대신한다. 지금은 점심을 차려 먹을 분위기가 아니다.

음료 바에 있던 길상이는 예외였다. 모두가 전쟁을 치르는 줄 알았는데 우아하게 컵을 닦고 있는 것이 아닌가?! 후식 타임을 당하니 바쁠 일이 적었다. 복도 많은 길상이.

사람들은 '존', '메매' 두 가지 타입의 커피를 주문했는데 물의 양에 따라 다른 이름을 불렀다. 길상이는 이곳에서 사는 사람처럼 손님들의 주문에 음료를 척척 만들어 안겨줬다. 바리스타 자격증이 이렇게도 쓰이다니. 역시 뭐든 배워놓으면 쓸모가 있다.


오후 4시, 이제 들어오는 손님보다 나가는 손님이 더 많았다. 나가는 길에는 농장의 무화과나 만다린을 공짜로 따갈 수 있었다. 이곳의 인기비결었다. 우리가 키운 닭들이 낳은 신선한 계란도 살 수 있었다. 케밥(양의 이름)은 하루 동일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있었지만 관심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몇 명의 손님이 왔다 갔는지도 모르겠다. 기운차던 데니즈도 긴장이 풀렸는지 축 처진 몸을 하고 있다. 점심도 거른 채 하루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관심으로 행복하지만 피곤한 케밥


창고에 있던 에디는 드디어 정원으로 나왔다. 그의 손은 처참했다. 물속에 몇 시간 혹사당한 손은 하얗고 쭈굴 쭈글 해져 있었다. 하루 종일 얼마나 많은 설거지를 했는지 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잔뜩 화가 나 보이는 에디는 데니즈에게 꼭 한마디는 해야겠다는 듯 성큼성큼 다가간다. 분위기가 험악해 질까 겁이 났다. 사실 이렇게 힘든 워크 어웨이는 처음이라 우리조차도 혀를 내둘렀다. 이런 중노동은 상상치 못한 일이니 에디가 불만을 얘기할 법도 했다. 점심밥은커녕 쉬지도 못했으니 당장 오늘 때려치우고 여길 떠난다 해도 데니즈가 할 말은 없다. 나도 말리지 못할 거다.


"고무장갑 사줘"

고작 한다는 말이 고무장갑이라니... 등신 같은 에디. 우리는 책임감이 너무 강하다.

일요일은 좀 더 수월했다. 나는 더 이상 빵을 태우지 않았다.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따로 챙겨주지 않는다는 걸 이제 알았으니 여유가 있을 때마다 음료 바에서 레모네이드와 탄산을 길상이에게 주문해 마시고 션 언니의 소시지도 가끔씩 구워 먹는다. 하루는 빨리 지나갔다. 손님이 적은 만큼 설거지도 줄어 에디는 어제보다 훨씬 생기가 돌았다. 물론 아직 고무장갑을 받지는 못했지만 하루 만에 경력직의 티가 났다.


남편과 나는 지금까지 해본 워크 어웨이 중에 가장 힘든 일이었다고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힘든 일을 에디션과 함께 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에디션이 없었다면 서빙을 하던 도중 농장을 탈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요일 레스토랑의 마지막 손님까지 접대가 끝나고 넷 다 녹초가 되었지만 주방 정리와 쓰레기 청소도 완벽히 하고 만다. 안네 세 명은 어떻게든 일을 끝내는 한국인 네 명이 마음에 들어 싱글벙글이다. 재워주고 먹여주는 대신 이렇게 일을 잘하니 마음에 안들 수가 없다.  우리는 오히려 이 많은 일을 어떻게 여자 넷이서 꾸려 나가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안 된다. 어쨌든 내일부터 이틀 동안 쉴 수 있는 휴가를 얻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볍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딱 맞았다. 근처 주유소에 들러 자동차를 렌트한 뒤 이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에 빠졌다.


키프로스는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시대별로 힘이 센 나라들은 돌아가며 이곳을 점령하다 보니 이 땅의 진짜 주인이라고 할 사람들이 없었다. 한민족이 익숙한 한국인에게 여러 국가와 인종, 문화가 섞인 곳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지금 북 키프러스는 터키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독실한 이슬람 신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종교적인 색 자체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슬람 국가에서 기도하는 시간마다 들리는 아잔 소리도 없다. 정교회를 믿는 남 키프러스 여자들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히잡을 쓰고 다니는 여자를 찾는 것이 더 힘들 정도였다.

쉬는 날인 만큼 외식을 하기로 한다. 북키프러스에서 처음 하는 외식이다. 항구 근처의 해산물 레스토랑에 첫 손님으로 입장했다. 한 껏 들뜬 마음으로 오랜만에 관광객이 되어 보기로 했다. 생선구이에 정어리 튀김, 해물 파스타를 시켜먹는다. 오랜만에 먹는 쿰쿰한 맛에 황홀한 표정들을 지어 보인다. 농장과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느라 섬나라에 왔는데도 제대로 된 생선요리조차 아직 맛보지 못했다. 남이 차려주는 밥상에 포크 하나만 얹어 지중해 맛을 음미한다. 신선한 해산물 덕에 모두들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이 맛에 여행을 하지!


카이린 야 포트로 향했다. 사실 별로 볼 것은 없는 텅 빈 성채였지만 높은 곳에 올라 바다도 보고, 내부의 선사시대 박물관을 구경했다. 수렵채집을 하는 사람들이 조악스럽게 놓여있었다. 오래된 땅에 깊은 역사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를 읽다가 무릎을 탁 친 순간이 있었다. 인류가 정착을 하기 시작하면서 우린 수렵채집을 하던 시대보다 훨씬 많이 일을 하지만 더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린 ‘밀’, 즉 곡물의 노예가 되어 이것을 애지중지 기르면서 많은 시간을 노동에 쓰는데 반해 삶은 수렵채집 시절보다 오히려 힘들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홍수가 날지, 가뭄이 올지, 병충해가 있을지 걱정을 하며 매년을 보내는 삶. 세계여행은 어쩌면 수렵채집인에 더 가까운 생활은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저축한 돈을 야금야금 꺼내 쓰는 신세지만 정착하지 않으니 걱정거리는 없다. 어디로 이동해야 할지 오늘은 어디에서 잠을 잘 지로 대체된 걱정들만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박물관 안에 전시된 원시인들의 표정이 나름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지속 가능한 여행, 그런 수렵채집인의 삶도 있을까? 몽골에서 만났던 칼스 부쉬 아저씨는 계속 여행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우리도 이제 여행을 한 지 2년이 넘어가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이 여행은 어떻게 끝이 날까? 반복된 일상을 견뎌내며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해야 했다. 당장 정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어딜 이동하든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지만 하루는 금방 저물었다. 해가 짧아지는 겨울의 문턱이었다. 다음날은 아침 일찍부터 움직인다. 파마구스타까지 멀리 가볼 셈이었다. 이 나라에 얼마 없는 관광지 중 하나인 곳이다. 남 키프로스와 가깝게 맞닿아 있는 올드 타운으로 유명한데 유럽 관광객들이 당일치기로 자주 오는 곳이었다. 션 언니는 부지런히 도시락까지 준비했다. 파마구스타에 도착하자마자 낡은 건물 아래에 앉아 샌드위치부터 까먹었다. 오래되어 듬성듬성 무너진 벽 아래에서 먹는 아침은 낭만적이었다. 이곳은 도시 전체가 유적이었다. 성당, 요새, 목욕탕, 포트가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잘 보존된 것은 없었다. 무심하게 무너져있는 유적들 사이에 있는 것은 더 이국적이었다. 나름 유명한 관광지라 했지만 거리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없어 텅 빈 옛 도시를 걷는 것 같았다. 그중 이 도시의 중심 역할을 하는 랄라 무스타파 파샤 모스크(세인트 니콜라스 성당)는 이곳의 랜드마크다. 높고 큰 성당은 도시의 어느 위치에서도 잘 보였다. 기독교 인들이 살던 시대에는 웅장한 교회였지만 오스만에게 함락된 이후 이곳은 모스크로 바뀌었다. 교회의 지붕에 아잔을 하나 무심하게 얹은 다음 모스크라 불렀다. 종교는 장소나 건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느냐다. 이곳이 교회든 모스크든 그것은 아무런 논쟁이 되지 못했다. 알라와 하느님 모두 이곳이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부는 아름다웠다. 화려한 회화나 조각 대신 단색의 벽에 단조로운 무늬를 가진 카펫만 덩그러니 깔려있었다. 북키프러스를 가장 대표하는 건물을 말하라 한다면 바로 이 건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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