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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부부 Jun 06. 2022

콘스탄티노플_EP1

새 출발

2019년 12월. 마케도니아와 불가리아를 거쳐 이스탄불로 왔다. 

키프러스보다 북쪽에 있는 나라들은 날이 차가웠다. 더러 눈이 내리는 지역도 있었다. 1년 전, 마케도니아에 왔을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북마케도니아’로 국가명도 바뀌어 있었다. 그리스와의 영토분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이웃나라일수록 싸울 일이 많다 보니 우방국이 아니라 원수인 경우가 더 많다. 한국도 예외는 아닌 것처럼.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이스탄불에 들어오니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었다. 편리한 이동수단인 트램을 타고 블루모스크가 있는 광장 근처의 작은 호텔로 향했다. 체크인 시간이 다섯 시간이나 남은 이른 새벽이지만 직원은 당연하다는 듯 방을 내주었다. 터키 사람들 특유의 친절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고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만나는 터키인 대부분이 친절했다. 형제의 나라라고 한국을 늘 반겨주는 터키의 매력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국은 '형제'중  '제'에 속한다 했다. 

꿀 같은 잠을 한 숨자고 아잔 소리에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 아시아 대륙이 한눈에 보였다. 해안선을 따라 눈을 옮기니 모스크의 첨탑, 미나렛이 리듬감 있게 오르락내리락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짙은 색의 바다에 따스한 햇살까지, 겨울이었던 날씨가 가을쯤으로 후퇴한 것 같았다.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 부르는 이름에서부터 역사가 느껴졌다. 오스만 제국이 되기까지 콘스탄티노플에 들어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전쟁을 일으켰던가. 우리는 전쟁 없이도 버스를 타고 잘 들어왔으니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음이 새삼 행운이라 여겨였다. 여기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무라트를 만나는 것이었다. 케냐 음팡가노 섬에서 만난 인연은 무라트의 나라까지 이어졌다. 대충 씻고 옷을 껴입은 다음 그가 살고 있는 아시아 대륙으로 넘어갔다. 배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고 가는 방법이 있었다. 대륙 사이의 해저에 놓인 지하철은 한국의 현대로템이 만든 교통이었다. 뭔지모를 애국심으로 배 보다 바다 밑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집에 도착하기 전 꽃집에 들러 터키 도라지 꽃인 리시안셔스도 한 다발 샀다. 어떤 선물을 할지 모를 때는 꽃만큼 좋은 선물이 없다.

 몇 달만에 만난 무라트는 본인의 나라에서 제일 멀끔해 보였다. 매일 똑같은 녹색 티셔츠와 반바지가 그의 유일한 패션이었는데 오늘은 스웨터에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부모님과 아직 같이 살고 있는 40대의 무라트는 본인을 집안의 골칫거리 노총각이라 했지만 떠돌아다니는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그의 방 안에 들어서자 바다와 맞은편 대륙이 정면으로 보였는데 웬만한 카페 못지않은 뷰를 자랑했다. 그의 어머니는 챠이(홍차)와 시미트(깨를 잔뜩 바른 빵)를 내어오셨다. 

“메르하바, 낫소 순” 

우리는 북키프러스에서 내내 쓰던 터키어 몇 마디를 자연스럽게 해 보였다. 무라트와 어머니는 우리의 터키어에 놀라며 어디서 말을 배웠냐고 물었다. 

“북 키프러스” 

라고 대답함과 동시에 웃음기가 사라지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곳에서 몇 주간 워크 어웨이를 했다고 하니 대화는 곧 끊어졌다. 역시나 터키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주제가 분명했다.


우리를 보겠다고 무라트의 형과 그의 딸이 왔다. 중학생 여자아이는 BTS의 팬이라며 BTS와 같은 국적인 우리를 반겨줬다. 우리가 BTS에 대해 아는 건 쥐뿔도 없었지만 같은 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터키의 여학생에게 환대를 받는 것 같아 K-POP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무라트의 형은 딸에게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말해보라며 허벅지를 찔러 보채기를 반복한다. 한국의 부모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괜히 형제의 나라가 아니네’ 속으로 생각하고 웃는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스탄불에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곳 사람들의 친절, 바다, 하늘 모든 것이 조금씩 제 몫을 한 탓이었다. 살고 싶은 곳이 생기면 이런 확신이 들 것 같다 생각했는데 정말 그랬다. 그런 막연한 결심이 갑자기 든 것이다.



무라트는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에르도간만 빼면 이스탄불은 너무 멋진 곳이지.”

라며 부동산 사이트를 알려준다. 몇 달 전 곤두박질친 환율은 아직까지도 회복되지 않아 한국에 비하면 아주 저렴한 금액으로도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었다. 당장 내 집은 아니어도 적어도 일 년 살아보고 결정하면 될 것이었다. 무라트가 알려준 부동산 사이트만 열심히 보긴 했지만 영어를 할 수 있는 중개인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 한국으로 친다면 명동이나 강남이라 할 수 있는 탁심의 몇 개의 부동산 중개업자만 외국인 손님을 반겨줬다. 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곳보다는 ‘진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로컬 지역에 집을 구하고 싶었다. 어려움에 부딪히면 의지는 금세 약해지고 만다. 부동산은 천천히 알아보기로 하고 어쨌든 터키에 왔으니 남부까지 내려가는 여행을 먼저 하기로 한다. 그리고 혹시나 모를 정착을 위해 한국 여행사의 구인공고에 이력서도 제출해 본다.

 

국토가 큰 나라답게 도시 간의 버스시스템은 잘 되어있다. 관광지에서 관광지로 이동하는 것이 이렇게 쉬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큰 마을부터 작은 마을까지 부지런히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우리는 어느 지역을 가든 하맘을 들렸다. 동네 목욕탕쯤으로 생각하면 되는 이 사우나는 한국처럼 까슬한 천으로 때를 밀었는데, 세신사가 있어 우리 부부가 제일 좋아하는 터키의 문화가 되었다. 하맘은 몇 백 년씩 오래된 곳이 많았다. 그래서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오랜 시간을 거슬러 가듯 손때 묻은 바닥과, 돔의 지붕이 눈을 사로잡았다. 옷을 다 벗진 않고 수건으로 대충 가린 다음 뜨겁게 달궈진 대리석 위로 올라가 몸을 지진다. 함께 몸을 담그는 탕 문화는 없지만 뜨거운 증기를 맞으며 누워있노라면 피로가 녹아내렸다. 열심히 때를 밀고 나오면 시원한 레몬 탄산 한잔으로 찹찹한 바깥 온도에 적응했다. 이곳의 목욕문화는 마음에 쏙 든다. 


부르사에 며칠을 머물다 카파도키아에 가기로 한다. 돌로 만든 마을에는 눈이 내렸다. 추운 날 여행을 하는 것은 정말 못할 짓이다. 대충 모든 옷을 껴입고 밖으로 나가 펼쳐진 뾰족이 솟은 바위들 사이를 걷는다. 길상이는 레바논에서 얻은 노스페이스 점퍼 덕에 따듯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림 같은, 지구가 아닌 것 같은 풍경에 창밖을 쳐다보기만 해도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일주일을 머물면서 이곳을 천천히 걸어보기로 한다. 


“서류 통과되셨습니다. 내일 영상통화로 면접이 가능할까요?”

문자가 왔다. 설마 했던 여행사에서 1차 합격의 문자가 온 것이다. 직장생활을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긴장이 되어 밤새 잠을 설쳤다. 카파도키아의 여행도 하루 쉬기로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영상통화를 기다린다. 터키의 인터넷 환경은 좋은 편이다.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30분 정도의 면접을 보고 나니 합격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막상 회사까지 간다 생각하니 마음이 들떠 여행에 집중할 수가 없다. 

“우리 정말 이스탄불에서 살아 볼까?!”

카파도키아를 걷고 또 걸었다. 이스탄불에서 어떻게 살지 고민을 하고 또 했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살아보기 전 까지는 모를 일이었다. 바위 사이사이 구멍을 파놓은 집들을 보니 이런 곳에도 사람들이 사는데 이스탄불이 어찌 되었던 살기 좋은 곳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합격통보를 받았다.


1월 말부터 회사에 가야 하니 아직까지 한 달의 시간이 있었다. 직장인이 되면 여행할 시간이 없을 테니 최대한 더 많은 곳을 둘러봐야 하지만 집도 구하고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하니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래도 도움받은 곳이 있었다. 무라트. 아직 백수인 그가 흔쾌히 집을 구하는 일을 도와주기로 했다. 1월의 이스탄불은 매일같이 비가 왔고 추웠다. 살기로 마음먹던 한 달 전쯤만 해도 초가을의 날씨였는데, 갑자기 속은 느낌이 들었다. 낡은 운동화는 계속되는 비에 입이 벌어졌다. 내 행색도 그에 못지않게 옷은 해지고 낡아 있었다. 이 넓은 이스탄불의 어디쯤 살아야 하는 것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집을 보기 위해 매일 부동산을 전전했다. 마음에 드는 집은 빨리 나타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다. 몇 개의 집을 추려 무라트에게 가격협상을 부탁했다. 


한적한 동네의 오래된 40평의 아파트. 이곳의 좋은 점은 위스퀴다르 항구와 가까워 유럽으로 이동하기 좋을뿐더러 해산물 시장이 근처에 있고 동네에는 5일장이 열린다는 것이다. 바닷가 뷰가 보이는 집은 아니었지만 대신 시끌벅적한 중학교 교실이 보였다. 건물은 낡아 부서진 부분이 꽤 있었지만 99년 이스탄불 대 지진을 견뎌낸 튼튼한 집이라 했다. 무라트도 괜찮은 집이라 말해줬다. 주인이 비워둔 지 몇 달이 되어 보수해야 할 곳은 많았다. 문고리와, 타일, 변기 등등까지 모두 고쳐주는 조건으로 1년을 계약하기로 한다.

위스퀴다르와 중학교가 보이는 집

영어는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부동산 중개업자, 주인과 계약을 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전기과, 수도, 난방을 연결하는 일은 터키의 거주증이 있어야지만 가능했는데 집은 팔고 싶지만 이 문제는 해결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말이 안 통하니 구글 번역으로 씨름을 해봤자 결론은 나지 않았다. 계약서를 쓰기까지 무라트는 매일매일 부동산 업자를 만나 계약을 확인하고 수정해 줬는데 그가 백수라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가 없었다면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포기를 했거나 회사에 부탁을 해 명의를 빌려 계약을 해야 했을 것이다. 이곳에도 외국인에게는 집을 빌려주기를 꺼려하는 문화가 있는데, 월세를 내지 않고 도망가거나 집을 엉망으로 만든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집을 구하고 이사하기 전까지 무라트는 우리와 함께 몸고생 마음고생을 했다. 음팡가노에서만 해도 그가 하는 잔소리가 귀찮았었는데.. 인연은 정말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값을 치르고 나니 집은 바로 우리 것이 되었다.  이삿짐이라고는 배낭뿐이었다. 방 세 개와 큰 거실이 하나 있는 집은 둘이 살기에는 매우 컸지만 길상이는 셰어하우스를 해보겠다 했으니 손님으로 채워지면 그리 큰 집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집의 바닥 위에 침낭을 깔고 첫날밤을 맞이했다. 이스탄불에 우리 집이 생기다니. 추운 겨울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이스탄불과 정말 사랑에 빠졌다.




첫 출근을 위해 깔끔한 스웨터와 코트, 신발 하나를 미리 사두었다. 헤지고 낡은 옷들은 이제 입을 일이 없을 것 같으니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새 물건을 보니 첫 출근이 두근거리는 신입사원의 설렘이 들었다. 하지만 여행의 때는 옷만 바꿔 입는다고 쉽게 빠지지 않았다. 화장품을 바르고 입술을 빨갛게 칠했지만 무언가 어색한 모습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검은색 구두를 신고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발이 조금 아팠지만 이것도 금방 적응될 것이다.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면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6시 반쯤에 일어나 9시까지 출근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직장을 다녔었는데 그게 생각나지 않았다. 


출근길 지하철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앉아서 가는 일은 드물었다. 가끔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이 종종 있어 나도 그 덕을 봤다. 터키 남자들은 친절했고 ‘상남자’가 대접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출근길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던 지하철 역은 할리치였다. 내가 있는 위크퀴다르에서 지하철을 타고 바다를 건너 술탄아흐멧 올드 지구 쪽의 시르케시에서 다시 유럽 사이드 쪽으로 다리를 건넌다. 출근하기 위해 두 개의 해협을 한 번은 땅 밑으로 한 번은 다리 위로 건너야 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좋았다. 배를 타고 출근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지하철을 택했다. 그 다리 위의 할리치 역에서 아침에 뜨는 해와, 저녁의 지는 노을을 다 봤는데 넘실대는 파도 위로 모스크 뒤로 비치는 빛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은 피곤했지만 그것을 보상하고도 남는 풍경이었다.  푸르게, 붉게 매일매일 다른 하늘의 빛깔이 온전히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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