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라 부모님을 모시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드시고 싶은 게 무어냐 묻는 아들의 물음에 어머니는 초밥이라 하셨다. 형과 상의한 끝에 삼대 째 일식집을 하고 있다는 한 식당을 한시 반경으로 예약했다. 모처럼 먹는 일식이라 일명 '코스'로 예약을 했다. 끊임없이 나오는 요리들을 다 해치울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도전해보기로 했다.
오후 한 시 반부터 시작한 점심식사는 세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고, 바로 헤어지기 아쉬웠던 가족들은 인근의 카페로 이동해 이야기 꽃을 피웠다. 많은 양의 점심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적지 않은 양의 빵을 주문해 후식으로 먹었다. 평소 빵을 잘 먹진 않지만 앞에 놓여있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많은 조각들을 집어 입으로 넣고 있었다.
배가 빵빵해진 상태로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또' 저녁시간이었다. 아내와 눈빛을 교환해보니 지금은 배가 불러 도저히 저녁을 먹을 수 없다는 사인을 보내왔다. 잘됐다 싶었다. 요즘 살이 제법 쪄서 입으로만 다이어트 중이었다. 축구할 때마다 몸이 무거워졌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중이었는데, 오늘 저녁을 먹지 않음으로써 입으로만 하던 것에 대한 죄책감을 한 짐 덜어냈다.
덩달아 시간적 여유도 생겨 한동안 미뤘던 청소를 해치웠고, 오랜만에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냈다. 잠도 조금 들었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와중, 어디선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꼬롤로로로롤'
처음에는 못 들은 척을 했다. 사실 내 쪽인지 아내 쪽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순식간이었고 급작스러웠다. 소리의 출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두 번째 소리가 들려왔다. 내 배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 것을 확신했다.
"배고파?"
"... 조금?"
"뭐 좀 먹을까?"
"아니야. 너무 늦었어."
또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내쪽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피식거림을 시작으로 깔깔거리기 시작했고, 밤 열 시가 다되어가는 시간에 나는 만두를 쪘다.
처음 배고프냐고 물었던 것은 어쩌면 내 마음의 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꼬르륵 소리가 들리기 전에도 나는 조금은 출출하던 차였다. 하지만 체중을 줄여야 한다는 강박감에 쉽사리 무언가로 요기하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었는데, 첫 꼬르륵 소리는 '내가 원하진 않지만 너를 위해 제안해볼게'라는 당위성을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곧이어 터져 나온 나의 진실된 소리에 그 당위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만.
만두가 익어가는 것을 보며 쓴웃음이 났다. 어차피 먹을 만두였는데 이 핑계 저 핑계대면서 버티다가 결국은 밤늦은 시간에 야식을 먹는, 지독히도 건강에 좋지 않은 선택을 했다. 어찌 됐건 결국은 내 탓이 아니었던 시점에서부터 만두 사건은 시작되었다. 평소 생활에서도 핑곗거리의 대부분은 '남'에 의해서 해소된다. 스스로가 책임을 지기에는 부담스럽기 때문에 남의 그늘이 필요한 우리들이 참 많다. 흔히 말하는 '남 탓'이 없으면 생활이 안 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예전에 "'~같아요'에 대하여"라는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책임지기 싫어하는 현대 우리들의 생활습관이 말투에 녹아있는 것에 대해 쓴 것인데, 만두를 찌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역시 현대사회의 구성원이 맞는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떤 일을 해도 누군가의 그늘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회가 지독히도 차가워져 버렸다는 것의 방증일 테다.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는 각종 범죄와 사건사고 소식이 주를 이룬다. 훈훈한 소식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히 자극적이지 못하다. 파랗고 거무튀튀하고 차가운 지금, 우리는, 나는, 남 탓을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남 탓'의 온상인 LOL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은 그나마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