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의 이유를 찾아서...
뉴스에서 또 한명의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이유는 부모의 학대.
내가 낳은 아이를 학대하여 반 미이라가 될 지경으로 방치하여 죽일 수 있다니 믿을수 없는 일이다.
최근 몇년간 이해를 할 수 없는 뉴스들이 참 많았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뉴스가 바로 아동학대에 대한 내용이다.
- 어린이 보육원에서의 학대와 사망 사건
- 부모가 아이를 방치하여 죽인 사례
- 부모가 적극적으로 학대를 자행하여 아이를 죽인 사례
- 부모가 버린 아이를 친적이 학대하여 죽인 사례
도대체 이와 같은 사건들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오랫동안 의문에 쌓여왔었는데 최근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어느정도 그 이유를 알게 된거 같다.
이탈리아를 여행하기 전에 몇 권의 책을 읽었는데 그중에 "로마에 살면 어떨꺼 같아" 라는 책인데 로마에 거주하는 김민주라는 분이 쓴 책이다.
그 책을 읽은것은 2020년도 코로나가 닥쳤을때 인데 당시 해외 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대로 잊어 버리고 살았다. 그리고 2023년 4월 9일 로마를 방문하고 이탈리아 땅에 발을 디디면서 그 책의 내용들이 하나둘씩 생각이 났다.
그 책에서 잊지 못할 구절이 있는데 로마에 이민을 가서 오랫동안 살았던 지은이는 아이가 있었고 간혹 한국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동양인임에도 불구하고 어딜가나 늘 주목을 받고 사랑을 받고 자랐으나 가끔 한국에 오면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환경에 익숙지 못해 당황해 한다고 했다.
아이의 머리속,
"엉? 이상하다. 나는 아이이고 어딜가나 날 안아주고 사랑해주었는데 여기서는 아무도 날 안아주지도 않고 나를 이뻐해주지 않네. 엄마 나 어떡해야해?? "
아이가 당황해하고 어색해 하는 순간에 부모도 같이 당황해 했을 것이다.
사실 책을 읽은지는 오래되었고 (3년) 이탈리아 여행에 부푼 기대를 안고 있었기에 그런 내용은 머리속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다음 얘기할 두가지 사례에서 모든 것이 기억이 나고 말았다.
이전 글에서도 소개를 한 내용인데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서쪽 해변의 레스토랑 라인에서 있었던 일이다.
3살정도 되는 한 아이가 노천 카페에 등장했다.
거기 앉아 있던 20여명의 어른들은 모두 그 아이를 쳐다보고 있고 그 아이는 그 어른들 사이를 오가며 아장아장 걷고 있다. 사실 부모가 누군지 찾아보려 했는데 모든 사람이 똑같은 하트 눈을 하고 있어서 한참뒤에야 찾았다. (바다 쪽으로 걸어가는 아이를 재지하기 위해 엄마가 일어나면서 )
그 아이는 감자칩을 하나 들고는 이러저리 배회하고 있고 지나가는 한 아이에게 그 칩을 건넨다. 지나가는 아이는 너무 어려서 그 대응을 받기 어려웠지만 결국 그 아이 입에 감자칩을 물려주는 장면을 연출했고 장중에 폭소를 자아냈다. 우리 부부도 웃었다.
그리고 아장아장 뒤뚱뒤뚱 이러지러 돌아다니며 여전히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고 지나가는 어른들과 앉아 있는 어른들은 모두 똑같은 눈을 하고 있다.
만약, 그 아이가 넘어졌다면 일시에 30여명이 엉덩이를 들썩였을것으로 생각된다. 나역시, 우리역시 그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카타니아 공항에서 로마로 가야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고 내 앞에 앞에는 한 아주머니가 있다. 엄청난 짐과 유모차, 두명의 아이를 데리고 있다.
누가봐도 힘들어 보이는 상황에서 옆에 젊은이가 뭐라뭐라 예기한다. 아마도 비행기를 탈수 있겠냐 도와줄까 맨 앞으로 이동을 하는건 어떻냐 하는 내용 같았다.
그 아주머니의 앞에 앞에 있는 신사분(양복 입은 사람)이 내 앞으로 올건지 물어본다. 그리고 아까 그 젊은이는 무언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 공항 관계자를 호출하여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아이둘에 짐과 유모차를 가진 사람이 엄청나게 불편해 보인다라는 이야기 같은)
그 아주머니는 2살된 아이를 지키는 4살 여자아이를 그 자리에 놔두고 공항 관계자에게로 다녀온다. 그 순간 그 옆에 모든 사람들이 그 아이들을 지키고 있다.
우리 부부 역시 마음속으로 그 아이를 지켰다. (물론 아무일도 없을테지만)
그리고 이윽고 탑승 시간이 도래했다.
그 아주머니는 두 아이와 짐과 유모차를 끌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 나이든 아주머니가 뭐라뭐라 이탈리아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탑승을 위해서는 계단을 수십개 내려가야하는데 아까 그 젊은이가 유모차를 들었다. 그리고 나이든 아주머니는 무언가 일사분란한 지시를 하며 두 아이를 손 잡게 하고 큰 아이의 손을 잡고 내려간다. 계속해서 아이들을 독려하는 재미난 어투의 말을 한다. 아이 엄마는 짐을 들고 가장 앞으로 내려가고 있다. 아이들은 그런 상황이 익숙한지 칭얼대지도 울지도 않는다.
도대체 아동학대로 아이가 죽었다는 기사를 얼마나 더 봐야할까?
왜 어린이집에서 학대를 당하여 아이가 죽어야하는지
왜 아이를 가장 사랑해야하는 부모가 아이를 학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
나는 오랫동안 그 이유가 궁금했었는데 이탈리아를 방문하면서 작은 실마리를 찾은거 같다.
역시 이전글에도 썼던 내용인데 내가 어렷을적 (1980년도) 에는 나는 10살 안팎의 아이였고 버스를 타면 내가 앉을 자리가 났고, 어딜가나 대장부 같다 잘생겼다라는 얘기를 들었으며(거짓말) 아주머니가 존재하는 공간에 내가 있을 경우 엄마가 있건 없건 밥을 얻어 먹었다.
그 이유는 아이는 당연히 밥을 먹어야하며 사랑 받아야하며 아낌 받아야 하기때문이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성선설을 주장하는 맹자측 견해로 아기가 우물로 걸어가고 있을때 사이코패스가 아닌이상 화들짝 놀라 그아이를 우물에 빠지지 않게 하는것이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굶고 있으면 누가되었든 간에 아이에게 밥을 줄 것이며, 아이가 울고 있으면 누구라도 달래주어야한다.
이것을 더욱 확장하여 동네에 한 아이가 놀이터에 있는데 무릎에 멍이 들어 있으면 걱정을 해야하고 무슨일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어른의 마음이고 부모의 마음이다. 더군다나 비상식적으로 말라 있거나 아이답지 않는 모습이 목격될 경우 심각함을 느껴 경찰에 신고하거나 구해야한다는 마음이 드는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더이상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는것 같다.
그것이 아동학대와 아이들의 죽음의 근본적인이유다.
검색을 좀 해보니
- 부모들에게 교육이 필요하다.
- 부모의 생활 형편이 낮아 스트레스가 심하다
- 양육을 하기에 너무 힘든 경제 상황이다.
- 어린이 집 교사의 처우가 좋지 못하다.
- 양육을 하는데 3억 얼마가 들어간다.
등 표면적인 이유가 난무하는데 사실 1980년도의 상황은 더욱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저런 이유들은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한다.
1980년도의 부모님들이 무슨 교육을 받았겠으며 생활 형편을 논하기는 커녕 우리 부모님은 빠듯한 형편에 나 장난감 한번 못사줬다고 늘 슬퍼하셨다. 어린이집 처우가 아무리 최악이라고 해도 그렇다고 아이를 폭행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건 있을수 없는일이고 이해할수도 없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반드시 있을것이다.
인간에게는 "측인지심"이라는게 있다.
예를들어, 한 꼬마가 너무 시끄럽고 개차판이라 (예를들어) 두둘겨 패주고 싶어도 아이이기때문에 차마 때리고 학대하지 못하는게 인간이고 어른이다.
하지만, 한 주먹 밖에 안되는 아이를 폭행하고 굶겨 죽인다는 것은 내가 감당할 범위를 벗어나 이미 내 정신이 정신이 아닌 상황이라는 얘기다.
와이프랑 와인한잔 하면서 Wave에서 전원일기를 자주 보는데 노마 아빠(이계인)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많은 부분을 알수 있다.
아내가 도망간 상황에서 노마를 감당하기 어려운 노마아빠는 아이를 두들겨 패기도 하고 밥을 안주기도 하고 술을 마시고 막걸리를 받아오라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동네 아줌마들이 노마 밥을 주고 노마를 때리는 아빠를 동네 친구들(응삼이, 영남아빠, 일용이) 이 말리고 줘패기도 한다. 그렇게 한숨을 돌린 노마 아빠는 다시 힘을 내어 노마를 돌보고 그렇게 저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한숨을 돌리고"라는 말인데
내가 최선을 다해 옹골지게 나만 아이를 케어해야한다면 숨막혀 죽을지도 모르는 양육의 굴레에 빠질 수 있지만 내가 신경을 못쓰는 상황에서도 노마가 커가는 과정이 진행된다면 한결 마음적으로 여유를 가지게 될것이다.
실제 내가 어렸을적에도 나는 점심밥을 어디서 먹을지 알수 없었다.
동네 친구들하고 뛰어 놀다가 밥을 가지고 나온 어떤 아주머니에게 달려가면 밥을 한숟갈 얻어 먹을수 있었고 우리 엄마 역시 계란 볶음밥을 잔뜩해서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 먹였다. (이것이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두레 같은 것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이것은 엄마한테 물어봐야 알거 같다)
내가 어중띤 시간에 돌아다니면 너 어디가냐고 엄마 어딨냐고 동네 어른들이 물어봤고 넘어져서 앉아 있으면 누군가 나에게 와서 빨간약을 발라주었다.
다른 예로 영화 시네마천국을 보면 토토의 엄마는 전쟁에서 남편을 잃었고 슬픔에 젖어 산다. 화가나서 토토를 때리기 일수였지만 토토는 동네 영사기 관리사 할아버지와 추억을 쌓으며 나름의 인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의 양육은 오로지 엄마 혼자의 몫이다.
(사실 이건 불가능한 이야기다)
내가 사는 동네는 소위 신혼부부의 천국이다. 즉, 인구의 절반이 아이인 아파트 촌이다.
밖에 나가면 초등학생들이 수백명이 뛰어다니고 있고 나머지 절반의 인구는 아이 엄마들이다. 그런 동네에서 살고 있다. (나는 아이가 없다)
그러나 웬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에게 접근하는게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나혼자 생각인가 그냥 느낌이 그렇다)
사례1.
오후 일을 마치고 4시쯤 산책을 나선다. 앞에 한 남자아이가 울고 있다. 엄마~~ 하고 소리를 지른다.
아이고 예가 엄마를 잃어버렸나 하고 급한 마음에 엄마 전화번호를 물어본다. 그런다 길 반대편에 엄연히 가족이 걸어오고 있었고 나를 죽일듯한 눈으로 부모가 쳐다보고 있다.
사례2.
웬지 모를 묘한 느낌에 동네 여자아이와는 컨택트를 하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여자아이가 앞에 등장하면 피하곤 했는데 웬일인걸 사교성 좋은 여자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이런저런 말을 건낸다. (물론 와이프랑 같이 산책을 할때는 아이를 쳐다보며 아이고 이쁘게 생겼네 라는 표정을 지을수 있다)
너무나 당황해서 응 그래 ~ 하고 대응을 하고 있는데 땅만 쳐다보고 걸어오는 아이 엄마와 대치했다. 나는 중되인이 된것같은 표정과 그냥 지나가는데 얘가 말을 걸었어요 라는 표정을 지으며 옆으로 지나간다. 아이엄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아이에게 뭔가 혼내는 말을 남겨며 둘은 사라진다.
내가 나도 모르게 그런 마음을 갖게 된 이유도 그 앞에 나타난 아이 엄마의 그런 표정도 잘 모르겠다.
도무지 잘 모르겠는데 어쨋든 나는 동네 다수의 주민에 해당되는 아이들과 영원히 친해질수 없을 것이고(토토의 영사기 할아버지가 될수 없다) 아이가 넘어져도 일으켜세워주지 않을 것이며(못할 것이며) 더군다니 여자아이 를 일으켜 세웠다가 내가 당알 참변을 예상하기 싫다.
세상이 험해서 그렇다.
이해는 되지만 이유는 되지 못할거 같다.
나 어렷을때는 유괴가 매우 빈번했다.
이 글은 결론을 내릴수가 없다.
나는 이 복잡한 사회 현상에 답을 모르기 때문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데 우리나라는 뭔가 잘못된거 같다라고 얘기하는거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안그랬는데 지금은 뭔가 이상하다고 예기하는거다.
몇년전에 비행기안에서 아이가 운다고 "왜 애를 쳐 낳아서" 시끄럽게 하냐고 시비를 거는 남자가 있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 뉴스가 아이들에 관한 모든 사회 현상을 말해준다.
현재 우리 대한민국 아이들은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어떠한 이유로 엄마들이 폐쇄적으로 바뀌었고 그로 인해 아이들은 엄마 안에 고립되어 있기때문이다.
유럽에는 노키즈존도 노펫존도 없다.
어떤 가게나 식당에 반려견이 들어갈 수 있으며 아이는 환영의 대상이다.
맙소사!
노키즈 존이라니!
우리나라는 지금 아이보다 작은 갈색 푸들이와 미니 비숑이 더 이쁨 받는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