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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Jan 18. 2023

우리집이 좀 가난한가?

진짜 모르는 아이, 몰라서 행복했다

15세가 되던 때 나는 대한민국 부의 상징 강남구로 이사 갔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이사했고, 전학을 가지 않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면서 통학 중이었기 때문에 주거지의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은 언니와 나를 강남구로 데려가 눈을 반짝이며 저기가 우리 집이라고 말했고, 지금은 아니지만 곧 저기로 이사가게 될 거라고 기쁘게 말했었다. 이사 간 후의 내 방이 넓어진 건 좋았다.


부의 차이를 처음 느낀 때는 강남구의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였다. 입학하고 얼마 안 된 3월의 어느 날 여고생들답게 옷에 대해 잡담하던 중이었다. 음악실에서 출석번호가 내 다음이었던 하얀 얼굴에 큰 눈이 예쁜 그 친구는 자기는 ‘게스’ 브랜드를 즐겨 입는다고 말했다. 다른 친구들이 다른 여러 브랜드를 거론하는 사이 슬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 우리 집이 좀 가난한가..?’


그전에는 부의 격차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대기업 근거리 대단지 아파트에 살아 초등학교 때는 동급생의 대부분이 같은 회사 임직원이었고, 그 후에도 우리 집과 남의 집의 경제적인 사정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진학 전에는 경제적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봐서 인 거 같다. 부모님은 한 번도 돈이 없다, 부족하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생일 선물은 물론이고 케이크나 선물을 받는 일도 없었고, 외식도 거의 안 했지만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도넛도 피자도 집에서 만들어 먹는 건 줄 알았다. 언니와 빵이 먹고 싶어서 생선을 굽는 가스레인지 오븐에 밀가루 떡을 만들어 굽기도 했다.


삼촌이 어느 날 사온 장미꽃이 가득 올라간 버터크림 케이크에 감격하고, 조르고 조르다 이모부가 대신 사 준 인형을 받았을 때의 환희는 지금도 아름답게 남은 유년기의 추억이다. 어린 나는 갖고 싶은 게 많았지만 가질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몰랐다. 내가 못 가지는 게 돈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걸 몰라서 괜찮았다. 첫째란 이유로 언니가 나보다 조금 더 가질 수 있는 게 서러웠지만 단지 가지지 못한 아쉬운 감정 밖에 없었다. 장난감이나 갖고 싶은 건 거의 가질 수 없었지만,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는 다른 행복한 추억은 많았다.


우리 집이 다른 친구들보다 좀 가난한가 생각했지만 그 이후에도 부의 차이를 느낄 일은 거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진품일 수도 있는 당시 최고 유행이었던 프라다 백팩을 메고, 페라가모 구두를 신은 동급생들이 즐비했지만 그때도 난 몰랐다. 그 구두가 페라가모라는 것도 성인이 된 한참 후에 알았고, 나는 프라다라은 글자만 알았지 가방 가격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시험기간이 끝나면 코엑스로 놀러 가고, 네이트온으로 밤샘 공부 내기를 하며 평범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앉은자리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나는 인스타그램이 부의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켜 인간의 행복감을 낮추는 주범이라고 본다. 타인의 글과 사진으로 남과 비교한 나의 위치를 가늠하게 되고, 평생 몰랐을 쓸데없는 슈퍼리치의 삶까지 구경하게 되지 않나. 흙수저 집안의 아이들이 왜 가난하면서 나를 낳았냐고 부모를 원망한다는 글, 능력도 없으면서 왜 애를 여럿 낳냐는 비난의 댓글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날 서 있는 사람들, 생면부지의 남의 인생을 재단하며 맘껏 비난을 던지는 사람들을 보면 남보다 못 한 현실에 분노해 아무 데나 분풀이하는가 싶다.


나도 남들과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맛있고 근사한 음식점에 가고 싶고, 때때로 해외여행을 가며, 강남에 살면서 아이를 교육시키고 싶은 욕망. 아직은 어린 나의 아이도 커가면서 결국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상대적 부자의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의 아이도 금수저 부모를 못 만나 아쉽다고 생각하게 될까. 교육 상 풍요보단 결핍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소중한 내 아이가 내가 가졌던 아쉬움과 서러움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추스르고 나의 길을 가자 다시 다짐해본다. 세상에 우리보다 부자는 끝도 없이 많기에. 내 자식이 커서 혹여나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냐고, 가난하면서 왜 날 낳았냐고 원망하면 마음은 부서지겠지만 결국 우린 부자가 아니기에, 어른이 돼도 바래지 않을 더 큰 사랑과 행복한 추억을 주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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