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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Jan 13. 2023

바람 부는 날의 안부 전화

안부를 묻는 마음이 강요 가능한가요?

예전에 살던 아파트는 언덕 위에 있었고, 대로변 횡단보도를 지나야 정문이 있었다. 8차선 대로인지라 신호가 제법 길었다.


특정 장면처럼 곧잘 기억하는 내게 남은 그곳의 모습도 바람 부는 추운 날이었다. 쌀쌀한 바람에 검은 코트를 한껏 조이며 퇴근길 신호 대기 중이었고, 부부싸움최다 단골주제였던 시부모 안부 전화를 위해 할 말을 고민 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5분도 안 걸릴 거, 그냥 후딱 해버리고 말 걸 왜 싸우냐고. 그 까짓게 왜 그렇게 싫냐고.


“강요받아서요. 어색하고, 궁금하지 않은 안부를 억지로 물어봐야 해서요.”


그때 나는 결혼으로 만난 가족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거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타고나기를 숫기 없고, 내성적인 내게 없는 할 말을 쥐어짜야 하는 안부 인사는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괴로웠다. 본인에게 당연한 일상이면 나도 해야 한다는 강요, 평생 부모님에게도 전화를 잘 안 하던 내 방식을 바꾸라는 요구는 절대 간단하지 않다.


지금은 가끔 생각나면 한다. 5년 정도 되니 치열한 다툼 끝에 남편의 정기적인 점검도 줄었고, “네가 웬일이니? 넌 무슨 일 있어야 전화하잖아.”라는 비꼼을 듣자 점점 더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입에서 나올 말을 신중하게 고르는 나로서는 아무리 악의가 없더라도 기분 상할 말을 쉽게 내뱉는 사람과는 가급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일단 알겠다고 대답하고 안 하는 융통성(?)도 생겼다.


바람 부는 쓸쓸한 횡단보도길과 하기 싫은 걸 강요받는 괴로운 마음이 내 안 속 한편에 함께 담겨 있다. 있는지도 몰랐던 기억은 불시에 열려 가끔 나를 덮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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