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 대신 줄넘기 줄이라도

매일 줄을 넘는다는 것은

by 서지현

출산 후 병원에 이삼일가량 머무는 동안 간호사가 말했다.
"퇴원하면 100일 동안은 꼬박 날밤을 샐 테니 여기 있는 동안만이라도 좀 푹 자요."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몰랐다.



간호사의 말이 옳았다. 신생아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삶은 그야말로 '버티기'였다. 모든게 헝클어져버린 일상 속에서 고난의 때가 속히 지나기만를 염원하고 있었다. 게다가 출산 후 몸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난산이었던 탓에 몸의 회복은 더디기만 했다. 아이는 극도로 예민한 기질이었고, 그런 아이를 끼고 있자니 내 몸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줄을 넘자.’

저민 시간 사이로 줄을 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때 챙겨 먹지도 못하고 잠다운 잠도 못자는 주제에 운동이라니, 순전히 살아보겠노라는 오기요, 몸부림이랄 밖에. 지푸라기 대신 줄넘기 줄이라도 붙들어야 했다.



아침 첫 수유로 곯아떨어진 아이를 가만히 눕히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줄을 잡았다. 그러나 줄을 몇 개 채 넘지 못해 오줌을 지렸다. 오줌이 죽죽 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는지 모른다. 아래가 상당히 헐거워진 모양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됐나.’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차마 '너 때문'이라 말할 수 없었다. 다만 '아이를 낳은 탓'으로 여겼다. 원망의 대상을 객관화하며 자위했다. 가시지 않은 충격 속에서 줄을 넘었다. 몸이 위 아래로 흐느껴 울고 있었다.



그 후로 몇 차례 더 줄을 넘다가는 그만두었다. 줄을 넘는 게 힘든 게 아니었다. '무력해진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 힘에 부쳤다. 그 후로 줄넘기는 넘지못할 큰 산이 되었다.






어느덧 아이는 일곱 살이 되었다. 녀석은 천상 남아였다. 몸 쓰며 놀기를 좋아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줄을 쥐어주었다.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겨드랑이부터 팔꿈치까지는 몸통에 붙인 채 손목만 가볍게 놀려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몇 차례 자세를 잡아주자 실력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기대 이상이었다.

신기록 갱생에 재미를 붙인 녀석은 자꾸만 엄마를 그 즐거움의 세계에 끌어들이려 했다.
"엄마, 엄마도 같이 하자. 응?"

고 말하며 조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엄마랑 나랑 시합해보자."

하며 대결을 제안했다.


아이의 성장이 신비로웠고 마냥 대견했다. 줄넘기에 대한 묵은 아픔을 꺼내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자연스레 아들과 놀면서 다시 줄을 넘게 되었다. 소변이 죽죽 새는 건 여전했다. 줄을 넘기 직전에 화장실을 다녀와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줄을 넘고 또 넘었다. '어차피 오줌을 지릴 걸.'하고 생각하고는 미리 패드를 착용하고 나가기도 했다. 나는 달라져 있었다. 아이처럼, 혹은 병자처럼 기저귀를 차는 것쯤 아무렇지 않은 완벽한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아이의 줄 다루는 기술이 화려해지고 줄을 넘는 개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것과 동시에 엄마의 줄넘기도 탄력을 받았다. 끈적하게 땀을 흘리며 몸을 놀린게 언제였던가, 아, 다시 찾은 이 정직한 쾌감이란!






막연히 '운동해야지' 했는데 결국 날 움직인 건 아이였다. 내 몸을 빌어 생명을 얻은 아들, 그가 다시 제 몸의 생기를 나누어준 셈이다. 이처럼 생명 있는 것들은 생기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살게 한다.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룻기 4:15)'

문득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다. 이방 땅에서 희망의 빛줄기 하나 없던 이스라엘 여인 '나오미'를 아이 '오벳'이 살게 했다. 내 아이가 꼭같이 그런 존재로 다가왔다.



오늘도 난 줄을 넘는다. 때로는 줄넘기 줄로 종아리를 채찍질하기도 하고, 줄을 넘다 말고 몇 번이고 속옷을 갈아입기도 한다. 이 모든 불편을 감수할 수 있는 건 '매일 나아지고 있다'는 실감이 있어서다. 모두가 '아이 덕분'이다. 줄을 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아이를 향한 고마움과 애틋함도 함께 커간다.



여기까지가 내가 다시 줄을 넘게 된 경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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