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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용품 세계와 당근

미니멀리스트 포기 선언

by 강시루

22년 10월 12일,

육아용품 세계와 당근


결혼 전 우리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신혼집을 꾸밀 때도 기능상 필요한 최소한의 가구, 가전만 사려고 했다. 의도치 않게 받은 선물로 기획했던 미니멀리즘을 온전히 달성하지 못했지만 결혼생활을 하며 물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확고해졌다. 실제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삶을 많은 물건으로 채운다. 기능적으로 내 물리적 노동을 줄여주는 좋은 물건도 많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적을수록 풍요롭다(Less is more)"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현실 세계는 어마어마한 기술발전으로, 우리가 느끼기에 필요할 것 같은 물건 수가 계속 늘고 있다. 기능이 분화되기도 하고, 기존 기능이 업그레이드된 버전이 나오면서 새 물건이 헌 물건을 끊임없이 대체하고 있다. 휴대폰만 봐도 그렇다. 이제 휴대폰은 본연의 기능인 통화, 메시지 전송보다 카메라, 태블릿으로 진화하고 있다. 마케팅으로 봐도 제조사는 새 휴대폰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아닌 다른 기능을 부각한다. 그만큼 구매를 결정하는 지점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물건에 대한 내 생각을 길게 쓴 이유는 우리가 육아 세계에 진입하면서 '물건의 습격'을 받아서다. 그 어느 때보다 육아에 필요한 물건은 그 종류가 다양했다. 물건의 습격에서 겨우 살아남은 우리는, 육아용품에 대해 많은 리서치를 하지 않았다. 기저귀, 분유(포트), 젖병 등 수유용품, 소독기, 가습기, 바닥 매트, 아기욕조, 카시트, 유아차 정도가 우리가 당근마켓을 통해 중고로 구비한 육아용품이다.


월령별로 필요한 육아용품 리스트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미 육아를 겪은 선배분들이 애써 정리해 둔 덕분이다. 우리는 그 목록을 보며, 이건 뭘까라는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니까 기능적으로 필요하더라도 대체할 수 없는 물건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분유 제조기! 분유는 분말분유를 적정온도의 물이 들어있는 젖병에 넣어 잘 흔들면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됐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분유 제조기는 분유 보관, 적정온도 물공급이 손쉬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이 기능이 내게 많은 시간, 에너지를 뺏는 게 아니었으므로 꼭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반드시 필요한 물건을 선별했다. 그렇게 해도 물건 수는 많았다. 출산 전후로는 아내 컨디션을 출산에 맞춰 조절하는 데 집중해야 했기에 물건을 준비할 여유는 없었다. 다행히 주변 많은 분들로부터 선물을 받아, 아이 옷은 최소 몇 개월간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했다. 만약 당근마켓이 없었다면 우리 부부의 육아는 훨씬 힘겨웠을지도 모른다. 당근마켓은 육아용품에 최적화된 플랫폼이다. 동네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할 수 있어 편했고 운이 좋으면 좋은 상태의 물건을 무상으로 받았다.


우리는 육아에 필요한 용품을 구하면서 '미니멀리즘'이란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아이 물건이 늘어 방 하나를 가득 채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초부터 집이 넓지 않은 것도 있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아이 물건은 우리 부부의 공간을 위협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거실에 있는 책장 하나를 아이에게 내주기로 했다. 아내는 그간 소장해 둔 많은 책을 포기했다. 그렇게 책장 하나를 비우고, 방을 정리해 오랫동안 쓰지 않은 물건들을 처분했다.


쓸 수 있지만 더 이상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이 많았다. 컴퓨터(관련 용품), 운동기구, 여분의 옷과 신발 등은 처분 대상이었다. 아이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과감하게 여러 물건에 이별을 고했다.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내게 물건 정리를 하자고 제안했기에, 쓸만한 것들은 당근마켓에 팔고 나머지는 버렸다. 정리가 한두 번만에 된 것이 아니라, 아내의 제안대로 미리 큰 물건을 팔거나 버린 것은 좋은 결정이었다. 아마 출산을 앞둔 가정이라면 '신박한 정리'와 같은 작업을 틈틈이 해두면 좋을 것 같다.


육아용품 마련에도 정답은 없다. 베이비페어를 가거나, 맘 카페를 찾아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다만, 우리에게는 그 방법이 맞지 않았다. 대신에 당근마켓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물건을 찾는 방법은 유용했다. 특히 영유아는 성장 속도가 빨라 물건을 오래 쓰지도 못한다. 어렵게, 비싸게 구한 물건을 그렇게 쉽게 보내면 허무했을 것 같다. 나와 아내는 기능상 문제가 없고, 저렴한 물건을 아이 성장에 맞춰 중고로 구해도 된다는 생각에 이견이 없었다.


소위 "끌어야 할 유아차, 해외직구 분유 등"은 처음부터 우리 목록에 없었다. 우리 아이는 소중하므로 희소한 브랜드 용품을 써야 한다는 마케팅 논리는 기괴하게 들렸다. 육아용품을 특정 브랜드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자유도는 우리에게 많은 부담을 덜어줬다. 그러나 이것도 취향이고 부모의 선택이다. 우리는 그 방식을 찾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됐다는 데 안도했다. 감사하고 나중에 은수가 그런 부모의 선택을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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