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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기도

감기에 걸린 아이

by 강시루

22년 10월 28일,

부모의 기도


아이가 태어난 지 70일이 넘었다. 두 달 사이 우리 부부의 삶은 출산 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거의 모든 의사결정이 아이 중심으로 이뤄졌다. 아이가 생후 두 달을 겨우 넘긴 상태라 당연한 처사였다. 두 달은 빠르게 지나갔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50여 일을 넘기며 6시간 이상 잠을 자더니 요즘은 수면시간이 8시간 이상으로 늘었다. 밤 사이 감당해야 할 일이 줄었다는 점은 획기적 변화였다. 수면교육 자료나 주변 증언에 따르면 100일 전후로 그 마법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일찍 찾아온 셈이다.


아이가 통잠을 자고 잘 먹는 것 이상으로 좋은 점은 없다. 100일까지는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고 하니 더 그렇다. 은수는 조리원에서부터 같은 월령 아이들에 비해 잠을 잘 자고, 평온한 편이어서 부모의 걱정을 덜어줬다. 또 한편으로는 아이가 혼자 평온한 시간을 보내면 부모가 다른 집안일을 하거나 쉴 수 있다는 점에서 금상첨화다. 그런 일을 생후 2달이 갓 지난 아이가 해주고 있다.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 성향이 부모의 기질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그렇지 않다는 설도 있다. 어느 쪽이든 하루하루 육아에 지쳐있던 우리 부부는 그냥 아이가 혼자 잘 있어주는 것에 황송했다. 그 덕분에 "아이는 알아서 큰다"는 어른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몰론 현실에서 알아서 크는 아이는 없다. 아마도 이 말은 아이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을 충분히 제공해주면 아이도 제 몫을 한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기특하다.


오늘은 아이가 통잠으로 9시간을 넘게 잤다. 은수는 보통 아침에 컨디션이 가장 좋다. 아침에 일어나 수유, 기저귀 교체, 간단한 세수 등을 하고 나면 누워서 모빌을 한참 봤다. 0세 아이의 집중력으로는 모빌 재생시간을 끝까지 버티지 못하는 게 보편적인데, 은수는 음악이 재생되는 30분간 모빌에 집중한 적도 많았다. 신기한 점은 모빌에서 여우 인형이 가까이 오면 옹알이를 하며 큰 소리도 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인형보다 여우 인형을 좋아했다. 어떤 때는 기저귀를 교체하는 동안 옆에 있는 모빌의 여우 인형에 집중했다. 그런 은수였다!


그런데 오늘 오전 은수가 갑자기 재채기를 여러 번 했다. 또 잠을 자다 콧구멍에 콧물이 맺혀 숨을 쉬기 불편해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아내는 재빨리 검색을 해 아이가 감기에 걸렸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 월령의 아이가 감기에 걸리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증상이 악화되기 전에 의료적 처치를 받으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어제 저녁에는 갑자기 기침을 하는 것 같아 급한 마음에 약국에 갔다. 약사 선생님은 2세 미만 영아에 감기약을 먹이면 안 되지만 용량을 반 이상 줄여 먹이면 괜찮다고 감기약 구매를 권했다. 약사의 말이라 그렇게 믿었다.


아마 오늘 아이가 9시간 이상 통잠을 잔 데는 약기운 탓이 큰 것 같다. 우리는 점심시간이 지나고, 아이 컨디션이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병원에 가기로 했다. 은수의 병원행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예방접종으로 두 번이나 외래 진료를 다녀왔다. 최근 영유아를 중심으로 호흡기 질환이 유행하고 있다고 해 걱정이 되긴 했다. 그만큼 아이를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해야 해서다.


영아가 앓는 질병은 부모에 책임을 묻는다. 특히 육아를 전담하는 엄마는 집중 타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나 아이가 감기로 고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아이의 모든 발달단계에서 부모는 아이 관련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를 둘러싼 모든 환경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어서다. 아이의 안전을 부모가 통제할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신화다. 부모도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지만 은수가 많이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 머릿속은 하얘졌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병원에 도착해 진료를 받은 우리는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진료의는 이 아이가 어떻게 감기에 걸렸는지 의문이라며 부모 중 감기 환자가 없었는지 물었다. 그 때, 며칠 전 독감 예방주사를 맞은 아내가 감기 기운이 있다며 종합감기약을 먹은 기억이 났다. 애써 그 탓이 아닐 거라고 반복해서 되뇌었다. 다행히 아이의 증상은 심하지 않았다. 영아는 감기를 앓으면 쉽게 중이염이 올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도 했다.


추가로 어젯밤 약국에서 사 먹인 종합감기약에 대해 물었다. 의사는 아이에게 감기약을 왜 먹였느냐며 나를 타박했다. 어제 나는 감기약을 사러 약국에 간 게 아니었다. 약사가 약을 먹여도 된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이제 와 책임소재를 찾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나마 딱 한 번, 2밀리만 먹였다는 걸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의료진 처방이 같은 의료진 내에서도 엇갈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의사는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걸로 들렸다.


은수는 오늘도 처방받은 감기약을 먹고 깊은 잠에 들었다. 아이가 감기약을 먹고 난 후에 약에 취한 듯한 모습은 짠했다. 우리 부부는 제발 아이가 잘 버텨서 감기가 깨끗이 낫기를 바랐다. 부모가 된 우리는 온 힘으로 아이의 하루를 채우고 있다. 육아가 수반하는 부담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건강히 잘 성장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기도로 오늘도 아이는 자란다. 아이가 장성해 독립을 해도 부모의 기도는 이어질 것이다. 부모-자녀 관계의 숙명이다. 오늘은 평생 은수를 위해 기도할 우리를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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