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아이
불덩이가 된 아이
올 3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닌 아이는 그간 감기를 달고 살았다. 시설에 다니는 아이가 질병에 노출될 확률이 높은 건 익히 들어 안다. 부모로서 안타깝지만 아이를 맡기지 않고는 맞벌이를 지속할 수 없어 대안이 없다.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아이를 다른 이에게 맡기고 일터에 나가는 건 어렵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라면 더 그렇다. 곧 돌이 되는 아이는 나름의 의사 표현을 하게 됐지만, 사실상 그전부터 시설에 맡긴 셈이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복직을 앞둔 아내가 일상을 되찾게 된다는 기대에 차 있지만, 한 구석에는 늘 아이 걱정이다.
둘이서 아이를 키워야 하므로 복직 전, 우리는 아이 등하원을 중심으로 주중 일과를 계획했다. 운 좋게 둘 다 출퇴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직장에 다녀 내가 등원, 아내가 하원을 맡기로 했다. 아내가 등원을 전담했지만, 통근 거리가 짧은 내가 등원을 맡는 게 나아 보였다. 아내가 등원을 하고 늦게 출근하면 퇴근이 늦을 게 뻔해서다. 이하 변수에는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계획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었다! 등하원을 포함한 아이의 하루가 예상대로 흘러가면 좋으련만 변수는 늘 있다. 지난주 가벼운 감기 증상을 보인 아이는 콧물 약을 계속 먹었다. 엊그제만 해도 증상이 없어 이제 괜찮아지나 보다 했다.
역시 방심은 금물, 예상치 않게 아이는 고열 증상을 보였다. 밤 사이 끙끙대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아내는 아이 체온이 39도를 오르내리는 걸 보고 해열제를 먹이고, 해열 패치를 붙였다. 새벽에 이 소동이 났으니 세 가족이 밤잠을 설친 건 당연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재택근무를 하는 날 새벽에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 체온이 떨어질 때까지 미온수를 적신 수건으로 아이의 작은 몸 곳곳을 닦았다. 39도나 되는 고열로 힘들 텐데, 아이는 끙끙대는 소리만 낼뿐 울지 않았다.
비교적 순한 아이라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건가 싶은데, 이럴 땐 아픈 걸 얼마나 참고 있을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왜냐면 아이가 온몸으로 고통을 참아내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의 이런 모습이 대견했지만, 힘겹게 고통을 참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사실 아이를 키우며 아이가 갑자기 고열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는 자주 있다. 일찍 시설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단체생활을 하며 알 수 없는 경로로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 더 그랬다.
우리가 이를 몰랐던 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전쟁터에 내몬 셈이다. 그렇게 세상에 던져진 아이가 나름 전투를 잘 해내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간 아이는 가벼운 감기부터 고열, 또 바이러스로 인한 인후염 등을 몇 차례 앓았다. 몇 번의 전투를 함께 치러낸 경험이 있다고 해도,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패닉이 된다. 그나마 과거 경험이 도움이 된 건, 침착하게 대응법을 하나씩 밟게 됐다는 점이다. 이제는 인터넷 검색으로 응급처치법을 찾지 않아도 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루하루 더디게 가는 부모의 시간은 우리를 더 나은 양육자로 키워내고 있다.
정신없이 아이를 돌보다 보니 새벽 3시였다. 언제부터 아이 옆에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다행히 아이는 열이 내려 미열 수준이 됐다. 우리는 아이가 끙끙 앓다 힘들어 잠이 들 것 같다는 생각에 편히 누울 자리로 아이를 옮겼다. 예상대로 아이는 이내 잠이 들었고, 우리는 조용히 두 손을 마주 잡고 안도했다. 이제 다음은 아침에 아이 컨디션을 보고 어린이집 등원 여부를 정해야 했다. 아이가 등원을 못하면 재택근무를 하는 내가 아이를 데리고 있기로 했다. 아내는 다른 집안 일로 병원에 가야 하는 일정이 있었다. 잠든 아이가 조용해지자, 우리도 잠이 들었다.
이후,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컨디션이 좋아 보이진 않았으나 열은 없었다. 약간 기운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일단 아이를 등원시키고, 열이 올라 다시 데려와야 하면 그때 병원에 가기로 했다.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고열 증상을 보이면 병원에 가더라도 해열제, 소염진통제 등을 처방받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당장 약효가 있어 아이 컨디션이 좋아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등원과 외출 준비를 한 우리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하루를 잘 보내길 바랐다. 그간의 경험에 따르면 병원에 가지 않고도 약을 먹고 나아지는 경우가 많아 근거 없는 기대는 아니었다. 등원길 아이 모습은 밤 사이 고생을 해서 그런지 다소 처져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어린이집 선생님을 보고 손을 내밀며 방긋 웃자 내 걱정은 금방 누그러졌다. 어쩌면 아이가 잘 이겨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점심까지 아무 연락이 없자, 우리는 아이가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이레 짐작했다. 하원을 앞둔 오후 3시 반쯤 아내가 어린이집으로부터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내는 아이가 낮잠을 자고 일어난 후에 열이 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아내는 내게 하원을 부탁했고, 집에 도착하는 대로 짐을 챙겨 병원에 간다고 했다. 하원 후 집에 돌아온 아이는 피곤한 기색을 보였지만 증상이 심해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고, 내일 등원을 위해 병원에 가는 편이 나은 건 맞았다! 병원 갈 채비를 하고 나선 길은 폭염으로 무척 더웠다. 가까운 곳에 자주 가는 소아과가 있어 다행이었다. 병원에서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이제는 병원이 어떤 곳인지 아는 아이는 다소 긴장한 듯했다.
병원에선 아이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심한 인후염을 앓고 있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많이 아플 거라며 아이가 시설에 다니는지 물었다. 어린이집에서 유행성 질병이 있다는 얘길 들은 바는 없어 어떤 경로로 바이러스에 노출됐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아이가 며칠간 고열로 고생할 수 있으니 옆에서 잘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다른 때와 달리 아이를 보는 선생님의 모습과 진단은 무거웠다! 그만큼 아이 컨디션이 나쁘다는 뜻으로 읽혔다.
아프다는 표현도 잘 못하는 작은 아이가 울지도 않는 걸 보니 또 짠했다! 이번에도 아이가 힘겹게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했다. 아이가 아프면 모든 부모 마음은 똑같다. 대신 아플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이번에도 처방받은 약을 먹고 아이가 바이러스를 잘 이겨내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다.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라고 해도 얼마가 될지 모를 그 시간에 부모, 아이가 모두 고통받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