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완벽했던 한 순간

by 시선siseon

햇살이 너무나 따스한 날이었다. 유난히 눈이 없던 계절에 드디어 여기저기 흩날리기 시작했다는 눈 소식이 무색하게, 이곳은 외딴곳 같았다. 찬란하고도 눈부신 햇살을 받아 바다색은 거의 에메랄드 빛을 띨 참이었고, 유리로 차단된 공간 안은 밖의 조금 남은 싸늘함마저 말끔히 밀어내고 짐짓 봄의 기운을 품고 있다.



거기 고풍스러운 6인용 탁자와 의자가 놓여있다. 짙은 갈색의 차분한 테이블 위에는 금색의 꽃병이 놓여있고, 빛바랜 한두 송이 조화는 공간을 더욱 차분하게 구성한다. 그리고 따스한 손 커피 한잔. 마치 정성스레 여러 번 차를 부어마시듯 작은 찻잔과 주전자에 준비된 손 커피의 낯선 모습이 무엇이 중요하랴. 그 공간 안에서 만큼은 찻잔에 담긴 커피 조차 그보다 더 자연스러울 순 없다.



그리고 그 공간에 그녀가 있다. 처음엔 그저 혼자가 낯선 듯 주섬주섬 책을 꺼내고 노트북을 꺼내고 부산하더니 이윽고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잔잔한 바다. 파도랄 것이 없는 바다엔 잔잔한 물결이 진다. 육지로 밀고 들어오는 방향인가 싶더니 어딘가부터 반대방향으로 흐른다. 명백히 다른 방향인데 그 경계는 어디인지 모호하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결국 혼자의 시간이었을까. 늘 시간에 쫓겨 사는 그녀에게 1분 1초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그 시간은 늘 '일'이 아니면 '타인'으로 채우기에 급급했다. 타인을 애타게 찾다가 갑자기 텅 비어버린 시간. 시간을 쓰는 데 있어서 만큼은 잠시의 무기력도 참지 못하는 평소의 그녀가 무색하게 그제야 가까스로 마주하게 된 혼자만의 시간은 생각보다 너무 달콤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허상이다. 그녀의 시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그녀 혼자 만이 아니다. 그 공간. 창밖으로 잔잔한 바다와 등대가 보이고, 햇살이 눈부시게 비추고 있으며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따스한 방의 온도, 잠시라도 풍경이 지겨워질 참이면 언제든지 집어 들 수 있는 책과 노트북, 휴대폰, 간간히 목을 축여줄 향긋한 커피까지 있는 그 공간은 사실 그 자체로 그녀의 로망에 가까웠다.



- 그러나 이런 완벽함 또한 매일 주어지는 것이라면 빛이 바래져 버리겠지.



거기까지 생각하자 그녀의 마음이 한켠 씁쓸해졌다. 완벽한 것을 손에 쥐자마자 그것이 퇴색될 조건 또한 같이 인지되는 이 현실 맞은 감각이란. 그렇다. 완벽한 것은 또한 찰나에 반짝이기에 더욱 소중한 것. 이미 완벽한 것이 영원하길 바랄 만큼의 순수를 영영 잃어버린 것은 축복인가 불행인가.



자리를 일어나며 그녀는 그 공간의 사진을 한 장 찍어둔다. 그 순간을 조용히 박제하는 것이다. 언제고 또 생각날 때마다 꺼내 먹을 소중한 양식이다. 마음이 허기진 순간에 박제된 소중한 기억들의 쓸모란 몇 번을 되새김질해도 아쉽지 않다.



(1,360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집안일을 잘한다'의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