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상황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것만큼 무서운 것이 있을까.
우울증이라는 것이 그렇게 온다고 했다. 현재의 상황이 앞으로도 바뀔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곧 절망으로, 그것이 사람을 가장 무기력하게 만드는 절망과 우울증으로 온다고. 그리고 그 믿음이 주는 막막함을, 최근에 부쩍 느낀다.
상황이 나빠서가 아니다. 오히려 현 상황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오는 것이랄까. 업무적으로 바쁜 시기가 지나고, 코로나다 뭐다 해서 일의 영역에서 오는 긴장이 적어진 탓이 가장 크다. 한숨 돌리니 쓸데없는 생각들이 그 사이를 채운다. 나는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인가? 적당한 일들, 적당한 편안함. 이 속에 젖어있어도 되는 건가?
너무나 예측 가능한 하루하루들 속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닌데, 적어도 바쁜 시기에는 '농밀하게' 살지 않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덜하다. 이어령 선생님은 자신 또한 암 진단을 받은 후부터 하루하루를 더욱 농밀하게 살았다고, 그러니 죽지 않을 것처럼 나태하게 살지 말고 농밀하게 살아라 하셨거늘. 그러나 바쁘게 사는 것이 농밀하게 사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저 소진되어 가면서 사는 삶이 아니라, 하루의 시간을 '농밀하게' 채운 삶은 어떤 모습일까.
일적으로 더 높은 목표와 성취를 이루는 것만을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고 믿었던 과거가 차라리 더 쉬웠다 싶다. 현재와 같지 않은 미래를 꿈꾸는 일, 삶의 밀도를 높이는 일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