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1
이른 저녁인데 하루를 구겨 케이스에 넣고 있다
악사의 기타 줄은 더 이상 견딜 여력이 없고
종일 서서 목청을 틔워도
오가는 시선은 종전 같지 않아
매부리코 능선을 따라 흘러내린 안경은 코만 무겁게 한다
안데스 색깔 망토에 얹은 이국의 나날은
수십 년이 갔어도 아직 낯설다
삼뽀냐*의 음색은 아무리 가다듬어도 컬컬하고
벗어놓은 모자에는 낯선 음률만 가득한
사당역 지하도 한 귀퉁이
잠깐의 엇박자에도 지나온 정착기의 파열음이 스며있는데
그의 노래는 깊은 산맥 아래로 자꾸만 미끄러진다
이곳의 노래를 불러도 여전히 이방인인 그는
밤마다 양털을 깎고, 비탈을 오르내리고
젖을 짜는 아내의 구부정한 어깨가 더 구부정해진 것을 본다
기타는 그림자마저 낡아가고
밤도 희끗 희끗 자정을 넘는데 잠들지 못하던
그,
내일 또 낡은 기타를 메고 지하도 귀퉁이에 서서
퀘퀘한 하루를 변주할 것이다
동쪽의 끝으로 온 한때의 낭만을 월세 쪽방에서 지고나와
챙 넓은 모자에 담아놓고는
또 하루의 고단함을 탱고 리듬 위에 눕히며
거듭되는 샵과 플랫에 눈길을 거두고 가는
행인들과
자꾸만 엇나가는 눈마춤을 잇고
그런 날이면
2호선 막차 떠난 계단을 오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분너분 안데스 고원을 밟고 있을 것이다
*삼뽀냐(ZAMPONA)- 페루 등 안데스 지역의 전통 악기로서 일반적으로 안데스 팬플룻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