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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Dec 22. 2021

엄마의 냉장고

생의 꽃밭은 어디에

엄마의 냉장고     


     

 코로나19가 시작되었을 때 외국의 마 선반들이 텅텅 비었다고 뉴스에서 보도되었다. 특히 휴지는 구하기 힘들어 서로 구매하려는 통에 마트 내에서 싸움도 종종 일어난다고 했다.

반면 한국의 마트는 평온했다. 비상 물품이라고 생각되는 라면이며 생수, 휴지가 꽉꽉 채워 진열되어 있었다. 그 저변에 한국은 배송이 신속하다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한국 내에서 사재기가 많지 않은 것은 희한한 현상으로 뽑혔다. 코로나19로 마스크가 잠시 품절을 겪었던 적이 있었지만 몇 달 후 다른 비상 물품처럼 공급이 넘치고 가격이 내려갔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비상시 엄마 집으로 달려가면 몇 달은 걱정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냉장고에는 석 달은 먹고 지낼 음식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굳이 마트를 달려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무릎을 '' 치며 웃었는데 그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엄마 집에는 두루마리 휴지가 늘 몇 팩씩 쌓여있고 쌀이 몇 포대씩 쌓여 한 계절을 대비하고 있으며 김치냉장고에는 김치가 가득다. 냉장고를 여는 것을  조심해야 할 정도로 음식이 꽉 차 있다. 냉동고 안은 너무 가득 채워놓은 나머지 문을 열면 꽁꽁 얼어있는 비닐에 담긴 무언가가 툭 떨어지기 쉬워 여는 순간 발을 조심해야 할 정도이다. 아마 냉동실만을 다 비우는 데에도 많은 날이 걸릴 것이라 예상된다. 각종 고기며 생선들이 해동되어 식탁에 오를 날만은 기다리고 있고 떡이며 남은 재료들이 냉동실에서 해방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냉장고라고 질 수 없다. 멸치볶음이며 깻잎장아찌, 각종 젓갈 같은 기본 밑반찬에 갓김치, 열무김치. 묵은지, 겉절이, 동치미까지 김치 종류만 세도 한 손이 모자란다. 그리고 각종 나물이며 장조림같이 오래도록 두고 먹을 수 있게 만들어서 쟁여놓은 반찬들까지 꽉 들어차 있어 냉장고 불빛이 잘 안 보일 정도이다. 과일과 각종 유제품은 말할 것도 없다. 몸에 좋다는 즙이나 홍삼액까지 들어차 있으니 냉장고 하나가 작은 마트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게다가 한국은 냉장고가 하나가 아닌 경우가 많다. 오직 김치만을 위한 김치 냉장고가 하나 더 있으니 집에 냉장고가 두어 개인 경우도 꽤 많다. 김장철이면 김장을 많이 해서 쟁여두는 엄마 집에는 냉장고가 무려 세 개다. 김치 종류만 해도 여럿이기 때문에 김치 냉장고 하나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일반 냉장고 하나에 김치 냉장고가 두 개다. 그러하니 비상시 엄마 집에만 가면 너끈히 몇 달 버틸 수 있다는 말은 한낱 농담으로 웃고 넘기기에는 사실에 가까운, 요즘 말로 팩트 폭격(사실 확인)인 셈이다.     

 한편 나의 냉동고는 꽉꽉 차 있지도 않지만 찌개에 필요한 냉이, 달래, 호박 등의 얼린 식자재와 음식 하는 데 쓰이는 파, 새우젓, 우거지, 약간의 고기 등이 들어 있는 게 전부다. 조금 더 보태자면 아이를 위한 돈가스와 같은 간편 냉동식품이나 아이스크림 정도 들어 있다. 미니멀 라이프로 살고자 해서 있는 것도 자꾸 비우고 한꺼번에 많이 사서 재어 놓지 않으니 비상시에는 오래 버티기에 힘들 것이다.


 친구들과 수다를 나누다 보니 6.25 전쟁 전후로 태어난 부모님 세대는 먹고살기 힘들었던 세상을 겪어서인지 그 연배의 엄마 집마다 각종 물건이 베란다며 창고에 저장된 모습이 다들 비슷하다고들 한다. 저녁에 주문하면 새벽 배송되는 시스템까지 잘 되어있는 나라에서 무엇이 걱정되어 휴지를 이렇게나 많이 쌓아 두냐고 몇 번 이야기해보았으나 여전히 엄마는 휴지나 쌀 등을 잔뜩 쌓아놓았다. 마치 그것들을 충분히 저장해 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한 것만 같았다. 만약 굳이 전쟁이 아니더라도 어떤 비상사태가 생긴다면 엄마 집의 저장품들은 든든한 비상품으로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엄마의 집이 비상시 대피소이자 음식 저장고, 즉 곳간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고 보면 유독 한국에 없다는 사재기 현상이 전후 세대 어머니들의 저장 습관 때문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프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하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혹독한 일제 강점기를 지나 6.25 전쟁을 겪으며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가 되기까지 얼마나 배고픈 시대를 살아왔는지 80년대 전후 세대인 나는 다 알지 못한다. 라면도 귀해 하나를 끓여 여럿이 나누어 먹었다는 그 시대 이야기를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손쉽게 사 먹는 지금의 MZ세대가 이해하기는 다소 요원할 것이다.

  사재기가 없는 한국의 마트 모습에는 그들이 모르는 것이 감추어져 있다. 엄마상이 차려지는 뒤안에는 쌀 여러 포대를 재어 둬야 마음이 편해지는 아픈 한국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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