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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Sep 22. 2022

아빠와 빵

어느 날 저녁, 남편이 퇴근길에 빵을 사 왔다. 그 빵 봉지를 보는 순간 문득 빵에 관한 추억이 떠오른  나는 눈가가 촉촉해졌다. 기억은 어느새 어린 시절 저 너머로 뒷걸음치며 흘러갔다. 아빠의 퇴근길, 아빠의 투박한 손에는 빵 봉지가 자주 들려있었. 빵집의 상호가 적힌 빵 봉지를 볼 때면 나는 무척 좋았다. 아빠가 나에게 주는 간식이자 기쁜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빵을 정말 좋아하는 빵순이였다. 카스텔라, 곰보빵, 옥수수식빵, 크림빵, 맘모스빵, 소라빵,단팥빵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

그런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빠는 퇴근길에 빵을 자주 사 오셨다.  는 아빠가 오는 시간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그러면 퇴근한 아빠는 빵을 좋아하는 딸에게 함박웃음 지으며  빵 봉지를 건네셨다. 


 먹을 것이 지금처럼  넉넉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아빠의 월급날, 가끔 닭집에서 튀겨오는 통닭 그리고 아빠가 동료들과 어쩌다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하시고 사 오는 순대가 꽤 맛난 간식이었다. 그에 비하면 빵은 참 세련된 간식이었지 싶다. 봄이 되면 엄마가 제철에 나는 딸기로 달짝지근한 딸기잼을 만들어주셨다. 노란빛이 도는 구수한 옥수수 식빵을 사다 그 위에 잼을 발라 먹는 재미가 쏠쏠했었다. 빵집에 가서 예쁘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던 하얀 생크림 케이크를 유리 진열대 너머로 구경하고 기차처럼 길게 포장된 옥수수 식빵 한 봉지를 사서 집에 가면 빵순이는 얼마나 행복하던지 모른다.


사춘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던 간식 또한 빵이었다. 입시를 앞둔 고3 때, 밤 11시까지 이어지는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고 집에 오면 자정에 가까운 늦은 시간이었다. 저녁 식사가 소화되고도 남을 시간이었으니 집에 와서는 늘 배가 고팠다. 아빠는 빵순이였던 내 간식으로 빵을  이것저것 사다 놓으셨다. 그런데 그 시간에 빵을 먹고 자곤 하니 아침마다 속이 더부룩했고 또 살도 찌는 것 같았다. 그래서 괜히 심술을 부려 아빠에게 앞으로 빵을  사 오지 말라고 했다. 내가 대학을 가고 나서도 아빠는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가끔 동네 빵집 빵을 사 들고 오셨다. 그러면 나는 프랜차이즈 빵집의 것이 아니라고 먹지 않기도 했다. 유럽 느낌의 ○○바게트 빵집 빵을 사다 달라고도 하고 프랑스 이름을 가진 빵집의 빵이 먹고 싶다고도 했다. 그때는 그게 좋아 보였고 마치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참 유행에 민감하던, 밀레니엄을 앞둔 X세대였으니 빵도 유행 따라먹고 싶었던 게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프랜차이즈 빵집이 유행하며 동네 빵집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게 된 나는 스스로  빵을 사 먹게 되었고 어느 날부터인가 아빠는 더는 빵을 사 오지 않으셨다.


세월이 흐르고 나는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다. 이가 학교생활을 마치고 돌아 먹을 간식을 준비하는 시간이 미소가 어리도록 흐뭇하다. 좋아할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고른 간식을 담아 집에 갈 때 나는 누구보다 행복함을 느낀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내 앞에 앉아 그 간식을 맛있게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 아이가 참으로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렇게 나의 일상은 아이와의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이 된다.


아빠의 퇴근길 동네 빵집 순례도 그런 것이었을까. 좋아할 아들, 딸 얼굴을 떠올리면서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빵을 하나하나 고르던 그 시간이 아빠에게도 즐겁고 흐뭇한 시간이었을까. 힘들어하는 고3 딸에게 힘내라는 말 대신 빵을 사다 주며 마음을 전했을 아빠에게 너무나도 미안하고 감사하다. 그때의 나는 아빠가 행복했 그 시간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다. 아빠의 마음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던 어린 딸이 아빠는 서운하고 야속하지는 않았을까.


남편이 퇴근길에 들고 온 빵 봉지로 인해 갑자기 아빠와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지금은 없어진 그때 그 동네빵집에서 아빠가 사 온 빵이 먹고 싶어 져서 눈시울이 젖었다.

나는 지금도 빵을 좋아한다. 그래서 아침 식사로 빵을 먹는 일이 다. 남편이 사 온 빵을 맛있게 먹으며 나는 남편에게 아빠가 퇴근길에 빵을 사 오던 일화와  동네 빵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 아빠와 즐겨 불렀던 '아빠와 크레파스' 노래 가사에서 '크레파스'를 '빵'으로 바꿔 부르며 빵을 먹었다.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손에는 빵을 사 가지고 오셨어요. 음음..."


빵을 사서 집에 오던 듬직했던 아빠의 모습도, 빵 봉지를 받아 들고 좋아하던 나를 보며 함박웃음 짓던 아빠의 젊은 얼굴도 너무 그립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어린 시절의 아빠가 내게 주었던 사랑만큼 나도 아이에게 줄 수 있을 모르겠다. 아이에게 아빠의 빵과 같은 포근하고도 온기 가득한 추억을 나 또한 전해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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