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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Aug 28. 2024

사주팔자

나는 과학을 좋아고 사람들의 인생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주팔자에 관심이 있어 가끔 운세 사이트에 접속해서 내 사주나 운세를 보는 한다.

몇 년 전 눈물 나게 힘든 날 집 앞 사주카페를 기웃대다가 용기 내어 들어간 적이 있다. 상담 받아보고 싶었으나 요즘 상담 받으려고 해도 대기가 엄청나다.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곳도 있었다. 얘기를 잘 못하는 나는 끙끙 앓다가 속병이 날 지경이었다.

여름과 가을 그 언저리쯤  학원가 뒷골목에 자리 잡고 안 어울리게 샛노랗게 칠해진 그 문을 어느 날 용기 있게 열었다. 늘 괴로워하는 엄마와의 문제였던 걸로 기억한다. 내 사주는 전에 봤던 것과 비슷하게 나오긴 했다. 특히 지나간 과거는 그랬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고민을 이야기했고 그동안 여기저기 사주카페에서 주워 들어 아는 이야기들을 다시 듣고 나왔던 것 같다.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말투가 기분을 상하게 했다. 내 심정을 털어놓은 것으로 만족했다. 나는 그 문을 열고 나오면서 예전 심리상담이라는 것이 없었을 때 사람들이 점집을 찾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내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받고 싶은데 딱히 그럴 곳이 없을 때 사람들이 점집가서 복채를 냈구나 싶었다. 그러다 마음 약 엮이면 부적도 사고 굿도 했겠지. 그러면 마음이 다소 편해졌을 테니까.

지금 심리상담을 돈 주고 하듯이 그런 식으로 마음 편해지는 방책으로 삼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 노란 집에 마음이 상해 다시 사주카페를 찾지 않으리라 했는데 나는 겨울날 남편과 시내의 사주카페를 한 번 더 찾았었다. 아마 그 시절 나는 암담한 내 미래에 대해 누군가와 의논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이야기는 그다지 생각나지 않고 남편에 대한 이야기만 기억난다. 마흔 이후 풀린다고.  이야기를 듣고 더 견뎌봐야겠다 하며 안심했다.

사주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와도 이상하게 대부분 잊는다.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잘 기억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내 사주에 대한 이야기는 뚜렷하게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날은 연신 맞다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말이다. 사실 사주로 미래를 맞추기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다. '믿거나 말거나'가 내 머릿속에 깔려있다. 듣다 보면 과거의 일들은 얼추 맞다. 기본적인 성격이라든가 지나온 과거는 대충 들어맞는 게 신기하다. 통계학에 기반한 거라니 아주 비과학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진 성격이나 환경 같은 것이 태어난 년, 월, 일, 시에 기반한 사주에 들어맞는다는 게 좀 기이하지만 아주 다르지도 않다.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려도 지나온 인생 굴곡 없는 이는 없으니 다들 고개 끄덕일 만한 내용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동안 힘들었겠네." 하면 거의 99.9% 사람들이 '그렇다.' 하지 않을까. 게다가 점집은 고민이 있거나 힘든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나는 점집의 상술을 이렇게 바라보았다. 

그래도 아닌 척하면서 속으로 흠칫하는 것도 있으니

참으로 묘하다. 기가 세다. 약하다 는 등 그런 것들이 사주에 있다니 참으로 놀랄 '' 자이다.

근래에는 마음 다스리는 연습이 많이 되었다. 나는 점집에 가지 않고 인터넷 사주를 가끔 들여다본다.

사주에 편인이니 비견이니 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지만 가족들 사주를 넣어보면 다 다르게 나오니 그것도 신기하다.

좋은 말은 참고하고 나쁜 말은 걸러 듣는다. 조심하라는 건 주의 깊게 본다.

이 모든 게 말짱 도루묵인 게 다음 날이 되면 새하얗게 잊고 또 하루를 보내곤 한다. 밤에 쓱 보았다가 아침이 되면 하루를 살아내기 바쁘기 때문이다.

사람 인생이 저마다 사주에 있는 것처럼 정해져 있다면 얼마나 재미없을까.  안에 갇힌 다람쥐처럼 제 인생을 정해진 대로 살다 죽음을 맞이한다는 상상은 끔찍하다.

가끔 인생에 혼란스러운 시기가 찾아온다. 그 고통의 소용돌이에서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하다 보면 정해진 대로 사는 삶이 얼마나 평온하고 좋을까 싶기도 다. 20대에는 안정된 30대가 빨리 되어버렸으면 한 적도 있다. 막상 30대가 되고 나니 더 엉망진창,  혼돈의 시기여서 40대가 빨리 왔으면 했다. 40대가 되니 에라,

몸뚱이는 더 늙고 힘들어지고 인생은 늘 카오스 자체였다. 안정적이다가도 다시 힘들고 해결해야 되는 과제들이 계속 생겨나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지나가 있고.

내가 그토록 바라는 평온은 영원의 안식에서나 가능한 것이겠구나 싶다.

다만 평정심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내 인생을 조금 더 따뜻하고 평온하게 해 준다는 것을 깨닫았달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견디다 보면 죽을 듯이 힘든 고통도 지나가 있고 다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웃으며 치킨을 뜯는 날도 온다. 행복한 시간, 고통스런 시간 틈새를 지나가며 함께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었다.

내 마음 안에 행복과 평화가 자꾸 깨질 때 나는 또 운세사이트를 들어가 볼지도 모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라고 외치던  '바람과 함께 사라.' 속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다시 시작할 내일을 기약하며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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