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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보언니 Jan 08. 2021

승무원을 그만두고 싶던 날, 나는 이것을 모으기로 했다

나를 붙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것


"사람들의 설레는 여행길의  시작인 비행기에서 최상의 서비스로 행복과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항공사 면접 준비를 하며 지원동기에 이렇게 적었던  같다. 사실 손님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기 위해 승무원이  것이 아닌데 말이다.
내가 승무원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가지. 예쁜 유니폼을 입고 싶었고,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자라면  번쯤 유니폼 입은 승무원을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한 적이 있지 않은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승무원이 되고 싶었던   가지 이유가 나중에는 그만두고 싶은 이유가 되었다. 우선 유니폼을 막상 입으니 너무 불편했다. 블라우스 단추 때문에 목이 조여 답답하고, 때도 금방 타고, 조금이라도 체중이 증가하면 유니폼이 맞지 않아서 스트레스 받는 일도 허다했다. 승무원이 되기 전에는 마냥 예쁘고 우아해 보이기만 했던 유니폼인데 답답해서 벗어던져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승무원을 하면 여행을 많이 다닌다는 말도 나에게는 예외였다. 장거리 비행을 가면 몸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침대 밖을 벗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힘든 일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여행을 하기에는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비행 스케줄이 여유롭지 않다. 새벽같이 일어나 14시간을 날아가서 현지 시차 적응을 하기도 전에 하루 혹은 이틀 체류하고 다시 돌아와야 하는 일정이기 때문이다. 승무원은  위의 백조와 같다. 백조는  위에서는 도도하고 우아해 보이지만  밑에서는 치열하게 발을 움직이고 있다. '승무원이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아? 승객들 식사만 주면 끝나는  아냐?'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승객들 탑승 전에도 준비할 것이 많아 정신없이 바쁘고, 단거리 비행의 경우 밥을  먹고 내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야말로  에너지를 비행기에  쏟아붓고 내린다.


겉보기에는 화려할 지라도 알고 보면 몸이 많이 고된 일이다. 승무원을 하면 여행을 많이 다닐  있다는 말은  포함 많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슨 일이든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비행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환상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비행 권태기가 빨리 찾아왔다. 사람들에 치이고 몸도 마음도 지쳐 입사하고 1년도  지나지 않았을  슬럼프에 빠지고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어떤 일인지  알지도 못하고 무작정 하고 싶어 했으니 말이다.

승무원 SNS 보면  빼고  행복해 보였다. 비행 가서 어찌나 열정적으로 투어를 다니는지 그들의 체력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나도 처음 가보는 도시에 설레고 한창 '비행 '들려 즐기면서 비행을 할 연차인데도 막상 호텔에 가면 피곤해서 자기에 바빴다.
문득 이러다  , 아니  개월 안에 유니폼을 벗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승무원을 그만뒀을  내가 승무원이었음을 증명할  있는  경력증명서 말고 뭐가 있을까? 내가  세계를 누비며 비행했음을 남길  있는 것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다가 마그넷이 떠올랐다. 여행을 가면 길거리 어디에서나 파는, 냉장고에 붙여두는  마그넷 말이다.

'그래, 이번 비행부터 마그넷을 모아보자!'
의욕 없고 체력이 약한 약골 승무원인 나를 움직인  다름 아닌 바로 마그넷이었다. 현지에 도착해서 아무리 피곤해도  나라의,  도시에서만   있는 기념품인 마그넷을 사기 위해서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가곤 했다. 그렇게 하나 , 모으기 시작하자 어느새 마그넷 보드가  찼고 마그넷을 모으다 보니 비행한  6년이 훌쩍 지나있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동기부여는 굉장히 중요하다. 비행 권태기에 빠진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어주고 나를 구해준 것은 자그마한 마그넷  조각이었다.

우리 집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마그넷들을  때마다 예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승무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10년 동안 고생한 나에게 주는 훈장 같기도 하다.

요즘에는 진짜 내가  수십 개의 나라들을 가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옛날처럼 껴지기도 한다. 불과 1  작년 새해에만 해도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에펠탑 마그넷을 샀는데 말이다.

다시 예전처럼 비행 가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마그넷을  이 곧 오겠지? 그날을 대비해서 마그넷 보드를 하나  사두어야 겠다. 훗날  마그넷 보드는 코로나 19 이전의 것과 코로나 19 이후의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언젠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마그넷 보드를 보며   휴식의 시간을 추억으로 그리게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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