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국 24도시 배낭여행의 단상들
런던에 도착한 첫날,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창밖을 바라보았다. 끝없이 펼쳐지는 맑은 하늘 가운데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변함없이 그대로였지만 주변 풍경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을 떠나기 하루 전날의 일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갈 때 적막에 가까운 고요함을 느꼈다. 하늘은 높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유난히 느려 보였던 날이었다. 히스로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비슷한 적막을 느낄 수 있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남아있는 날들이 이어졌다.
한편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문이 닫히기 전에 헐레벌떡 뛰어와 숨을 고르던 소년과 신문을 읽으며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었던 깊은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내 시간을 온전히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친구에게 물었다.
“오늘은 뭐 할까?”
정해진 시간 안에 어딘가로 가야만 한다는 속박으로부터 멀어져서 온전히 우리만의 시간을 보냈다. 언젠가 이 시간이 끝날 거라는 걱정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현재’를 즐기고 충실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서로에게 즐기라는 말만 남긴 채 버스 한 편에 앉아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음악을 들으면서 금방이라도 잠에 빠질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창밖의 풍경은 여유로운 나의 마음과 닮아 보였다.
하루는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끌리는 곳에서 내렸다. 때마침 캠든 타운에 도착했고, 한 오래된 서점에 들어가 빛바랜 책들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빗방울에 옷과 신발이 흠뻑 젖은 적도 있었다. 한 시간가량 비를 맞으면서 연극을 봤던 기억이 난다. 템스강을 따라 걷는 길이 몹시 추웠다.
나는 파리를 싫어했다. 알레르기로 밤마다 뒤척였고, 교통카드에 사진을 붙이지 않아 오만 원 정도의 벌금을 물기도 했다. 무심한 사람들이 미워 보일 때,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을 때면 잔디밭에 누워있다가도 정처 없이 걸어 다녔다.
대체로 홀로 남겨진 시간에는 곧잘 걸어 다녔다. 발길이 닫는 대로 걷다 보면 튈르리 공원에 도착했다. 이곳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물과 새의 울음소리, 왁자지껄한 소리를 뒤로하고 어울리는 음악을 골랐다. 눈을 감고서 바람에 몸을 내어주면 금세 마음의 안정을 얻곤 했다. 무의미하고 아무것도 아닌 그 시간을 좋아했다.
날이 흐린 어느 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여덟 시간가량 이동했다. 나는 대체로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을 좋아했다. 드넓은 초원 위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염소 떼와 그 옆을 지키는 나무 몇 그루에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한동안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도로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나와 풍경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떠올려보았다.
광활하게 펼쳐진 밭과 초원을 가로질러 이어지는 길 끝에 수도원이 있었다. 수도원보다 기억에 남는 건 그곳을 지나치는 길이었다. 너무나 광활하기 때문에 세상에 나 홀로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날이 흐린 탓에 묵직한 구름이 떠다니고 바람은 세차게 불었다.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무서웠지만 구름 사이로 보이는 별을 나침반 삼아서 걷기 시작했다. 걸어가는 내내 여기에서 정신을 잃는다면 바람에 휩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저 멀리 보이는 사이프러스 나무 뒤로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작은 마을에 누가 살고 있을지 상상해보았다.
버스비를 아껴보자며 시골길을 한 시간 반 동안 걸었다. 걷는 동안 “좋아”, “재밌어” 같은 말을 쉴 새 없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두 단어를 말할 때마다 1유로씩 내는 게임을 하면서 걸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너무 많이 말해서 게임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는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순간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막다른 길목에 놓여도 두려워하지 않고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일 것. 그저 발걸음이 닿는 대로. 머리를 흔들고,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고, 춤추고, 바닥에 앉아서 깔깔 웃고, 텅 빈 도로 한가운데에 서보기도 하다가 다시 그렇게 걷기.
파리의 마지막 날은 빈센트 반 고흐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았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향했다. <까마귀 나는 밀밭>을 그렸던 들판으로 가는 길은 광활한 초원의 연속이었다. 근처에는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의 무덤이 나란히 있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봤을 때 받았던 인상을 마음속에 그대로 품어왔다. 우리는 그의 발길이 닿은 마을을 말없이 따라 걸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을을 걸었던 그 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베이스캠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걸어갔다. 사막에 누워서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너무 고요하기 때문에 한마디만 해도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내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땅 위에 오로지 모래 바람 소리만이 들려왔다. 어두컴컴한 사막을 밝은 달빛에 의지하며 걸었다. 발은 모래 사이로 푹 빠졌다. 이윽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있었다. 고개를 뒤로 돌리면 거대하게 보이는 북두칠성이 무서웠다. 밤하늘에 압도될 만큼 별이 많지는 않았지만, 별자리를 또렷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모래 사이에 묻힌 발, 뜨거운 태양과 발자국, 수많은 별 중에 하나, 온 우주를 눈에 담았다. 우리는 우주 아래에 존재하고 있었다.
“누군가 네 앞에서 울면 어떻게 행동해?”
“진심으로 말하거나 듣고만 있어.”
“울음이 터지기 전까지 그 사람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는 거니까.
헤아릴 수도 없고 듣고만 있어야 하니까.
그게 미안해.”
우리가 나눈 대화를 모두 기억하고 싶었다.
길을 잃거나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부터 여행은 시작되었다. 잘못 찾아간 어느 호숫가에서,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몇 시간 동안 걸으면서 마주친 풍경이 좋았다.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고, 춤을 추기도 하고, 뛰어다니면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던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것은 여행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