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 신인시절 패기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해내려는 굳센 정신과 의지가 있었다. 1988년 초 노 전 대통령은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로부터 영입제안을 받았다. 당선되기 수월한 지역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이왕이면 센 놈하고 붙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아무런 연고가 없었지만 부산 동구로 가게 됐다. 전두환씨의 왼팔이었던 허삼수 민주정의당 후보가 나오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곳이었기에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선거기간 내내 새로운 정치를 내세우며 부정과 비리와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특히 ‘사회정의와 민족정기 수립’, ‘재벌 해체와 민주노조 육성’, ‘재벌과 부정 축재자들의 토지 징발 등 주장들은 다소 과격했지만 정치신인의 결기를 보여줬다. 개인적인 정치적 기반은 약했지만 진솔한 연설을 통해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청년들과 민주시민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다. 그 결과 노 전 대통령(51%)은 허 후보(42.27%)를 꺾고 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당시 전국 노사분규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고군분투했고, 이해찬·이상수 의원과 환노위 삼총사로 불렸다. 그러나 참담한 노동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고, 분노와 자괴감이 밀려왔다.
노 전 대통령은 그해 7월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국무위원 여러분, 아직도 경제 발전을 위해서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너네들 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이야. 춥고 배고프고 힘없는 노동자들 말고, 바로 당신들 자식 데려다가 현장에서 죽이면서 이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란 말이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5공 비리 청문회에서 노 전 대통령은 일약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거물급 정치인들도 어려워하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 일해재단의 모금 및 정치적 의미에 대해 따져 물었다. 일해재단은 전두환 정권의 부정축재의 상징으로, 재벌들로부터 강제적으로 자금을 모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 명예회장에게 "시류에 순응한다는 것은 힘 있는 사람이 하는 쪽으로 따라가는 것인가. 그 순응이 부정한 것도 따라가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노 전 대통령은 유찬우 풍산금속 대표를 상대로는 "그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군부에는 5년 동안에 34억5000만원이라는 돈을 널름널름 갖다 주면서 내 공장에서 내 돈 벌어 주려고 일하다가 죽었던 이 노동자에 대해서 4000만원을 주느냐, 8000만원을 주느냐를 가지고 그렇게 싸워야 합니까. 그것이 인도적입니까. 그것이 기업이 할 일입니까. 답변하십시오."라고 추궁했다.
최초로 TV 생중계된 5공 청문회에서는 이른바 ‘명패 투척 사건’으로 유명해졌다. 전두환씨는 5·18 민주화운동이 정당한 자위권 발동이었다고 주장했고, 야당의 질문에 묵비권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이철용 평화민주당의 의원이 "발포 쟁점부터 밝혀. 살인마 전두환."이라고 외치며 달려들어 제지당했다. 그때 노 전 대통령은 "국민의 비난은 누가 책임질 겁니까. 본 의원은 풀리지 않은 의혹이 엄청나게 남아있습니다."라며 명패를 내던졌다.
1989년 초 민주정의당은 청문회 거부를 선언했고, 야당 단독 청문회는 사실상 무의미했다. 노 전 대통령은 무력감을 느끼고 의원직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이제 노태우와 그 일파의 눈에는 국회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온갖 박해를 무릅쓰고 싸우는 대중투쟁이야말로 의정 활동 못지않게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입니다.”라며 모든 것은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많은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이 국회 복귀를 촉구했다. 한 시민들은 “의원님 같은 분이 사표를 내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라고 하소연했다. 결국 같은 당 최형우 의원이 찾아왔고, 사퇴 철회서를 쓰라고 권유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집 앞으로 몰려온 기자들 앞에서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라며 사퇴를 번복했다. 초선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비록 정치적으로 미숙했지만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 정치·경제 권력에 타협하지 않았고, 정의로운 정치인으로 시민들에게 각인됐다.
작금의 대한민국 진보에는 기백이 안 보인다. 총선 때 지역 갈등을 깨겠다며 자진해서 험지로 뛰어든 정치인을 본 적이 있는가. 대의는 없고, 오로지 권력 추구만이 존재한다. 모두가 안정적으로 당선될 수 있는 곳에 목을 맨다. 말로는 노무현 정신을 부르짖지만 행동은 보수 정치인과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언행일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