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은 다름 아닌 소신이었다. 지금의 당 대표보다 권한이 더 막강한 총재 앞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자신의 지지자들 잘못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는 정치인이었다.
1990년 1월12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는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 선언을 한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지만 노태우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구질서와 신질서와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었다. 군부 기반의 노태우 정권은 민주화 세력인 통일민주당과의 통합을 통해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당시 김영삼 총재는 "구국의 차원에서 통일민주당을 해체합니다. 이의 없습니까. 이의가 없으므로 통과됐음"을 선언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이게 회의입니까. 이것이 어찌 회의입니까. 이의가 있으면 반대 토론을 해야 합니다. 토론과 설득이 없는 회의가 어디 있습니까. 토론과 설득이 없는 회의도 있습니까."라고 외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을 밀실야합이라고 규정하고 민주자유당에 합류하지 않았다. 대신 통일민주당 잔류세력들과 함께 민주당을 창당했다. 고작 8명밖에 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꼬마 민주당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국민들의 야당 통합을 요구가 거세졌고 결국 1991년 9월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와 손을 잡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은 1992년 민주당 후보로부산 동구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재선에 실패했다. 1995년에는 부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36.7%의 득표율로 문정수 민주자유당 후보에 패배했다. 3당 합당 이후 보수 세력의 결집력이 발휘됐고, 고착화된 지역주의를 넘어서기는 어려웠다.
1995년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 총재가 복귀했다. 이때 새정치국민의회가 창당되면서 민주당 의원들의 탈당 러시가 이어졌다. 민주당은 제2야당이 됐고, 개혁신당과 통합해 통합민주당을 만들었다. 1995년 노 전 대통령은 부산시장 후보로 다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으나 이명박 신한국당 후보, 이종찬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에 밀려 3위를 기록했다.
노 전 대통령은 국민통합추진회의를 결성해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15대 대선을 앞두고 내부에서 균열이 생겼다. 조순 통합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신한국당과 합당 결정을 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정권교체를 이뤄내야 한다며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 김대중 총재는 "오늘은 매우 기쁜 날입니다. 단순히 여러분과 다시 일하게 된 데 대한 기쁨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여러분에게 지고 있었던 마음의 짐을 풀었다는 것이 가장 기쁩니다."라고 화답했다. 그 해 김대중 총재는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1998년 2월 이명박 한나라당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할 위기에 놓이자 서울특별시장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노 전 대통령은 7월21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종로구에 나가 정인봉 한나라당 후보를 꺾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지역구도는 여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도망친 듯한 느낌이 들어 속앓이를 했다.
2000년 4월 16대 총선을 앞두고 부산 출마를 결정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역 분열을 더 부추겨서는 안 됩니다. 동서 통합을 위해서 부산 경남지역으로 갑니다.”라고 선언했다. 개인적 이익이 아닌 정치적 대의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세상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그렇게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나갔으나 끝내 낙선했다. 노 전 대통령은 선거 패배 후 낙선 인사를 통해 “많은 분들이 왜 부산으로 왔느냐고 묻습니다. 저의 낙선을 보고 이번 도전이 비현실적이고 무모한 짓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위험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도전하지도 않는 사람이 세상을 변하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부산 시민들을 향한 일방적인 비난에도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가 어디 부산만의 문제인가요. 우리 누구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특히 호남에서 부산을 욕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지금도 과거의 행적을 모두 덮어두고 김대중 대통령 옆에 서기만 하면 무조건 지지하고 만세를 부르는 일은 없습니까. 서로 처지를 바꾸어 한 발씩 물러서서 생각합시다.”라고 호소했다.
노 전 대통령은 비록 선거에서 졌지만 바보’라는 별명을 얻게 됐고, 젊은 지지층들을 중심으로 노사모가 결성됐다. 이는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이 급격히 성장하던 시기에 한국 정치 문화를 완전히 바꿔 놨다.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온라인상에서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철학과 비전을 알렸다. 노사모는 2002년 대선 승리의 밀알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를 꾸짖었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당 대표를 찬양하는데 힘을 쏟고, 지지자들은 비판 세력에게 집단린치를 가한다. 당의 주류 세력과 생각이 다르면 적(敵)에 불과하다. 양심 있는 사람들조차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감는다. 노무현 정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제라도 되살려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