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리더십은 신뢰에 기반한다. 기본적으로 권력과 책임을 적절히 위임하면 자율성이 발휘된다고 믿었다. 해양수산부 장관으로서 8개월여의 재임기간은 대화와 타협, 탈권위주의, 신뢰와 책임 등 민주적 리더십이 돋보인 시기였다. 이는 권위적 지도자가 통제와 감시를 하고,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는 상반된다.
노 전 대통령은 2000년 8월 해양수산부 장관에 임명됐다.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석 달 뒤 국민의정부에 입각하게 된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인정받고 있었고, 행정안전부·노동부·통일부 장관 하마평에 올랐다. 그러나 해양수산부로 가게 됐고, 부산·경남 지역의 최대 관심 부처이게에 일종의 배려였다는 얘기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많은 일을 하고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러분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해양수산부는 현재보다 미래가 있는 부처입니다. 우리 어깨 위에 한국경제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감히 다시 한번 저와 함께 노력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매는 제가 맞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쏟아지는 매는 제가 맞겠습니다. 일하십시오. 자신 있게 일하십시오. 일을 추진하다 생긴 실수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으면 그 모든 책임은 여러분이 져야 할 것입니다. 진실을 이야기하십시오. 반대의견이 있으면 직을 걸고 반대하십시오. 현장에 가서 보고 판단하십시오. 이제부터 여러분과 저는 한 팀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장관실에 앉아 실·국장으로부터 의례적인 업무보고를 받지 않았다. 담당 사무관들을 직접 만나 의견을 공유하고 업무를 파악했다. 모든 직원들과 같이 이메일로 대화를 하고 수평적으로 토론했다. 자율성을 갖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일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갔고, 장관과 생각이 달라도 담당자의 의견이 확고하면 존중해 줬다.
노 전 대통령은 일방적 지시가 아닌 대화와 토론으로 대안을 마련해 나갔다. 중국산 냉동 납꽃게 사건 당시 담당자 문책과 재발 방지 대책 요구가 빗발쳤다. 지금껏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었기에 단순 징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시스템을 바꾸고 구축해 나갈지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수입수산물 전량검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일단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모든 부처 직원들이 총동원돼 중국산 꽃게 전량을 검사했다. 그다음 중국과 수산물 검사협정을 맺어 사전 예방 검사시스템을 만들었다.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장관에 대한 특별 대접과 의전은 전부 없앴다. 장관 출근시간에 맞춰서 현관에 수위장과 비서진이 대기하다가 관용차가 도착하면 거수경례를 하는 악습을 중단시켰다. 지방 출장에서 지역공관장이 좋은 차를 빌려 장관을 맞이하던 관행도 금지했다. 자기를 스스로 낮추면 권위를 얻는다는 생각이 그대로 적용된 순간이었다.
윗사람이 모든 책임을 지고 일을 진행했다. 취임하자마자 부산 신항만 민자개발 사업시행자와 적정 수익률 보장을 위한 지원금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은 수익률 2% 보장이었는데, 여기에 0.3%를 더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공무원들은 스스로 규정을 어길 수 없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본인이 책임지겠다며 협상을 마무리시켰다. 사업이 더 지연될 경우 큰 손실이 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관 시절 쌓은 개혁적 리더십과 행정 경험은 더 큰 정치적 도약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세계적으로 권위주의가 다시 득세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진보진영조차 보수정당을 압도할 강력한 리더십을 원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정당 내에서 대화와 타협은 없다. 다수의견을 무조건적으로 밀어붙이고, 소수의견을 완전히 묵살한다. ‘강한 리더십=권위적 지도자’라는 착각에 빠져버렸다. 진보라면 마땅히 민주적 지도자를 지지해야 함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