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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춘한 Nov 26. 2023

현실주의

우리는 세계 각국들의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단순한 국제행사나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명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본질이 다르게 보이고 원인, 진단, 대응이 달라질 수 있다. 정치학에서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은 현실주의, 이상주의, 사회구성주의, 마르크주의, 종속이론 등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현실주의는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 또는 국제적 무정부상태라는 관점에서 국제정치를 분석한다. 현실주의의 핵심 개념은 국가, 생존, 자립이다. 국가는 세계정치의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행위자이며, 주권국가보다 권위 있는 존재는 없다. 이 때문에 세계정치는 무정부상태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서 모든 국가의 목표는 생존 및 자국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며, 타협의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다. 이러한 국제관계에서는 힘의 논리가 작용하고, 국가들은 권력투쟁 관계에 놓여있다. 결국 국가의 안정보장은 오로지 자립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군사력을 키우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공존은 상대적 이익을 얻기 위한 힘에 의한 균형, 동맹 등 세력균형 상태에서만 존재한다.      


고전현실주의는 권력과 지배욕이라는 인간본성에 집중해 국제정치를 해석한다.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언급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대표적이다. 기원전 5세기 당시 패권국이었던 스파르타는 신흥패권국으로 아테네가 부상하자 전쟁을 감행한다. 이는 기존 강대국은 자신의 패권이 흔들리면 두려움을 느끼므로, 사실상 신흥 강대국과의 무력충돌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마키아벨리는 성악설을 기반으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인들은 불가피한 투쟁에 직면하고, 잔인하고 교활한 방식을 통해 통치한다. 국제정치에서 국가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고, 윤리적·도덕적 문제는 배제돼도 상관없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국제관계 역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인식하고, 국가 간의 전쟁과 폭력은 항상 잠재적으로 존재한다고 봤다. 미국의 정치학자 한스 모르겐타우는 '국제정치는 다른 모든 정치와 마찬가지로 권력을 위한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정치인들이 권력을 추구하듯, 국가 역시 권력의 극대화를 원한다. 국가 간의 권력투쟁은 멈출 수 없다고 보고 철저한 현실주의 정책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 같은 전략은 당시 제2차 세계대전, 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구조현실주의와 신현실주의는 국제정치의 본질은 권력투쟁이라는 측면에서는 고전현실주의와 관점이 동일하다. 그러나 이들은 국가 간의 갈등 원인을 인간의 본성으로 규정짓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신 국가 이상의 권위의 부재와 권력분배에 초점을 맞춘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국가사이의 불안을 야기하는 것은 인간이 본성이 아니라 무정부적인 체제라고 진단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케네스 월츠는 방어적 현실주의자로 불린다. 1979년 ‘국제정치이론’에서 각국은 무정부상태에서 생존을 위해 자립을 추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가장 안정적인 질서는 두 개의 강대국만 존재하는 양극체제라고 봤다. 미국의 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는 공격적 현실주의자로 일컬어진다. 2001년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에서 국가는 안전을 최우선시하며 전략적 행동을 취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스스로의 안전을 보장받는 최선의 전략은 힘을 최대한 극대화하는 것이다. 신고전현실주의는 기존 구조현실주의 이론들이 국가들의 모든 선택을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냉전의 종식 이후 국제정치는 국가 지도자들의 개인 인식, 국가 내 변수 등 더 많은 추가적 요소들이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미국·중국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일련의 사태들을 비춰볼 때 현실주의는 매우 타당하고 합리적은 분석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사상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틀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주의에는 주권국가만을 국제관계의 행위자로 보지만 국제기구, 비정부 기구, 이익단체 등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가의 목표는 안전보장 외에도 경제·문화 성장 등으로 다양해졌다. 국가의 힘은 군사력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가치, 문화, 외교정책 등이 관여하고 각국 간 협력과 교류도 활발하다. 이러한 요소들을 현실주의는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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