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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춘한 Nov 27. 2023

이상주의

이상주의는 현실주의에 맞선 가장 강력한 대안 이론이다. 자유주의적 전통에 기초하며,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이들은 국제관계에서 주권국가를 핵심 행위자로 인식하나 유일한 행위자는 아니라고 여기고, 각국들이 일정한 협력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국가 전략의 실패는 다른 국가들이 협력하지 않고 기만행위가 이뤄질 때 발생한다. 하지만 경제적 교류와 평화 구축에 의한 더 이익이 크기 때문에 국제기구·제도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동참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19세기 자유무역주의자들은 국가 간 갈등의 요인을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봤다. 이들은 개인적 자유, 자유무역, 상호의존이 강화돼야 국제적인 이익이 크게 창출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국제 무역이 활성화될수록 국가들이 막대한 수혜를 누리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달성된다고 확신했다. 이처럼 이상주의는 국제관계에서 경제성장, 수출입 등 국가 내부의 속성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국내정치의 관점을 국제정치까지 확장한 개념이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영구평화론을 주창했다. 칸트는 전쟁이 없는 영구평화를 추구했고, 가상의 평화조약안을 제시했다. 제1조는 모든 국가의 시민헌법은 공화주의적이어야 한다, 제2조는 국가의 권리는 자유국가의 연방에 기반을 둬야 한다, 제3조는 세계주의적 권리는 보편적인 호의의 조건에 제한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비밀 조약 금지, 다른 국가와의 강제적 통합 금지, 상비군 점진적 폐지, 전쟁을 위한 국채 발행 금지, 내정 간섭 금지, 적대 행위의 금지 등이 포함됐다. 이러한 구상은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이 설립되는데 이념적 기초가 됐다. 20세기 후반 미국의 정치학자 마이클 도일은 칸트의 이론을 민주평화론으로 발전시켰다.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으로 세계 평화 체제 구축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와 비민주주의 국가사이의 관계가 설명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국제정치의 비민주성과 세력균형이 전쟁이 원인이 된다고 봤다. 윌슨은 집단안보와 각국의 자결을 내세웠다. 집단안보는 한 나라에 대한 침략을 구성원 모두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하고 집단적으로 대응하는 체제이다. 단순한 아이디어 수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 국제적인 규범으로까지 발전했다. 윌슨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협상에 노력했다. 결국 ‘전쟁을 끝내게 하는 전쟁’이라는 슬로건으로 참전하게 됐지만 1918년에는 민족자결주의, 비밀외교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14개조평화원칙을 발표했다. 1920년에는 비로소 국제연맹이 설립됐지만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사실상 국제연맹의 실패로 이상주의 이론은 힘을 잃었지만 강대국들이 또 다른 국제제도의 필요성을 공유하면서 1945년 국제연합이 탄생했다. 그 이후 이상주의자들은 다원주의를 기반으로 국제기구·제도를 강조했다. 다원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으로 초국적 기업, 비정부기구의 출현이 바꾼 풍경이다. 자유무역과 지역통합 등 높아진 상호의존 역시  한몫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는 합리적 행위자로, 이익을 최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한다고 정의한다. 이러한 가정하에 국제제도는 국가의 효용과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협력적 상황에 놓이게 함으로써 평화 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한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 등장하면서 확립된 현재의 국제질서는 다시 한번 도전받고 있다. 미국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세계경찰로서의 지위와 능력이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존 아이켄베리는 ‘미국의 패권이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를 지탱하는 적합한 틀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중국이라는 신흥 강대국은 부상하고 있고, 선진국들은 주권평등의 원칙 아래 더 많은 권한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쇠락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냉전체제처럼 강대국들의 경합이 다시 벌어질 경우 세계는 다시 전쟁상태에 놓일 수 있다. 종전과 마찬가지로 국제기구는 갈등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고,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가 조만간 새로운 전쟁 또는 세계질서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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