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병동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민음사) ●●●●●●●●○○
그 소박한 세계가 올레크에게는 정말로 소중했다.
왜냐하면 그곳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영원히 자신의 것이지만
지금 이곳은 일시적으로 빌린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봄날 밤 울어대던 그 나귀들처럼 그의 몸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용솟음치는 순간 올레크는 나무와 사람들과 갖가지 색과 석조 건물로 가득 찬 병원 구내의 오솔길을 오가며 우세테레크의 소박하고 절제된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보는 것이었다. 그 소박한 세계가 올레크에게는 정말로 소중했다. 왜냐하면 그곳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영원히 자신의 것이지만 지금 이곳은 일시적으로 빌린 세계였기 때문이다.
- 1권, p. 449.
. 1953년부터 1964년까지, 소련에는 '해빙기'라는 기간이 있었다. 독재자 스탈린이 죽고 베리야를 비롯한 그의 수족들이 숙청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유형에서 돌아오고 사면복권되었다. 비록 흐루시초프가 실각되기 전까지 10년이 조금 넘는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았고 그 기간에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처럼 고난을 당하는 작가들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아예 작품을 내놓을 수조차 없었던 해빙 전후와 비교해본다면 이 짧은 기간은 러시아 문학에 있어 매우 소중한 지점이다. 그리고 이 기간에 활동했던 작가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다.
. 도스토예프스키가 자신의 유형지 경험을 소설로 녹여냈던 것처럼 솔제니친 역시도 자신의 책에서 쓴 것처럼 2차대전에 참전해 공을 세웠고, 그럼에도 스탈린의 엄혹한 전후 숙청기에 교도소와 강제수용소에 구금되었으며, 카자흐스탄에서 유형생활을 하고, 그러던 중 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기도 했다. 결국 이 책의 올레크 코스트골로토프는 작가의 분신인 셈인데, 그래서 이 책에는 "아흔아홉 사람이 울고, 한 사람이 웃는 곳" 같은 의미심장한 문구나 병원에서 나와 노점에서 꼬치구이의 냄새를 맡는 장면처럼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장면들이 나온다.
어쨌든 한 꼬치는 이제 올레크의 것이다! 올레크는 먼지가 풀썩이는 땅바닥에 배낭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알루미늄 꼬챙이를 잡고 고깃덩어리 개수를 세어보았다. 모두 다섯 개가 끼워져 있었고, 여섯 번째는 절반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는 꼬챙이에서 고기 덩어리를 단번에 빼서 먹지 않고 마치 개가 자기 몫을 안전한 구석으로 물고 가서 먹듯 천천히 조금씩 물어 뜯으며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중략) 벌써 꼬치를 먹어치운 운전자들이 차를 몰고 가 버린 후에도 올레크는 여전히 꼬치를 조금씩 뜯어 먹고 있었다. 그는 연한 고기의 육즙 맛은 어떤지, 냄새는 어떤지, 적당히 잘 익었는지를 살피고, 동시에 작은 고깃덩어리들 속에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동물의 원초적 힘을 입술과 혀로 음미했다. 이상하게 샤슬릭을 더 깊이 음미할수록 조야를 향해 열려 있던 문이 냉정하게 닫혀 가는 것을 느꼈다. 지금 전차를 타고 바로 그녀의 집 옆을 지나쳐 간다 해도 내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샤슬릭 한 꼬치를 먹는 동안 그 경계선이 더욱 확고해진 것이다.
- 2권, p. 328.
.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는 계급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들 - 스탈린의 독재에 일조한 루사노프나 그 독재에 비굴하게 동조했던 슬루빈 같은 - 사이에, 주인공과 몇몇 소년들처럼 유독 생생하게 묘사된 인물들이 있다. 흔히 정치성을 가지고 쓰여진 소설들에선 인물들이 하나같이 작가의 꼭두각시가 되어 움직이는 경우가 많고 그 모습이 어쩔 수 없이 눈에 거슬리게 되는데, 이 작품에는 작가가 실제 그 시절을 경험하면서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이 그대로 담겨져 있어 이런 이야기가 으레 가지고 있는 평면적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대학은 어떻게 할 거야?"
"노력해 봐야죠."
"어문학부?"
"네."
"이것 봐! 진지하게 충고하는데, 그건 파멸의 길이야. 라디오 수리하는 법이라도 배워두어야 안정되게 살고 돈도 벌 수 있어."
- 2권, p 168. 좀 많이 웃었다.
. 그런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잡설처럼 느껴지거나, 이야기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런 부분들로 인해 이 작품이 평면적인 정치소설을 넘어 삶과 생명력을 다룬 이야기로 느껴졌다. 실제로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남은 건 책 속의 논쟁이나 시대 풍자가 아니라 꼬치구이 앞에 선 주인공의 모습이었고, 밤 산책을 하면서 유형지 마을을 고향처럼 느끼고 그리워하는 묘사한 부분들이었고, 그렇게 생생하게 그려진 올레크의 삶에 몇십년의 시간차를 넘어 공감하게 되는 체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
그는 계단으로 나가 걸음을 멈추고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셨다. 아직 바람에 흩어지거나 더럽혀지지 않은 아주 신선한 공기였다! 눈앞에는 연초록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에 해가 막 떠올라 하늘이 장밋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더 높이 들어 올렸다. 오랜 세월 동안 사용한 물렛가락 같은 새털구름이 온 하늘에 펼쳐져 있었다. 그 순간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 몇 사람만을 위해, 아니, 이 도시에서는 오직 올레크만을 위해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구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