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레이먼드 챈들러, 죽음과의 약속 등
<추리소설>
1. 벙어리 목격자 - 애거서 크리스티(해문), ●●●●●○○○○○
- 범행이 끝나고 몇 달이나 지난 상황에서 뒤늦게 포와로가 등장해 오직 심리분석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게
요즘 읽기에는 좀 심심하고 석연찮긴 하지만, 이 때 연습(?)했던 인간관찰과 심리분석은 크리스티 여사의
중후반기 작품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고, 결국 그 끝에서 '복수의 여신' 같은 걸작이 탄생하게 된다.
2. 죽음과의 약속 - 애거서 크리스티(해문), ●●●●●●●○○○
- "너도 알지, 그렇지? 그녀는 죽어야 해." 그 목소리가 고요한 밤 공기 속으로 흘러들어가서, 잠시 거기에서
흔들리는 것 같더니 사해를 향해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여사님의 소설 중 단연 가장 매력적인 첫머리로 시작하는 소설. :)
3. 크리스마스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해문), ●●●●●○○○○○
- 사실 추리의 비중은 그닥 크지 않고, 읽고 나면 누구든 범인일 수 있고 트릭이라 할만한 것도 마땅찮아서
결국 남는 건 포와로의 심리분석 뿐. 그래서 추리소설이 아닌, 한 가족의 음습한 분위기와 구성원 각자의
어둠을 부각시킨 서스펜스극으로 읽을 때 훨씬 더 훌륭하게 느껴진다.
4. 리가타 미스테리 - 애거서 크리스티(해문), ●●●●●◐○○○○
- 원래 여러 단편집에 나눠져 있던 단편들을 짜깁기해서 낸 단편집이다보니 추리와 심령술과 공포가
한데묶인 두서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서재의 시체'와 '예고살인' 사이에 한동안 비어 있는
마플양의 활약상을 읽을 수 있다는 데에 의의를 둬야 할 듯. 이 단편집의 마플 양은 매우 귀여우시니까. :)
5. 위치우드 살인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해문), ●●●●○○○○○○
- 일반인들이 시골에서 발생한 사건을 해결하고 덤으로 로맨스가 추가되는 건 '왜 에반스에게 연락 안했지'와
비슷한데, 하필 재미가 없는 것까지도 비슷하다(....) 로맨스는 그나마 낫지만 추리 쪽은 그야말로 허겁지겁.
거기다 해문 판은 표지까지도 경악스러운 수준이라, 이래저래 뭐라 말을 해주기가 힘들다(....)
6.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해문), ●●●●●●●●●●
- 읽는 사람의 감정을 모조리 쥐어짜내는, 애거서 크리스티 최고의 걸작.
트릭도 트릭이지만 무엇보다도 세세한 감정선을 통해 읽는 이를 조금씩 조여가는 서스펜스는 극상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과거의 명작들도, 지금 읽어도 재미있다는 평도 뛰어넘어, 여전히 최고자리를 다투고 있다.
7.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부 1권 - 미카미 엔(D&C미디어), ●●●●●◐○○○○
- 후속작에 대한 심드렁한 반응 덕분(?)인지 드디어 나온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부.
1부에서 6년여 정도가 지나 도비라코라는 딸이 탄생한 후에도 여전히 고서당과 책탐정을 병행하는 이야기.
일단은 큰 무리 없이 1부 인물들의 후일담을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는데, 2권은 과연 어떨지.
8. 의혹 - 도로시 세이어스(동서문화사), ●●●●●●○○○○
- 잘 만들어진 하나의 단편과 피터 윔지 경이 활약하는 나머지 단편들로 구성된 단편집.
피터 윔지 경이 나오는 단편들이 고전으로서 참고할 만한 이야기라면, 표제작인 '의혹'은 지금 읽어도
스물스물 깔려오는 찜찜함이 인상적이다. 약한 위장장애가 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더욱 실감나지 않을까. :)
9. 삼나무 관 - 애거서 크리스티(해문), ●●●●●○○○○○
- 법정물과 추리소설을 적당히 섞은 이 이야기는, 결국 읽고 나면 한 편의 멋진 로맨스 동화라는 걸 알게 된다.
곤경에 빠진 아름답고 선량한 여주인공과 그녀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는 평범하지만 선량한 남주인공,
그리고 그들을 곤경에서 구해주고 사랑을 이뤄주는 멋진 '추리' 마법사 포와로까지. :)
10. 애국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해문), ●●●◐○○○○○○
- 치과 앞에서는 명탐정 포와로 역시도 허세를 부릴 수 없다는 뜻깊은 교훈(?)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진료실에서 벌어진 한 치과의사의 죽음, 이어진 환자의 죽음과 얼굴이 손상된 여인의 시체. 그렇게
환자들 속에 있는 범인을 찾는 내용인데, 포와로가 등장하는 정통추리물인데 왜 이리 재미가 없을까(....)
11. 레이먼드 챈들러 - 레이먼드 챈들러(현대문학), ●●●●●●●◐○○
- 필립 말로를 등장시키기 전 챈들러가 썼던 단편들. 실제 '밀고자'나 '붉은 바람' 같은 단편들은 이름이 뭐든
어떻게 보든 간에 필립 말로가 나오는 단편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진주는 애물단지' 같은 단편에는
아예 '안녕 내 사랑'의 장면이 그대로 나오기도 해서 필립 말로 전집을 읽었다면 웃으며 읽어낼 수 있을 듯.
12.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하라 료(비채), ●●●●●●●○○○
- 고유명사 몇 개를 바꾸고 배경을 좀 수정해야겠지만, 블루버드를 몰고 위스키를 마시며 바둑의 포석(!!)을
연구하는 사립탐정이라니, 어떻게 보면 이쪽이 챈들러보다도 더 챈들러스럽다. 그럼에도 정통 하드보일드가
느껴지는 문장이나, 자극적이거나 총과 피에 의존하지 않는 내용이 마음에 들어 후속작을 기다리게 된다.
<추리잡지>
1. 미스테리아 3호 - '쓰레기를 비싼 값에 사다', 곽재식 외
- 스파이 소설의 부활을 이야기하기엔 이미 스파이라는 개념 자체가 과거의 것이라는 제약을 넘기는 어렵지만,
존 르 카레의 소설을 역사가 아닌 현실로서 읽을 수 있던 시대에 대한 아쉬움과 애정에는 이해가 갔다.
함께 실려있던 곽재식의 '쓰레기를 비싼 값에 사다', 강력 추천. :)
2. 미스테리아 4호 - 추모들, 'P. D. 제임스, 루스 렌들, 헤닝 만켈'
- 루스 렌들은 미스테리아를 통해, 그것도 그녀가 죽고 난 후 몇 년이 지나서야 겨우 접할 수 있었던 작가였다.
그녀의 책 중에 읽은 건 '활자잔혹극' 하나 뿐이지만, 그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생전에 더 많은 작품들을
접하지 못했던 게 아쉬울 뿐이다. 모쪼록 편히 잠드시기를.
3. 미스테리아 5호 - 'Food to Die for' 외
- 일제강점기 시대의 만주를 무대로 하는 새로운 미스테리의 가능성과 1960년대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하는
끔찍하고 비참한 사건들, 완전범죄를 완성해놓고도 과시욕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이기지 못해 자신이 벌인
범죄를 소설로 써서 덜미를 잡힌 작가까지. 이번 미스테리아는 픽션보다 논픽션이 더 흥미진진했다.
4. 미스테리아 6호 - 에드거 앨런 포가 도전했다 결국 물러선 '메리 로저스 사망 사건' 외
- 코넬 울리치와 휴 펜테코스트의 아기자기한 단편들이 마음에 들었고,
영국신사 느낌을 내기 위해 힘을 한껏 줬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 등장하는 정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소한 기사도 괜찮았다. 오히려 메인 특집기사가 애매하게 느껴지고 작은 꼭지들이 재미있게 느껴졌던 호.
5. 미스테리아 7호 - 이사카 코타로, '하마다 청년 정말임꽈' 외
- 어느 새 창간 1년을 맞아 '세계일주'라는 테마로 미스테리 리뷰를 통해 세계를 한바퀴 훑어낸 특집.
특히 지상낙원으로만 여겨지는 북유럽을 헤닝 만켈과 페터 회의 소설로 읽어낸 리뷰나, 남아메리카의 역사적
어둠과 신비함을 다룬 리뷰도 좋았다. 심지어 체념하고 있던 이사카 코타로의 단편조차도 재미있었다. :)
6. 미스테리아 8호 - 요네자와 호노부 특집 외
-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차고 넘쳤던 8호. 요네자와 호노부 인터뷰와 기사에다 당시에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던
고전부 단편 선공개까지 읽을 거리가 풍성했고, 여기에 안정적으로 뒤를 받쳐주는 곽재식 작가 르포와 이경미
감독의 인터뷰까지. 이제는 미스테리아가 안정적으로 롱런할 수 있겠구나 싶은 느낌이 들었다.
7. 미스테리아 9호 - 금융위기 이후 취업난과 경제불황 속에서의 범죄소설 외
- 직전의 특집호에 비해선 많이 얇아지긴 했지만,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던 9호.
경제불황과 금융위기, 그로 인한 취업난과 생활고를 미스테리로 풀어낸 소설들에 대한 글은 곱씹어둘만하다.
특히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액스'는 반드시, 필히 독서목록의 첫 머리에 올려두어야 할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