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한 생활상과 더없이 페어한 정통추리의 조합

서재의 시체 - 애거서 크리스티(해문)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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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총경의 방 한구석에는 어떤 늙은 부인이 앉아 있었다.
소녀들은 대부분 그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가령 알아차렸다해도 누굴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기만 했을 것이다.



9시부터 9시 반까지는 근처의 사람들에게 아침 인사 전화를 거는 시간이었다. 그날의 계획이나 초대, 그 밖의 용건도 그 시간에 연락한다. 정육점에서 고기가 떨어져서 배달을 못할 경우에는 9시 조금 전에 전화를 걸기로 되어 있었다. 가끔 낮에도 전화가 오기는 하지만, 어쨌든 마을 사람들은 밤 9시 이후에 전화를 거는 것을 실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p. 17.



. 포와로의 화려한 30년대가 끝나자, 크리스티 여사는 본격적으로 다른 탐정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속속 선보이기 시작했다. 12년 만에 토미와 터펜스가 등장하는 'N 또는 M', 드디어 배틀 총경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0시를 향하여', 그리고 '목사관 살인사건'과 '화요일 클럽의 살인'에 이어 다시 한 번 마플 양이 활약하는 이 '서재의 시체'가 1940년대에 나온 작품들이다. 그 중에서도 미스 마플은 194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꾸준한 활약을 이어나가면서 포와로와 함께 애거서 크리스티하면 떠오르는 탐정으로 기억되게 된다.


. 화요일 클럽의 살인에서 처음 등장해 마플 양 평생의 절친(20년 후의 '깨어진 거울'에도 등장한다)으로 나오는 "유쾌한 돌리", 벤트리 부인의 집 서재에서 벌거벗은 화려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언제나 그랬듯, 지역 경찰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가운데 - 목사관 살인사건에 나왔던 멜쳇과 슬랙 콤비니 당연하다 - 화요일 클럽의 살인에서 처음 나왔던 전직 경시총감인 멋진 노신사 헨리 클리더링 경이 마플 양을 찾아오고, 때마침 친구인 벤트리 부부를 위해 사건에 뛰어든 마플 양에게 힘을 실어준다. 그러던 중 채석장에 버려진 불타는 차에서 완전히 타버린 채 발견된 여학생의 시체가 발견되고 또 다른 가족이 사건에 얽히면서 이야기는 복잡해지는데.... 그래도 역시 마플 양. 여느 때처럼 용의자들에게서 세인트 메어리 미드 마을의 이 사람 저 사람을 떠올리며 깔끔하게 사건 해결. :)


. 마플 양이 나오는 추리소설들은 훈훈한 일상묘사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말랑말랑하게 느껴지는데, 실제로 읽어보면 상당히 정통적인 추리소설이라는 걸 알게 된다. 뜬금없는 곳에서 발견된 시체, 완전히 타버린 또다른 시체를 놓고 전개되는 사건은 전혀 모호하거나 반칙이라 할만한 부분이 없어 독자와 작가의 두뇌싸움이 이뤄지기 딱 좋다. 사실 정통추리를 표방한다는 대부분의 책들을 읽어보면 중요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누락시키는 경우가 많아서 정작 결말을 보면 이게 진짜 공정한가 싶은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만큼은 정말 어떤 여지도 없이 범인은 이 사람일 수밖에 없었고 모든 힌트가 공정하게 제시되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책만큼은 꼼꼼하게 읽어가면서, 범인을 '추측'하는 게 아니라, '추리'해보길 강력하게 권한다. :)



거짓말을 하는 소녀는 보통 방을 나서면서 휴우하며 안도의 한숨을 밖으로 내쉬거든요. 우리 집의 자넷이라는 하녀가 그랬어요. 가령 쥐가 케이크의 끝을 잘라먹었다고 너무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 뒤 방을 나가는 순간에는 히죽히죽 웃는 겁니다.

- p.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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