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전의 추리소설에서 어제 본 로맨틱코미디를 읽다

움직이는 손가락 - 애거서 크리스티(해문) ●●●●●●●○○○

by 눈시울


손님인 마플 양은 당연히 그 문제로 인해 짜릿한 전율을 느꼈던 것 같다.
때문에 그녀는 변명하듯이 말했다.

"시골에서 그러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거든요!"



나는 커다란 전시실 안으로 들어갔다. 메건은 큰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있었다. 정말 나는 거의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께 밝혀야겠다! 잠시동안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 하늘거리는 버들가지처럼 날씬하게 뻗은 종아리와 발은 고운 실크 스타킹과 적당한 높이의 구두 때문에 더욱 돋보였다. 그렇다. 아름다운 팔다리와 아담한 체구 - 그녀의 날씬한 몸매가 이루는 곡선은 모두가 독특한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었다. 머리는 잘 어울리도록 산뜻하게 손질되어 있었고, 마치 윤기가 흐르는 밤처럼 아름다운 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얼굴만은 꾸미지 않고 그대로 남겨둘 줄 아는 뛰어난 감각이 있었다. 그녀는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거나, 화장을 했더라도 아주 엷게 했는지 조금도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은 립스틱을 바를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그녀에게는 내가 전에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참신하고 순수한 자신감이 그녀의 고운 목선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살짝 수줍은 듯한 미소를 띠고는 나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 p. 223.




. 80년 전의, 그것도 추리소설에서 로맨틱 코미디에 단골로 나오는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


. 작품활동의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초창기에 자주 사용했던 기계적 트릭이나 과학수사, 시간표와 장소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더라도, 그게 어떤 장르든 탐정이 어떤 시점에 등장하든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순서대로 읽지 않으면 포와로가 활약하는 화려한 30년대에 비해 이 시절에 쓰여진 소설들은 좀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이나 '목사관 살인사건', '나일강의 죽음', '오리엔트 특급살인'처럼 정교한 트릭과 추리가 등장하는 작품을 읽고 이 시절의 소설들을 읽으면 이 시절의 크리스티 여사는 일종의 '경지'에 도달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 이 소설만 해도 시골생활과 관련된 온갖 해프닝과 소문들이 책을 꽉꽉 메우고 있으며, 마플 양은 이야기의 맨 마지막에나 등장하고, 주인공은 결말에 다다르기 직전까지도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사랑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로코물을 보는 것처럼 주인공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부족함 없는 한 편의 추리소설이 완성되어 있다. 일상에서 작은 것 딱 하나씩만 비틀어서 만들어 낸 힌트와 트릭이기에 골머리 썩을 일도 없고, 로맨스를 한껏 즐기면서 추리도 맛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엔 내내 즐거울 수 있었다.



. 역시 이 소설을 영상화한다면 촌티나는 시골 꺽다리 처녀였던 메건이 신데렐라로 변신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장면일텐데, 00년대 초반에 제랄드 맥이완 여사께서(편히 쉬시길) 주연한 '마플' 드라마에서는 탈룰라 라일리라는 배우가 메건 역을 맡아 괜찮은 변신을 보여주었다. 투박한 듯 하지만 큼지막한 이목구비가 역할과 딱 맞아 떨어져서. :)





<위가 원래의 메건, 아래가 본문의 변신을 마친 메건의 모습인데,

사실 패알못인 남자가 보기엔 다 예쁘다(....)

오히려 앞의 사진이 머리가 길고 수수한 느낌이라 더 귀엽게 느껴지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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