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어디에 - 요네자와 호노부(문학동네) ●●●●●●○○○○
현대에 갈라진 틈이 생기면 중세는 언제든 밖으로 흘러나올 것이다.
. 지금은 거의 없지만 인터넷 초창기에는 '현피'라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인터넷 상에서 싸우던 사람들이 상호동의하에(-_-) 실제로 만나서 싸우는 일인데, 쪽지나 메일로 주고받으면 그냥 둘이서만 싸우고 말테니 기사거리가 될 것도 없는 일이 공개된 게시판을 통하다보니 게시판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알게 되고, 사람이라는 게 불구경 싸움구경에는 만사제쳐두고 달려가는 슬프고 한심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보니 으레 그렇듯 약속장소는 구경꾼들로 가득 메워지고 아 내가 왜 그랬지(....) 하며 쭈뼛거리는 두 사람이 어설픈 생쑈를 벌이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도 몇 번 그런 일이 생기다보니 이게 제대로 민망한 일이라는 걸 만인이 알게 되어 요새는 거의 사장되어버렸지만.
. 그렇게 없어진걸로만 끝났으면 참 좋았을텐데, 문제는 이게 더 음습한 방법으로 바뀌고 말았다는 것이다. '자신은 여전히 뒤에 숨은 채' 상대의 아이디나 아이피, 혹은 상대가 남긴 흔적을 바탕으로 상대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찾아내서 그걸 공개하는 일명 '신상털기'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이쯤되면 차라리 현피가 정정당당해보인다고 해야할까. 더 무서운 건, 이런 행위가 이제는 아예 '사회정의'나 '고발'이라는 이름을 달고 미화되고 있고, 본인들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 내 정보가 어느 틈엔가 상대에게 모두 쥐어져버리고, 겉으로는 자신이 옳다고 이야기하면서 실상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재미삼아 그걸 휘두르는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마치 정신이상자가 나오는 스티븐 킹의 소설이 무대만 바꿔서 그대로 재현되는 셈인데, 요네자와 호노부는 이야기 속에서 이를 '중세'에 빗대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필자의 추측인데, 이 같은 '마을의 성'이 전국에 무수히 존재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살고 싶다, 살아남아야겠다는 생물 공통의 욕구에 근거해 중세라는 자력구제의 시대를 생각하면, 취할 수 있는 방법에는 제한이 없다. (중략)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줄 시스템이 어디에도 없어,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무장하거나 병사를 고용해야 했던 시대, 전국이라는 중세.
. 그래서 요네자와 호노부의 이 책은 처음에는 그저 보통의 유머 미스테리 물처럼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로 진행되어가지만, 사건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찝찝한 분위기가 스물스물 들어찬다. 나름 빈틈없는 성공가도를 걸어오다 성인 아토피에 걸려 모든 걸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반체념 상태로 지내다 개를 찾겠다는 목적으로 사무소를 연 주인공(그래서 탐정 사무소가 아니다. S&R - Search & Rescue다)과 어린시절부터 탐정을 동경해오던 열혈 조수의 조합으로 시작되어 사람을 찾기도 하고, 고문서의 행방을 쫓기도 하면서 아기자기하게 흘러가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대신 묵직한 주제를 갖춘 섬찟한 스릴러가 모습을 드러낸다. 괴담을 읽고 나서는 문득 등 뒤를 확인하게 되는 것처럼, 소설을 읽고 난 후 괜시리 그 동안 써온 글을 되짚어보게 되는데.... 이런. 전혀 남얘기가 아닌데(....)
. 이런 매력이 있는 이야기를 만났으니 당연히 속편을 기대하게 되고, 거기다 책 표지 오른쪽 상단에 작은 글씨로 'The case-book of "Koya Search & Rescue" 1'이라고 적혀 있는데다, 전화로만 잠깐 등장하는 '오미나미'나, 인터넷에서 주인공을 도와주는 'GEN'이라는 닉네임의 인물 등 작가가 던져놓은 구성이 그대로 남아있기까지 하니 이쯤되면 속편이 없는 게 이상할 수준. 그래서 일본 현지에서도 '개는 어디에'를 S&R 시리즈라고 따로 분류해놓고 있기는 한데.... 12년이 지난 지금에도 속편이 나왔다는 얘기를 찾을 수가 없다(....) 뭐 요네자와 호노부라는 작가 자체가 일단은 될 수 있는대로 많은 곳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으면 하나는 건진다는 식이라 끝맺음이 안된 게 딱히 이 얘기 뿐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완결도 아니고 2편이 안나오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지(....)
그러나 현대는 중세를 극복한 것이 아니다. 중세 위에 얹혀 있는 것이 현대라는 시대다. 현대에 갈라진 틈이 생기면 중세는 언제든 밖으로 흘러나올 것이다.
- p. 221. '전국이라는 중세와 고부세' 문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