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 미야베 미유키(북스피어) ●●●●●●●○○○
"놈들이 목표로 하는 건 교육이 아니야. '개조'일세.
사람은 개조할 수 없어. 개조할 수 있는 건 '물건'일세."
"내가 ST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건 그 시스템 안에 매우 허약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세."
"허약한 부분?"
"그러니까 트레이너 말일세." 교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강대한 지배력이 주어졌다고, 장인은 말했다.
"아까 자네가 얘기한 것처럼 그 점에서 군대와 비슷하지. 초년병을 괴롭히는 선임은 그저 자신이 선임이라는 이유만으로, 규율 유지와 훈련을 명목으로, 그 이전의 평온한 일상생활 속에서 본인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짐승성을 해방할 수 있었네.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상하 관계 속에서는 작은 권력을 쥔 아주 약간 더 상위의 인간이, 거기에 어울리는 능력도 자격도 없는데 하위의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완전히 쥐고 말 때가 있지. 나는 그게 싫네. 내가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게 그거야."
- p. 384.
. 이 책, 쉽지 않았다. 물론 두터운 분량 때문이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이 책과 같이 읽은 도불의 연회도 상하권을 합치면 분량은 비슷했고, 거기다 중간 100페이지 정도는 듣도보도 못한 요괴 이야기를 읽어야만 했기에 난도로 따지면 그 쪽이 훨씬 높았을터였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지극히 평이한 문체로 지극히 사실적인 일상이 촘촘히 흘러가고, 그 안에서 미야베 미유키가 고발하는 다단계 피라미드와 연수를 빙자해 세뇌에 가까운 강압적인 프로그램과 직장 내 위계를 이용한 하라스먼트 같은 이야기들을 읽으며 마음이 절로 무거워졌다. 그동안 작품을 거치며 점점 가까워지는 악의에서 한 걸음, 아니 반의 반 걸음이라도 떨어져 있을 수 있던 '행복한' 스기무라 사부로 역시도 이제는 이런 이야기들을 피해갈 수 없다. 그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 그저 묵묵히 견뎌낼 뿐이다.
. 이 모든 건 어느 날 갑자기 출장길에 탄 버스에서 어떤 노인이 인질극을 벌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뛰어난 화술로 버스 안의 승객들을 컨트롤해가면서 경찰에게 세 명의 사람을 불러달라는 노인. 인질극은 결국 경찰의 난입과 노인의 자살로 끝을 맺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질들 모두에게 노인이 몰래 보낸 돈이 배송되면서 승객들은 운명공동체가 된다. 돈을 받자는 사람과 경찰에 신고하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기무라 사부로는 일단 진상을 알아볼 때까지만이라도 결정을 보류하자고 모두를 설득하고 사건에 뛰어든다. 그 과정에서 '악'을 하나씩 밝혀내는데는 성공하지만, 정작 그러는 과정에서 그의 주변이 검게 물들어가고 발 밑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다. 전작이었다면 그저 현실은 역시 씁쓸하구나 하고 마무리할법한 그 시점에서, 역습이라고까지 할법한 일이 그를 집어삼킨다.
"악인입니다" 하고 노인은 말했다. "그렇게 때문에 중요한 사람들이지요."
이때 처음으로 나와 다나카의 눈이 마주쳤다. 누군가를 가리켜 '악인'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는, 설령 그 누군가가 권총을 갖고 있지 않아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어른의 분별이다. 물론 특별히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상황에 빠져 있는 우리지만 나는 겨우 드러난 노인의 동기로부터 지금까지 없었던 일그러진 무언가를 느꼈다.
- p. 126.
. 사실 스기무라 사부로가 악의에 집어삼켜지는 마지막 부분이 아니었다면 이 소설은 그렇게까지 어렵지도, '불쾌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는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악의를 피해오던 스기무라 사부로를 더 이상은 행복하게 놓아둘 생각이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납득할만한 이유도 없이, 이렇다할 대책도 없이 마치 모 놀이공원 게임 마냥 행복 속에 있던 그를 집어들어 불행에 떨어뜨리고 가버린다. 그래서 그동안 주별에 출몰하는 악의 속에서도 어떻게든 스스로를 북돋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지켜내던 그로 하여금 "딸의 손을 놓을 때마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아마 상처가 아물면서 생긴 딱지일 것이다. 그리고 또 피가 조금 흐른다." (후속작 희망장 중에서)라고 중얼거리게 만든다. 아프다.
. 그래서 이 소설은 뭐라 정리해서 말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불쾌하다. 긴 기간 동안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읽어오면서 쌓인 작가에 대한 신뢰가 아니었다면 이야기가 무너졌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동안 그 많은 이야기들을 읽어놓고 이제와서 순진하게 악은 처벌받고 선은 보답받아야 한다고 우기는 건 아니다. 물론 세상에는 갑자기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뜬금없는 악의에 삼켜지는 피해자들이 넘쳐나는 것도 알고, 스기무라 사부로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진거라고 하면 그뿐인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에 화를 내고, 반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결국 이 이야기를 통해 미야베 미유키는 그 누구도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올 악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하고 있기 떄문이다. 피해자들도. 주변인들도. 탐정도. 주인공조차도.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나 역시도.
"교관이든 강사든 트레이너든, 부르는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수강자를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인간으로, 그 업계에서는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사람일수록 그러한 눈을 하고 있었네." 어떤 눈입니까, 하고 나는 물었다.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닐세. 사물을 보는 눈이야." 장인은 말했다.
"생각해 보면 그건 당연하지. 사람은 교육할 수 있네. 하지만 놈들이 목표로 하는 건 교육이 아니야. '개조'일세. 사람은 개조할 수 없어. 개조할 수 있는 건 '물건'일세."
- p. 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