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독 - 미야베 미유키(북스피어) ●●●●●●◐○○○
"불행이란 대개의 경우 그런 거죠.
이쪽을 바로 세우려 들면 저쪽이 기울어지는 식으로 서로 엇갈려 있죠.
마치 헝클어져 풀리지 않는 실처럼."
이 넓은 세상에는 우리의 상식 범위 안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가지고, 그 사고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막연히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특히 도시에서 살아가다 보면 싫어도 깨닫게 된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바로 옆에 출현하게 되면 아무래도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게 된다. 화가 나면서도 공포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액션으로 연결해야 좋을지는 알 수가 없다.
- p. 61.
. 두 개의 이야기가 겹쳐지는 이번 소설을 휘감고 있는 건 각각의 이야기들이 서로 질세라 뿜어내는 독기다. 한 켠에는 찌는 듯한 여름 한낮에 음료수 속의 독을 마시고 죽은 노인이 있고, 다른 한 켠에는 거짓말과 핑계와 남탓을 일삼으면서 주변에 증오를 발산하는 직원이 있다. 거기다 집에서조차도 새집증후군이 이슈가 되어 있으니, 이번 편에서는 어디를 가도 독을 피할 수가 없다.
. 타인의 악의를 곁에서 스쳐 지나쳤던 전편 '누군가'와 달리 이번 편에서 악의는 "행복한 탐정"을 직접 덮쳐온다. 건조하게 사실만 놓고 보자면 한쪽은 살인사건이고, 한쪽은 그냥 사무실에서 일어난 소동인데도 정작 책을 읽고 나면 살인쪽이 뭔 얘기였더라 싶을 정도로 직원이 벌이는 사건의 임팩트가 - 그 공포가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도저히 답없는 악성민원인(....)을 떠올리게 하는 직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거짓말과 히스테리와 폭력과 고소로 사무실을 짜증과 두려움으로 몰아가고, 심지어 행복한 탐정의 가족들까지도 그 악의에 휘말린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성실하고, 배려하며, 그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권이 끝나는 시점에선 스기무라 사부로도, 아내와 딸도 이야기가 시작될 때처럼 마냥 행복하지 않다. 더 이상 그럴 수가 없다.
. 그래서 이 시리즈는 책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두렵고 분해진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악의를 가진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흙발로 발자국을 내고 지나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직까지는" 우리가 그런 인간들을 만나지 않아서, 그런 일에 휘말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한숨을 내쉬는 것뿐인걸까 - 그렇게 스기무라 사부로의 행복은 어느 날 갑자기 깨져도 아무 이상할 것 없는 불안한 평온이 그저 운좋게 유지되어가고 있는 것뿐일걸까. 그리고 그는 과연 언제까지 "행복한" 탐정일 수 있는 것일까. 마음이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