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딕 누아르 특집

미스테리아 20호 - 엘릭시르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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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에는 복잡한 수수께끼가 있을 뿐, 미스테리는 없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매일의 날들이야말로 미스테리의 덩어리다.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바뀌는 마음과 결코 입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욕망 또는 상념으로 가득한, 잘 의식하지도 못하는 평범한 시간들이 모두 미스테리의 영역 안에 있다. '인생이,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형사의 의견에 따르면 이것이 가장 미스테리한 질문일 것이다.

- p. 45. 혼란에 빠진 형사들, 최원호.




- 이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노르딕 누아르를 파고들 때가 왔다 - Valhalla, I am Coming!

. 노르딕 누아르 작가 소사전 -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요 네스뵈, 유시 아들레르 올센,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 스티그 라르손, 헤닝 만켈 등등

. 유토피아의 어둠과 찌는 듯한 오슬로의 더위 - '이케아 탁자 밑의 핏자국'

. 현실을 걷고, 상처를 디뎌내고, 어둠을 직면하며 치유되어 가는 - 마르틴 베크 시리즈와 발란데르 시리즈

. "프리처"에서 에리카는 만삭 임산부로 등장한다. 그리고 매우 분량이 줄어든다. 소설 주인공조차도 - 스칸디나비아의 여성작가들


-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만들어졌다가 몇십년간 묻혀져 있던 장르에 대한 이야기

. 정통 밀실추리, 안락의자 탐정, 심리추리에 이르기까지. '에드거 앨런 포와 오귀스트 뒤팽'


- 단편이라기보다 엽편에 가까운 즐거운 이야기 - 로라 리프먼 '"펜트하우스 포럼" 담당자 님께.', 단편 두 편.



. 사실 추리소설의 팬이지만 -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 영국과 미국의 고전들, 그리고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이제 추리소설이라는 건 한물 간 장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번 미스테리아를 통해 아직도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충분히 영향력을 가지고 명작이라고 할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는 곳이 있었다는 게, 그리고 그게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북유럽 국가들이라는 게 놀라웠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복지천국이라고 생각해 온 스칸디나비아 복지국가들에서 추리소설이 읽힌다는 것도 신기한 일인데, 나오는 책들을 보면 '유토피아'의 한적함과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흥미 위주의 추리소설이 팔리나보다 싶은 선입견마저도 뒤엎는다. 그들이 읽는 추리소설의 대부분은 북유럽 사회의 어둡고 후미진 곳에서 그동안 모두가 부러워해왔던 '사민주의'와 '복지', '연대'와 '평등'의 여기저기가 깨져나가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 밀레니엄에서 스티그 라르손은 복지국가 스웨덴은 결국 재벌들의 세습을 인정해주는 댓가로 작동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식의 신랄한 어조를 유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소득세는 높지만 상속세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서라는 명분 하에 차등의결권 같은 제도까지 마련되어있기 때문이다. 재벌들의 탈법 상속 같은 건 스웨덴에선 이슈조차 될 수 없는, 아니 애당초 일어날 수조차 없는 일이다. 단단한 세습구조를 국가가 법으로 인정해주는 게 이들 국가들인 것이다. 다른 추리소설들 역시도 이민자를 비롯해 소외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범죄를 다루면서도 이걸 단순히 개인의 포용문제가 아닌 사민주의 시스템의 균열과 그로 인한 불안감과 불평등에서 벌어지는 범죄라고 이야기한다. 이렇듯 북유럽에서 미스테리 문학은 '살기 좋은 복지국가'라는 기치 하에 모두가 쉬쉬하는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1권에서 미카엘은 방에르 가문의 비밀을 파헤치며 "정통파 경제인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복지국가' 스웨덴의 산업을 떠받치는 기둥 같은 인물"과 그 가족이 감춰두고 있던 폭력의 역사를 되짚는다. 스웨덴은 매우 높은 소득세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역사적으로 상속세가 매우 낮았고, 2018년 현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에 축적된 부는 대를 물려 세습되는 한편 지금 일해서 버는 돈은 쌓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복지국가 스웨덴의 이면에는 사실상의 계급 세습제가 작동한다.

- p. 55. 벌집을 발로 차다, 노정태.



. 뿐만 아니라 북유럽 추리소설 - 그 중에서도 하드보일드 계열을 총칭하는 '노르딕 누아르'는 사회에 대한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한 개인의 삶을 긴 호흡으로 서술해 나간다. 헤닝 만켈 시리즈의 주인공인 쿠르트 발란데르는 검거 과정에서 범인을 사살했고, 그로 인해 삶이 망가지면서 이혼하는 과정에서 아내를 폭행하기까지 하는 등의 잘못을 저지르고 평생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괴로워하며 살아간다.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시리즈의 주인공인 형사 에를렌뒤르는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눈보라에 휩쓸렸다가 혼자 살아남고 그 무게에 짓눌려 결혼 생활에도 실패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의 자녀들마저도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그로 인해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게 되고 에를렌뒤르를 증오한다.


. 그렇게 노르딕 누아르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각자의 잘못과 불행에 짓눌린 채 살아간다. 그런 그들이 현장에서 마주치는 범죄들은 그들의 짐을 더 무겁게 하기도 하고 덜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일반적인 추리소설을 넘어, 마치 운명과 싸우는 인간을 그리는 고전의 연장선상에서 읽힌다. 그게 추리소설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노르딕 누아르를 지금도 유효하게 하는 힘이며, 소개만으로도 추리소설을 읽는 이들에겐 한번쯤 완독을 목표로 삼아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나 역시도 그 대열에 끼어봐야겠다.



범죄야말로 인간의 여러 행위와 생각 중에 미스테리적인 요소가 가장 적은 일이라는 것이다. 범죄에는 명확한 동기를 가진 범인이 존재한다. 만약 범인이 복잡한 트릭을 준비하더라도 그 이유 역시 철저히 합리적이다.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서이다. 또한 범죄 추적도 범죄와 마찬가지로 합목적적이다. 범인의 동기와 행위를 추적해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 확실히 입증하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범죄 추적이란 범죄의 합리성을 재구성하고 증명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범죄에는 복잡한 수수께끼가 있을 뿐, 미스테리는 없다.

- p. 44. 목적이 달라서 결과도 달라졌다, 박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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