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가 아닌, 숨겨진 수작들만 골라 모은 단편집

쥐덫 - 애거서 크리스티(해문)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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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의 눈먼 쥐 -



마플 양은 그것도 모르고 죽은 헨리 백부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었다.

"재담은 또 얼마나 좋아하셨다고요. 그러나, 재담을 굉장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말을 가지고 장난한다는 게 아마도 무척 짜증나는 일인지도 모르죠. 그런데, 우리 백부님 역시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하인들이 항상 자기 물건을 훔치고 확신하고 있었으니 말이죠. 물론 이따금 그런 하인들도 있었겠지만, 늘 그랬다고는 볼 수 없잖아요. 그런데도, 그 분의 의심은 날로 짙어만 갔어요. 종국에 가서는 하인들이 그 분이 먹을 음식에 독약을 넣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까지 미쳤고, 결국 삶은 달걀밖에는 아무것도 안 드셨답니다! 아무도 삶은 달걀 안에는 독약을 넣을 수 없다는 거예요. 가엾은 헨리 백부님. 한때는 무척이나 유쾌한 분이었는데 - 식사 뒤에는 커피를 꼭 드시곤 했었다우. 그 분은 이렇게 말을 하시곤 했어요. '이 커피는 굉장히 훌륭해. 아라비아 산이로군.' 그건 좀 더 마시고 싶다는 뜻이었죠."

에드워드는 헨리 백부의 이야기를 한 마디라도 더 들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 p. 123. 이상한 사건




. 이 중단편집은 너무나도 유명한 표제작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여덟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단편들임에도 의외로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화요일 클럽의 살인'이나 '포와로 수사집'처럼 처음부터 한 권으로 나온 단편집에 비해 편집 과정에서 자의적으로 묶은 단편집은 자투리로 남은 걸 얼기설기 묶어버린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여기 실린 단편들은 그보다는 숨겨진 액기스만 모아놓은 느낌이 든다.


. 작품 구성을 보면 표제작인 쥐덫에 마플 양이 나오는 단편이 넷, 포와로가 나오는 단편이 셋, 그리고 새터드웨이트 씨와 할리 퀸이 나오는 단편이 하나 있다. 크리스티 여사의 초기 단편들 위주로 선정한 것인지 포와로가 나오는 단편에는 정말 오랜만에 헤이스팅즈가 출연하고, 마플 양이 나오는 단편에는 멜쳇 대령이나 슬랙 경감, 하트넬 양, 헤이독 의사처럼 초기 작품인 '목사관 살인사건'이나 '서재의 시체'에 나왔던 세인트 메어리 미드 주민들이 대거 등장한다. 덕분에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느낌도 받을 수 있다. :)




"천만에, 놀랄 만한 진전을 보았다네. 놀랄 만한!여보게, 헤이스팅즈, 넥타이 핀을 꼽으려면 제발 넥타이 한가운데에다 꽂게나. 자네 것은 지금 16분의 1인치나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어."

- p. 232. 조니 웨이벌리의 모험. 헤이스팅즈는 오랜만에 나와서도 고통받는다(....)



. 추천할만한 이야기는 역시 표제작인 '쥐덫'과, 마플 양이 등장해 괴짜 노인이 숨겨놓은 유산을 찾는 이야기인 '이상한 사건'. 특히 이상한 사건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마플 양의 "희화화된" 캐릭터가 잘 드러난 단편인데, 이 단편에서 마플 양은 유산을 찾으러가서는 유산찾기는 뒷전으로 미뤄두고 큰아버지의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는 바람에 의뢰인들은 수다의 홍수에 익사하기 직전까지 간다. 다행히 큰아버지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숨겨놓은 유산을 발견하게 되고, 덕분에 의뢰인들도 마음을 품고 모두 함께 마플 양의 큰아버지를 위해 한잔하는 훈훈한 마무리(....) 전반적으로 간결한 트릭에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데에 중점을 둔 이야기들이라 추리소설 초심자들도 맘편하게 읽어볼만하다. 아니면 너무 시시하게 느껴질지도? ^^;





마플 양이 말했다.

"아! 장난을 좋아하는 이 노인 양반이 바로 그 점을 깨닫지 못했군요.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는데, 언젠가 우리 헨리 백부님이 평소 귀여워하던 조카딸 하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5파운드짜리 지폐를 보낸 일이 있었죠. 그런데, 그것을 크리스마스 카드 사이에 끼워서 그 카드를 고무풀로 붙여 놓고는, 그 위에다가, '사랑하는 조카딸의 행복을 빈다. 유감스럽지만 올해는 이것밖에 줄 게 없구나.' 라고 쓰신 거예요. 그 아이는 그것도 모르고 백부님이 인색하다고만 생각하고 화가 나서 카드를 불에 홱 던져 넣어 버렸지요. 결국 백부님은 그 애에게 다시 선물을 주어야 했답니다."

헨리 백부에 대한 감정이 사그라진 에드워드가 이렇게 말했다.

"마플 양, 제가 샴페인 한 병을 준비하죠. 우리 모두 헨리 백부님의 명복을 빌며 잔을 드십시다."

- p. 129. 이상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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