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수법 - 와카타케 나나미(내친구의서재) ●●●●●●●○○○
이제 그만 인생 전부를 재검토해야 할 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불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그만 인생 전부를 재검토해야 할 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새 일을 찾고, 새 집을 찾고, 새 인간관계를 구축한다.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 행복했던 시기도 있었다. 여러 것들과 인연을 끊고 속 시원하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젊었고, 체력에도 기력에도 자신감이 있었다. 새로운 것에 순응하는 힘도 있었다.
지금은 생각하는 것만으로 한숨이 나온다. 탐정 이외에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여기를 나가면, 다음에 큰 부상을 입었을 때 누가 병원에 와주고 누가 보증인이 되어줄까.
- p. 480.
. '어두운 범람' 이후 2년, '의뢰인은 죽었다'부터는 무려 11년 만에, 하무라 아키라가 등장하는 두툼한 책이 다섯 권이나 내리 출간됐다. 20년 여름에 출간된 '조용한 무더위', 해를 넘겨 그 다음 해 봄에 출간된 '녹슨 도르래'와 여름에 출간된 '이별의 수법', 그 다음 해 초에 출간된 '불온한 잠'과 마지막으로 나온 '나쁜 토끼'까지. 비록 출간되는 과정에서 순서가 바뀌어서 단편인 조용한 무더위가 가장 먼저 나오고 가장 처음에 나온 이별의 수법이 뒤로 밀리긴 했지만, 기다림을 세는데 있어 연단위를 쓰는 것에 익숙해진 추리소설 독자라면 안다. 이런 사족이고 트집이고 다 필요없고 그저 나와주기만 하면 된다는 걸. 말랑말랑한(?) 단편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만 있다면, 그래서 후속작도 번역해줄 수만 있다면, 순서가 바뀐들 어떤가. 내가 나중에 순서대로 한 번 더 읽으면 된다(....) 일단 나오질 않으면 순서고 뭐고 읽을 수조차 없다(!!!!) 아무튼 그렇게 나왔다. 하무라 아키라 2기가.
. 2기의 본격적인 시작점이라는 이 작품을 읽어보니, 왜 이 책이 아니라 '조용한 무더위'가 가장 먼저 나왔는지 이해가 간다. 재미가 덜한 것은 아니다. 캐릭터가 흐릿한 것도 아니다. 다만 조용한 무더위를 읽고 하무라 아키라 파이팅을(^^;) 외쳤던 게 민망해질 정도로, 이 이야기에서 하무라 아키라는 몇 번이고 격투를 벌이고, 그때마다 내동댕이쳐지며, 이제는 거의 남지 않은 지인들에게 오해를 사서 버림받고, 경찰들까지 그녀를 이용하려고 든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시원시원하게 받아쳤던 20대 때와는 달리, 40대가 된 그녀는 이젠 사투를 벌이면 며칠씩 몸이 힘들고, 마음 속에서는 생계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시질 않는다. 그녀를 쌩고생시킨다고 생각했던 조용한 무더위가 귀여운 일상물로 느껴질 정도로 이야기 내내 삶의 무게가 그녀의 양어깨에 덕지덕지 내려앉아 있다. 더 이상 하무라 아키라는 쿨하지 않다. 아니, 쿨이라니 그것부터가 대체 언제적 단어야(....)
통화를 끊었다. 위에 구멍이 다섯 개 정도 난 것처럼 아프고 기분이 나빴다. 토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잠시 벤치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안정을 취했다. 몇 번인가 헛구역질이 났다. 호흡이 안정될 때까지 30분 가까이 걸렸다.
- p. 461.
. 그래서 하무라 아키라를 모르는 새로운 독자들은 현실도 팍팍한데 왜 아주머니가 나와서 고생하는 하드보일드 소설까지 읽어야 하는 거냐고 반문할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단편이고 이 책에 비하면 나름 말랑말랑한 조용한 무더위가 먼저 나와서 독자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전작을 읽으면서 젊었을 때의 활약상을 찾아보게 만들고, 그렇게 하무라 아키라가 누구야? 재미도 있고, 좀 멋있는 것도 같네 하고 옹기종기 모여든 팬들에게 삶의 온갖 쓴맛을 맛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대신 1기에서 하무라 아키라를 처음 접하고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팍팍 꽂힌다. 첫 단편집에서 언니에게 살해당할 뻔 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족들에게 외면당하고도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툭툭 털고 일어나던 그녀가, 이제는 지인에게 배신당한 정도(?)로 침대에 누워 한숨을 쉰다. 그러면서 더 이상 털고 일어나기도, 새출발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동정하는 게 아니라 그녀에게 공감하고, 공감을 넘어 '공명'하게 된다. 나도 나이를 먹었으니까. 내게도 삶은 쉽지만은 않으니까.
. 하지만 아무리 현실이 실제 그런 것이라고 해도, 소설마저도 그저 구질구질할 뿐이라면 그런 하무라 아키라는 나조차도 읽지 않을 것이다. 비록 더 이상 젊지도 않고 이제는 패기라고 할 것도 남아있지 않지만,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타협하지 않고 있다." 의뢰인은 죽었다에서 한 번만 타협하면, 한 번만 눈감으면 그녀가 원통해하면서 처절하게 답을 찾아왔던 사건의 모든 진상을 알려주겠다는 "목에 짙은 반점이 있는 남자"에게 "죽음을 납득할 수 있는 이유 따위, 그 어떤 유능한 탐정이라도 찾아낼 수 있을 리 없다"고 일갈하던 그 하무라만큼은 아직 오롯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과 거래하려는 경찰과 단호하게 선을 긋고, 거짓말쟁이에게 속아 하무라를 매몰차게 외면한 지인을 지키기 위해 격투를 벌이고, 그녀에게 무엇 하나 줄 수 없는 실종된 탐정의 늙어버린 부인을 위해 누구도 원하지 않는 묻혀진 답을 찾아낸다. 그렇기에 - 비록 나이들고 지쳤지만 어떻게든 버텨나가며 꺾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 - 다음 책을 집어들고, 하무라 아키라 파이팅이라고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 2층 살롱 벽에는 미스테리 작가의 사진이나 친필 원고, 사인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자가 잔뜩 걸려 있다. 도야마가 그 중 하나를 가리켰다. 그것을 보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곳에는 '탐정업 신고 증명서'라고 적혀 있었다. 오른쪽 위에 제30888934호라는 숫자. "아래 탐정업에 대해서는 2013년 12월 18일로 탐정업 업무 적정화에 관한 법률 제4조 제2항의 규정에 따라 신고서를 제출한 사실을 증명한다"고 적혀 있고, 상호, 명칭 혹은 성명란에는 '백곰 탐정사'. 마지막에 도쿄 도 공안위원회의 날인이 쾅 찍혀 있었다.
- p. 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