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새겨진 글씨가 음악이 되어 귀에 휘감기다

꿀벌과 천둥 - 온다 리쿠(현대문학) ●●●●●●○○○○

by 눈시울



눈개비 한 옴큼만.... 눈개비 한 옴큼만....




. 처음에는 만화를 읽는 것처럼, 중간에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마지막에는 눈에 보이는 형태가 떠오르는 음악을 듣는 것처럼 한 번도 쉬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책을 읽어내려갔다. 어쩌다 꽤 오랫동안 꾸준히 이것저것 읽어오다보니 나름 책을 빨리 읽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이상하다 느껴질 정도의 속도였다. 읽는다기보다는 오히려 훑는다고 할만한 속도로 페이지를 넘겨가고 있자니 책의 내용이 글자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오감으로 변환되어 때로는 인물들의 외모와 음악의 소리로, 때로는 콩쿨회장의 분위기와 바닷가의 온도라는 형태가 되어 온몸으로 흡수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700페이지를 읽는데 단 1시간 반. 만화도 그렇게는 못 읽을 것 같은데.


. 사실 글로 천재를 - 그것도 음악을 하는 천재를 표현하는 건 필연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작가가 이전에 '초콜릿 코스모스'라는 걸작(아직 리뷰는 하지 않았지만, 그 책이라면 평점 8-9점은 줄 수 있지 않을까)에서 연극의 천재를 등장시킨 적이 있었지만, 연극은 '각본'이라는 이야기가 토대가 되기에 읽는 이 역시도 작가가 쓴 각본에 의지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음악은 최소한의 매개도 없이(그렇다고 책에 악보를 올려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올려놔봤자 나같은 사람은 읽을 수도 없다) 오직 작가의 표현만을 가지고 독자를 설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원곡을 아는 게 딱히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원곡의 표현에 타협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책처럼 천재의 '특이함'을 표현하는 경우엔, 원곡은 오히려 상상에 방해가 될 뿐이다. 노다메 칸타빌레를 만화로 보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던 '마법사의 제자'나, '마술피리'와 실제의 곡이 전혀 달라서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그래도, 브람스 1번은 원곡이 훨씬 좋았다^^;)


.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온다 리쿠는 (책의 홍보글이 사실이라면) 십년이 넘는 기간 동안 노력과 고뇌를 쏟아부어 엄청나게 생생한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아쉽게도 인물들은 (몇몇은 좋았지만) 대부분 만화에서 나올법한 전형적인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천재소년에 대한 부분은 너무나도 '왕도 만화' 그 자체라 이걸 굳이 넣었어야 했나 실소하다 못해 탄식하게 될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다카시마 아카시를 통해 표현한 '봄의 수라'만큼은 감동스러울 정도로 좋았다. 원곡자라는 '히시누마 다다아키'가 실제 인물인지 가상 인물인지 이름도 들어본 적 없고 봄과 수라라는 음악도 실제 없지 않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온다 리쿠가 글을 통해 음악을 표현하는 부분을 읽고 있자면 어느새 그 글이 알 수 없는 과정을 거쳐 모호하지만 하나의 음악으로 흘러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세상에. '눈개비 한 옴큼만'이라니. 대체 이런 문장은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걸까. 이런 부분 하나가 있으면, 너무나도 만화같고 마냥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 같다고 아무리 머리로 이런저런 지적을 한들, 그 부분만큼은 마음에 확고하게 남게 된다. 그게 표현이 가지는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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